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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진우 Feb 06. 2017

동주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어느덧 이 영화가 개봉한지도 1년이 다 되어간다. 시드니에서는 단 하루만 특별하게 상영을 했던 '동주' 하필이면 그날 일을 하는 바람에 보지 못하였고, 미루고 미루고 또 미루다가 어제 늦은 새벽 오랜만에 홀로 감상을 했다.


영화는 흑백으로 시작해 흑백으로 끝이 난다. 나라를 잃고, 언어를 잃고, 주권을 잃고, 이름을 잃어버린 그 시대. 그 시대를 표현하는 데 있어 흑백이라는 배경이 주는 효과는 실로 어마어마했다. 마치 이 세상은 원래 흑백의 색 말고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킴과 동시에 그 시대 속에 슬픔이 좀 더 깊게 와 닿는데 많은 일조를 한다.

윤동주 그리고 송몽규, 비슷한 듯 다른 이념을 가지고 살아가는 둘의 모습을 두 배우가 참 잘 담아냈다고 생각한다. 배우 강하늘이 읊어 내리는 윤동주의 시는 귀가 아닌 가슴으로 들렸고, 배우 박정민이 연기한 송몽규의 당찬 이념과 확고한 신념은 눈이 아닌 가슴으로 보였다. 눈과 귀가 아닌 가슴을 울리는 연기를 두 배우가 완벽하게 보여줬다.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 없기를 바라는, 이러한 세상 속에서 이토록 쉽게 시가 쓰여지는게 부끄럽다고 말하는 윤동주 시인. 정지용 시인은 말한다. 부끄러움을 아는 것은 부끄러운 게 아니라고. 가장 깊게 가슴에 박힌 말이 아닐 수가 없었다. 우리는 살면서 많은 부끄러운 일을 저지르고선 그 일을 모른 척하며 살아간다. 알지만, 부끄럽지만 아닌 척, 모르는 척 살아가기 바쁘다.

나는 아직도 이렇게 부족하고 세상을 모르는데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살아간다는 게 얼마나 부끄러운지를 깨 닫게 해주는 이 시대의 꼭 필요한 작품이다. 글을 가진 힘을 믿는다. 특히 시가 가진 힘을 깊게 믿는다. 시는 가장 적은 수의 글자로 가장 큰 울림을 줄 수 있는 신이 내린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 마음속에 있는 살아있는 진실을 드러낼 때 문학은 비로소 온전하게 힘을 얻는다고 말하는 윤동주 시인. 그 힘이 모여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었던 시인 윤동주. 그의 인생을 담아낸 이준익 감독의 '동주'. 시대극을 참 잘 풀어내는 감독이라고 생각해왔는데 이번 작품에서 감독의 능력이 빛을 발했다. 두고두고 책장에 꽂아둔 채 오래오래 보고 싶은 시집 같은 영화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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