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진우 May 30. 2018

버닝

'문제야, 항상 있잖아'


어벤져스에 이어서 데드풀의 속편과 스타워즈의 스핀오프까지 여전히 박스오피스를 점령하고 있는 외화들 속에 한줄기 단비 같은 작품으로 다가왔던 이창동 감독의 '버닝'. 개봉 소식을 접하고 가장 먼저 찾아본 무라카미 하루키의 원작 소설 '헛간을 태우다'는 두 번 세 번을 읽어도 솔직히 크게 와 닿지 않았다. 그 부분에 있어서 참 각색이 잘 되었구나를 느꼈고 두 번을 보고 나니 이 영화가 가진 가치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우리가 접하는 영화들은 그 러닝타임 속에서 어떠한 질문을 던지고, 그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는 과정을 영화를 통해 그려내고 결론적으로 그 질문에 대한 답을 보여주면서 관객 저마다의 가치관으로 그 정답을 받아들이게끔 한다. 그러나 '버닝'은 다르다. 계속해서 던져지는 질문과 끝내 풀리지 않는 의혹들. 단순 그 영화를 보는 시간 속에서만 영화를 생각하게 하는 것이 아닌 보고 난 뒤에도 끊임없이 그 질문과 의혹에 대해서 생각하게끔 만든다. 개인적으로 이러한 방식 자체가 굉장히 신선하게 다가옴과 동시에 결국 '정답이 없는 것도 정답이구나'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게 해주었다.

귤이 있다고 믿는 게 아니라 귤이 없다는 걸 잊으면 된다고 말하는 해미. 단순히 귤이 아닌 다른 단어들을 대입했을 때 느껴지는 저릿함이 여전히 선명하다. 위에 대사 말고도 극 중 해미가 말하는 대사들이 참 가슴속에 콕콕 박혀 들었다. '문제야.. 항상 있잖아' '죽는 건 너무 무섭고, 그냥 저 노을처럼 사라지고 싶다' 이 대사들 말고도 삶의 의미에 대해 굶주려하는 그레이트 헝거의 이야기를 할 때, 우물에 빠져 오지 않는 누군가를 기다린다는 이야기를 할 때 등 겉으로는 밝고 쾌활한 이미지의 캐릭터지만 그 안에 감추어 놓은 다른 모습이 보일 때면 괜한 연민과 동정의 감정이 들끓었다. 마치 극 중 종수가 해미에게 이끌린 것처럼.


불안한 청준의 시간을 함께 보내는 종수와 해미, 이 둘이 느끼는 동질감은 꽤나 각별했을 것이다(특히 종수에게는). 그러한 둘 사이의 등장한 벤이라는 인물과 그 인물로 인해 발생하는 사건들과 풀리지 않는 의혹. 벤의 그 모호한 표정과 툭툭 내뱉는 말들 그리고 제스처까지 요즘 말로 입안에 퍽퍽한 고구마를 가득 넣고 씹는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만큼 스티븐 연이 벤이라는 캐릭터를 잘 이해했고, 잘 표현했다고 말하고 싶다.

찾을 수 없는 진실을 찾기 위해 푸르른 새벽빛을 뚫고 달리는 종수 그리고 모그의 음악. 영화 속 음악을 항상 귀 기울여 듣는 입장으로서 이러한 음악을 만나다는 건 참 기분 좋은 일이다. 영상 속의 색감과 그 분위기가 음악 때문에 한층 더 살았다고 생각이 된다.

'말하자면 메타포 같은 거야' 그렇다. 이 영화는 메타포 그 자체다. 그 어느 것 하나 뚜렷하게 노출시키지 않으면서 계속해서 메타포를 던지고, 관객으로 하여금 좋게 말하면 자유롭게, 반대로 말하면 헷갈리게 생각을 하게끔 유도한다. 물증은 사라지고 아니 마치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 마냥 흘러가고, 수 없이 많은 심증만이 남게 된다. 결론을 내린다고 해서 좋은 영화가 아니듯이, 결론을 보여주지 않았다고 해서 나쁜 영화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계속해서 던져지는 물음표들.. 그럼


'이제 진실을 얘기해봐'

매거진의 이전글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