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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진우 Jun 07. 2018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당신이 알았으면 해서..'


훌륭한 작품성을 지닌 여러 퀴어영화들을 보았고, 그들이 말하고자 하는 사랑이 보였을 때 느꼈던 감정들은 흔해 빠진 것들이 아니었기에 보통의 작품들보다 더 애틋하게 다가왔고 소중했으며, 각별하게 느껴지곤 했다. 최근 감상했던 '캐롤' 이라던지 이전에 관람한 '브로크백 마운틴' '가장 따뜻한 색, 블루' 같은 아름다운 영화들 말이다.

이 영화 '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마지막 5분이란 시간 동안 주인공 엘리오와 그의 아버지가 나누는 대화는 내 안에 무수히 많은 것들을 부수고, 다잡고, 재확립시켰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 이 영화가 내게 가지는 가치는 우주만큼이나 광활하며 동시에 아름답다. 복잡해 보이는 마음을 부여잡고 애써 담담한 표정과 말투로 인생에 대한 조언을 아끼지 않는 아버지란 존재가 가진 무게와 아픔이 절절히 느껴져 내 속에 많은 감정들이 들끓는 듯했다.

무더운 여름이 지나고, 함박눈이 쏟아지는 추운 겨울이 왔을 때 엘리오에게 전해지는 그보다 더 차가운 소식, 활활 타오르는 장작불을 보며 분명 엘리오는 뜨겁게 타오르던 둘의 여름날을, 뜨겁게 타올랐던 본인의 사랑을 떠 올렸을 것이다. 불처럼 뜨겁고, 불처럼 순수했던 그날의 사랑이 엘리오의 눈물 한 방울 한 방울에 절실하게 담겨있는 것 같았다.


엘리오 혼자만 세상이 멈춘듯한, 정작 뒷배경에서의 세상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흘러간다는 사실도, 그냥 그렇게 엔딩크레딧이 올라간다는 사실도, 엘리오의 눈에서 눈물이 흐른다는 사실에서도, 엘리오의 복잡한 감정을 담고 있는듯한 음악에서도, 그 마지막 시퀀스의 하나하나가 참 가슴을 저릿저릿하게 만드는구나 싶었다. 

개개인이 저마다 가지고 있는 '사랑'이라는 가치관이 무엇에서 비롯되는지를, 어쩌다 그 가치관을 품에 안고 살아가는지를, 그 과정들이 왜 소중한지를 너무나도 아름답게 표현한 작품 'Call me by your name'.

노트에 한가득 적은 마지막 5분, 엘리오의 아버지가 엘리오에게 전하는 대사들을 적으며 글을 마무리하려 한다.


당신이 알았으면 해서..

"본성은 교활한 방식으로 우리의 약점을 찾는단다.

네가 분명히 느꼈던 것을 느끼거라.

아름다운 우정을 나눴잖니, 어쩌면 우정 이상이었는지도, 난 네가 부럽다"

-

"우린 빨리 치유되려고 자신을 너무 많이 망쳐.

그러다가 30살쯤 되면 파산하는 거지,

그러면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마다 줄 것이 점점 줄어든단다.

하지만 아무것도 느끼지 않으려고, 아무것도 느끼지 않게 만들다니..

그런 낭비가 어디 있니?"

-

"한 가지만 더 말할게.

어떤 삶을 살든 그건 네 삶이다. 다만 이것만 기억해.

우리 몸과 마음은 단 한 번만 주어진 것이고,

너도 모르는 사이 마음이 닳고 닳게 된다는 걸.

몸 같은 경우에는 아무도 쳐다봐 주지 않을 때가 와, 근처에라도 와 주면 감사할 정도지."

-

"지금은 슬픔과 아픔이 있어. 

그걸 없애지 마라, 네가 느꼈던 기쁨도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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