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리 빌보드

'분노는 더 큰 분노를 야기하죠'

by 이진우

좋은 영화의 기준이라는 건 참 어렵다. 영화뿐만이 아닌 사람이 먹는 음식을 예로 들어 보아도 모두에게 '좋다' 또는 '훌륭하다'의 반응을 얻어내기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한 개인이 가지고 있는 가치관과 취향이 좌지우지하는 것이기에 절대 강요할 수는 없는 것들이라고 생각을 한다.


하지만 '쓰리 빌보드'와 같은 작품이라면 강요하고 싶다. 이런 영화라면 자신 있게 좋은 영화이니 보고 또 보고 여러 번 곱씹어보라고 내가 아는 모든 이에게 적극적으로 권하고 싶다. 짜임새 있는 각본과 힘이 실린 연출, 말 그대로 살아있는 배우들의 연기까지 이 모든 것들이 잘 어우러진 작품은 이렇게 강력한 스토리 텔링이 된다는 걸 보여주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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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과는 조금 떨어진 지역에서 일어난 끔찍한 강간살인사건. 그리고 그 피해자의 어머니인 밀드레드는 7개월이 지나도록 아무런 진전이 없는 수사와 이미 지난 일, 없던 일 취급해버리는 경찰에게 강력한 펀치를 세 방 날린다. '아무도 보지 않을 거예요' 라던 레드 웰비의 말과는 다르게 그 펀치는 허공을 가르지 않았고, 정확히 표적을 향해 날아갔고 많은 이들은 소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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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 속 가장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캐릭터의 활용이다. 개성 강한 캐릭터들이 동시 다발적으로 등장하면서 또 동시에 그들이 변화하는 모습을 그려내는 능력이 탁월하다. 보통의 영화 속 캐릭터들은 처음의 등장과 마지막의 모습이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쓰리 빌보드 속 캐릭터들은 꽤나 극단적인 방향으로 캐릭터의 색을 변색시킨다. 뜬금없이 튀어나오는 게 아닌 납득이 가는 방향으로 말이다. 작품 속 캐릭터들이 이처럼 살아있다 라는 게 느껴지는 영화가 얼마만인가 싶을 정도로 인상적인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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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딸의 대화라고 보기에는 힘들었던 밀드레드와 안젤라와 마지막 대화는 머릿속을 꽤나 복잡하게 만들었다. 불이 꺼져있던 아니 다시는 켜지지 않을 딸의 방에서 그날의 그 대화를 회상하는 밀드레드의 뒷모습은 '아픔'이라느 단어가 가볍게 느껴지리만큼 보기가 괴로웠다. '그래 강간이나 당하지, 뭐!'라는 딸의 말에 정작 그녀가 뱉어낸 답은 '그래 강간이나 당해버려라!'가 다였다. 그리고 그게 마지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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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에 나오는 대부분의 캐릭터는 모두 분노를 표출한다. 저마다의 방식으로 표출해내는 분노를 보는 것만으로도 참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자극적인 광고판을 세우기도, 누군가는 그 광고판을 태우기도, 또 누군가는 사람을 창밖에 던지기도 하는데 반면에 어떤 이는 꼼짝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오렌지 주스를 따라주며 빨대를 꽂아주는 방식으로 자신의 분노를 대신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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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영화의 마지막까지 밀드레드는 본인이 원하는 답을 찾아내지 못한다. 분노하고 괴롭기를 반복할 뿐 원하는 답의 근처에도 가지 못하는 그녀의 현실은 보는 이로 하여금 영화가 끝나간다는 사실 자체가 안타까울 정도로 답답하였다. 그런 생각이 진해지는 시점에서 말도 많고 탈도 많던 그 '쓰리 빌보드'를 지나치면서 툭툭 뱉어지는 밀드레드와 딕슨의 대화는 나의 그런 마음을 조금은 진정시켜주는 듯했다.


그럼 누가 그랬겠냐고 말하는 딕슨과 웃음을 보이는 밀드레드. 가면서 결정하자고 말하는, 여전히 답을 찾지 못한 그녀이지만 더 이상의 외로운 싸움은 하지도 않아도 될 것 같아 마음 한편이 놓일 때쯤 엔딩 크레딧은 올라가기 시작한다.


이렇게 영화가 끝이 나서 '얼마나 다행이야'라고 속으로 몇 번이고 되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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