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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진우 Aug 09. 2018

공작

'호연지기 浩然之氣'


단지 '윤종빈'이라는 이름 하나로 작지 않은 기대를 품게 했던 작품이다. 때문에 개봉날, 굳이 늦은 시각에 영화가 끝이 나면 택시를 타고 집에 와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서도 망설임 없이 예매를 했던 그런 작품이다. 윤종빈 감독이 그리는 첩보는 어떤 그림일까가 가장 궁금하였고, 결과적으로 말하면 차분하게 그리고 날카롭게 이야기를 그려 나간다고 여겨졌다.

우선 영화의 설정 자체가 흥미진진하다. 전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가인 남과 북의 관계를 메인으로 삼는다는 점과 시기적으로 북한의 핵개발 문제로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어 있는 그 타이밍에 남한에서 보내지는 북파공작원의 이야기라니, 그 플롯 자체가 굉장히 신선하게 다가왔다.


그러나 동시에 걱정이 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신선하고 흥미진진하다고 느껴지는 소재일수록 실망하게 될 확률이 높은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실망시키지 않았다는 점에서 일단 높게 점수를 주고 싶은 '공작'이다.

기본적으로 배우 황정민이 맡은 '흑금성'의 역할은 속이는 것이다. 모두를 속이되 속이지 않는 것처럼 행동하고 말하는 것. 모두를 태연하고, 차분하게 속여가면서 하나 둘 이루어내는 임무들 속에 또 동시에 언제 발각이 될지 모른다는 그 날카롭고 위태로운 상황과 설정이 137분이라는 시간이 길게 느껴지지 않게 만들었다고 생각된다.


영화의 후반부, 호텔방을 나오면서 나지막이 내뱉어지는 '흑금성'의 내레이션이 인상적이다. 무엇 때문에 무엇을 위해서 나는 공작원이 되었는가 라고 본인에게 묻는 질문은 보는 이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하게끔 유도한다. 

'리명운'을 연기한 배우 이성민의 열연 역시 상당히 인상적이다. '나는 너를 의심하지만, 동시에 너를 필요로 한다'라고 말하는 눈빛이 카메라에 잡힐 때마다 깊은 몰입감을 더 했다고 꼭 짚고 넘어가고 싶다.

정치 얘기를 빼놓고 이 영화를 논한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래서 말이 많고 탈도 많다. '한편으로만 치우쳐진 좌편향적 영화이다' '선동을 위한 작품이다' 등 자극적이고 눈살 찌푸려지는 한줄평과 리뷰들이 심심치 않게 보이는데 그 자체가 나는 선동이고 갈등을 조성하는 장치라고 생각한다.

영화를 볼 땐 오직 영화만 보면 된다. 본인의 생각, 이념과 다르다고 해서 틀리다고 말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행위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개인의 권력과 이익을 위해서 누군가 저질렀던 만행들을 대신해서 고발해주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그 누군가들이 두 눈 똑바로 뜨고, 두 귀 똑바로 열고 이 영화를 보고, 듣길 바란다. 그리고 부디 깨닫길 바란다. 그때의 선택이 명백히 잘못되었음을.


호연지기. 일전에 법정스님의 책에서 보고 처음 알게 된 사자성어이다. 그런데 참 신기한 노릇이다. 그날의 '호연지기'와 오늘의 '호연지기'가 이렇게 다르게 느껴진다. 그 사실만으로 '공작'은 내게 작지 않은 의의를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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