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진우 Sep 30. 2018

리틀 포레스트

'그렇게 바쁘게 산다고 문제가 해결이 돼?'


어쩌다 보니 산 좋고 물 맑은 여기 용암리에서 6개월째 지내는 중이다. 사람은 흙과 가까이 살아야 한다는 외할아버지 말씀을 의도치 않게 지켜내고 있는 요즘, 불편한 점도 있겠지만 도시에서는 느낄 수 없는, 시골마을만이 가지고 있는 소박한 매력들을 체내에 축적하고 있는 중이다. 그런 나에게 '리틀 포레스트'는 타인들의 비해 좀 더 깊숙하게 마음에 와 닿는 듯하다.


작품 속에서 가장 좋았던 점을 꼽으라면, 단연코 음식이다. 음식과 계절을 연관 지어 표현하는 연출과 수확하는 작물들로 계절이 가고 있음을, 가는 계절이 있으면 오는 계절이 있다는 그 당연한 현실을 참 매력적으로 담아냈다고 느꼈다. 우리의 삶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고 말할 수 있는 '먹는다'는 행위의 당위성을 '작지만 확실한 행복' (소확행)으로 보여주는 소박함과 따뜻함이 묻어나는 시퀀스들은 지금 떠 올려 보아도 입안에는 침이고이고 이미 마음은 가득 풍요롭다.

소위 우리는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현재의 보금자리를 벗어나 더 큰 도시로 더 큰 나라로 발걸음을 재촉한다. 내가 그러했고, 주위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했다. 그게 틀렸다고 할 수 없지만 동시에 그게 정답 일리는 없다. 내게 맞는 옷이 있고, 내게 맞는 음식이 있듯이 내게 맞는 환경도 분명 존재할 것이다. 들판에 널린 꽃들도 다 저마다의 이유가 있어서 핀 것이고, 그 환경이 맞았기에 핀 것이다. 아무렇게나 세상에 존재하는 존재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

맞지 않는 옷을 억지로 입을 필요는 없다. 혀가 즐겁지 않은 음식을 억지로 입에 넣을 필요가 없듯이 내가 왜 해야 하는지 모를 일에 따라가며 살기엔 인생은 길지 않고, 20대는 더 짧을 것이다. 내가 나를 알아야 비로소 내 것이 된다고 생각한다. 나를 모르면 아무것도 제대로 할 수가 없게 된다. 사랑도, 일도.

곧 있으면 이 흙냄새 가득한 동네를 떠날 시간이다. 분명 그리울 것이다. 지금은 사소하다고 느껴지는 것들 하나하나가 이곳을 떠나면 우주만큼 거대해져 나를 괴롭힐 것이 뻔하다.

떠나야만 돌아올 수 있다.

돌아오기 위해 잠시 떠난다.

내가 나를 알게 됐을 때, 돌아오겠다 꼭.

매거진의 이전글 500일의 썸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