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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진우 Sep 16. 2018

500일의 썸머

'자신의 솔직한 감정은 직접 말해야 해요.'


열흘이란 시간 동안 류근 작가의 책 네 권을 내리읽어냈다. 두 권의 시집 '어떻게든 이별' '상처적 체질'. 그리고 두 권의 산문집 '사랑이 다시 내게 말을 거네' '함부로 사랑에 속아주는 버릇'까지. 이렇게 네 권의 책들은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지극히 사랑에 관한 이야기다. 아니 지독한 사랑에 관한 이야기라고 하는 것이 조금 더 입에 착 감기는지도 모르겠다. 맞다. '지독한' 사랑에 관한 이야기들.

나는 이 지독한 사랑에 대해 다룬 네 권의 책들을 읽어내면서도, 끊임없이 이 영화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마지막 책장이 넘어가고, 일련의 망설임도 없이 이 영화를 틀었고 천천히, 다시 그리고 또다시 계속해서 좋아하는 시퀀스들을 틀고 또 틀기를 반복했다. 약간의 과장도 없이 수십 번 감상한 영화이고 특정한 장면은 수백 번을 보았을 영화이다. 그런데 위에 저 네 권의 책들을 읽어내고 다시 보는 영화와 그 장면들은 어제 개봉한 영화인듯 낯설고 새롭다.  


얼마 전에 가진 술자리에선 '첫사랑'의 기준이 무엇이냐는 주제로 이런저런 말들이 보글보글 끓고 있는 매콤 칼칼했던 '게탕'을 사이에 두고 오고 갔다. 항상 그랬듯이 결론은 없다. 저마다의 기준이 천차만별로 다른 그 '첫사랑'의 기준을 그 누가 절대적인 잣대를 들이밀고서 '이거야! 이거라고!' 할 수 있겠는가. 그러는 와중에도 나는 이 영화의 두 주인공이 마지막으로 벤치에서 나누는 대화가 떠 올랐다.

서로가 서로에게 결국은 네가 맞았던 거야 하는 그 시퀀스는 안타까우면서도 동시에 아름다운, 단순히 그 두 감정뿐만 아니라 여러 복합적인 감정들이 속에서 동시에 들끓는 그 부분은 지금도 앞으로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이 되지 않을까 싶다. 혼자 벤치에 앉아 있는 톰, 잠시 쉬었다 가는 썸머, 그리고 다시 혼자가 되는 톰의 뒷모습을 보여주던 그 연출. 그 짧은 몇 분의 시간 동안 '500일의 썸머'라는 영화가 담고자 하는 가치가 보이는 것 같아서 남다른 애정이 간다.


내가 가지고 있는 사랑에 대한 가치관을 확립시켜주는 사람이 '첫사랑'이라고 생각한다. 소위 말하는 이상형이란 건 사실 생각보다 쉽게 또 자주 변한다. 또한 어떤 특정한 '이상형'을 정해놓고 사랑을 찾다 보면 내 옆에 두고도 사랑을 놓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그에 반해 앞서 말한 그 가치관은 한번 내 안에 자리하면 쉽게 그 자리를 내어주지 않는다. 그 쉽게 자리를 내어주지 않는 '이'가 인정하기 싫어도 '첫사랑'이라고 생각한다.


특히나 이번 관람에서는 톰이 멍청하게 보이지도, 썸머가 x년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그냥 그 둘은 아니었던 거다. 그 누구의 탓할 필요 없이 그냥 아닌 거고, 아닌 건 아닌 거다. 또 모른다, 다음 관람에서는 '썸머 이 둘도 없는 x년아!' 할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이번만큼은 그렇게 느꼈다.

옷의 소매도 길어지고, 에코백이 아닌 백팩을 메게 되고, 집 앞 논에 벼들도 노랗게 익어서 고개를 푹 숙인 걸 보니 가을은 가을이구나 싶다. 가을이다, 가을. 오매불망 그렇게 기다리던 가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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