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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진우 Oct 04. 2018

암수살인

'세상에서 나 혼자 바보가 되면 그만 아닙니까?'


추석 연휴기간 동안 상영했던 영화들 중 그 무엇하나 손이 가지 않았던 요즘, 2차 관람까지 했던 '서치' 이후에 오랜만에 극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극비수사'를 연출했던 곽경택 감독이 각본에 참여했다는 소식과 그 안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준 배우 김윤석이 다시 만났다는 이유만으로도 상당히 기대가 되던 작품이다. 더불어 '공작'에서 기억에 남는 연기를 보여준 배우 주지훈까지 함께하니, 한껏 치솟은 기대감이 오히려 걱정이 되던 작품이기도 하다.

제목과는 다르게 수위가 높은 잔인한 장면이라던지, 기존 범죄영화에서 꼭 등장하는 범인의 범죄행위에 대한 자세한 묘사도 생략이 된 채 이야기는 흘러간다. 이러한 시각적인 요소들이 기존의 작품들에 비해 상당히 결여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스토리 라인이 탄탄해서인지 개인적으로 빈틈을 찾기가 어려웠다.


피의자의 심리, 피해자 유가족들의 심정과 그들의 남아있는 현실들을 보여줌으로써 이성적인 판단보다는 감성적으로 와 닿게끔 유도를 했다고 느꼈다. 어떤 작품이 잘 짜여진 각본을 만났을 때, 그리고 배우들의 연기력이 받쳐줄 때, 이렇듯 담백한 매력을 뿜어 낼 수 있다는 걸 검증하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많은 배우가 등장하는 것도 더러 다양한 배경이 나오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이런 완성도의 영화가 나온다는 건 참으로 기쁜 일이다. 자극적인 소재이고 자극적인 내용이지만 영화 자체는 자극적이지 않다고 느꼈다. 기름기 걷어 내고 담백하게 해야 할 말, 하고 싶은 말을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그 순간까지 또박또박 해내고야 만다.

창고 안에 먼지와 함께 수북하게 쌓여있는 그 누구도 들추려 하지 않는 과거의 수사기록들을 뒤지는 극 중 김형민 형사의 모습은 한 인간이 살아가면서 안고 가야 할 가치의 무게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다. 개개인이 저마다 가지고 있는 가치의 깊이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는지, 그 가치라는 것이 정녕 '가치'라고 불려도 본인에게 부끄럽지 않을 것인지 말이다.

아무도 모르는 것인지, 누구도 알려고 하지 않은 것인지 되짚어 봐야 할 일일 것이다. 생명의 무게라는 게 '아 몰라' 하고 넘길 만큼 가볍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적어도 맞는 일을 하는 사람이 바보가 되는 세상은 아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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