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진우 Nov 04. 2018

완벽한 타인

'사람의 본심은 월식과 같아서 언젠간 드러나는 법이거든.'


마지막으로 이틀 연속 내리 같은 영화를 극장에서 본 게 언제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만큼 정말 오랜만의 일이다. 2018년을 기준으로 '소공녀'와 같은 한국영화를 또 만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내게는 굉장히 크게 와 닿는 작품이었는데 2018년이 두 달이 채 남지 않은 이 시점에서 또 만났다, '완벽한 타인'이라는 이름으로. '역린'을 연출했던 그 같은 감독이 맞는 건가 싶을 정도로 자기에게 딱 맞는 옷을 찾은듯한 '이재규' 감독, 앞으로의 행보가 굉장히 기대된다. 첫 관람 후에는 머릿속의 생각이 범람해서 글이 써지지도 않았다. 두 번 보고 속으로 수십 번 곱씹어보니 조금은 정리가 되는 것 같아 타자를 두드려본다.


단순한 접근일지 모르겠으나 영화의 오프닝 시퀀스가 속초에 위치한 '영랑호' 라는것부터가 친숙함이라는 가산점을 먹이고 들어간다. 꽁꽁 얼어붙은 영랑호 위에 옹기종기 모여 얼음낚시를 하며 몰래 훔쳐 온 라이터로 불을 지펴 잡은 생선을 구워 먹고, 투닥거리다가도 함께 월식을 바라보는 어린 친구들이 나온다. 34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뒤에도 그들은 모여 함께 저녁을 먹고 월식을 바라본다. 단지 이 짧은 시간의 몇 컷만으로 그들이 얼마나 가깝게 지냈는지를, 얼마나 오래 알고 지냈는지를 보여주는 이 연출 때문에 나는 이 영화가 시작부터 참 인상적이었다. 


친구들 생각이 났다. 영랑호에서 얼음낚시를 하며 월식을 바라본 적은 없지만, 고등학교 졸업사진을 찍으러 갔던 영랑호에서 둥그렇게 둘러앉아 삼겹살을 구워 먹었던, 당장 지난주에도 모여 함께 시간을 보냈던 그 새끼들이 떠 올랐다. 영화 속 게임을 하자고 하면 누가 적극적으로 내 뺄지도 말이다. 너 말이야 너, 인마.

관객들, 즉 보는 이의 입장에서는 흥미진진하고 마냥 재미있지만, 당사자들에게는 위험천만해 보이는 식탁 위에서의 이 게임이 영화의 중심 뼈대라고 할 수 있겠다. 누군가에겐 미친 짓, 또 다른 누군가에겐 말도 안 되는 이 짓은 왜 이렇게 공포스러울까. 고작 해봐야 내 손바닥만 한 물건이 왜 제임스 완의 영화보다 무섭게 느껴질까. 너무 많은걸 담고 있기 때문이다. 시대는 빠르게 변하고 편리해졌지만 그만큼 우리는 '스마트폰'이라 불리는 이 물건 하나에 너무 많은 의지를 하고 살아간다. 의지를 하니 믿게 되고, 믿게 되면서 내 것을 자연스럽게 내려놓다 보니 의도한 것 그 이상으로 나에 대해 또는 나와 연결된 이들에 대한 정보가 기록이 되고 공유가 된다. 우리는 믿기 때문에 속는 것이다. 사람에게도, 스마트폰에게도.


각기 다른, 동시에 아주 뚜렷한 색깔을 뿜어내는 캐릭터들의 설정이 이 영화에서 찾을 수 있는 가장 큰 장점이자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집이라는 한정적이고 좁은 공간에서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는 인물들의 호흡이 상당히 깔끔하다. 영화의 대부분을 이루고 있는 저녁 식탁 위에서의 대화는 언뜻 들으면 단순한 웃음을 유발하는 것처럼 가벼워 보이지만, 바늘처럼 뾰족하게 다듬어진 말들은 가슴을 콕콕 찔러 마음을 '징'하게 만드는 묘한 아픔과 여운도 함께 품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타인들에게 완벽 해 보일지도 모르겠으나 정작 당사자들의 속에서는 홀로 감당하기 힘든, 어떤 무너짐이 진행되고 있음을 비추어줄 때는 흠이 없어 보이는 인물들의 모습이 인간적으로 보임과 동시에 공감이 되어 묘한 감정이 속에서 들끓기도 했다.

영화의 결말 역시 상당히 마음에 든다. 복잡하고 정신없기 짝이 없던 중간 내용 자체를 자연스럽게 초기화함으로써 그 과정으로 일어난 위기와 파탄을 마치 없던 일처럼 만들어냈는데 바로 여기서 재밌는 질문들을 던질 수가 있다. 과연 그 게임을 하는 것이 맞았을까, 하지 않는 것이 맞았을까. 모르고 상처를 받지 않는 것이 나은 걸까, 알고 상처를 받는 것이 나은 걸까. 아는 것이 힘일까, 모르는 게 약일까.


육체적으로 가깝다고 해서 과연 우리의 관계가 깊다고 말할 수 있을까? 단순히 오랜 시간을 함께 보냈다고 해서 우리가 깊은 관계라고, 과연 단정 지을 수 있을까? 그렇다면 오랜 시간을 육체적으로 가깝게 지내왔다면 그게 '완벽한' 관계인 걸까? 영화는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당신이 생각하는 관계의 정의는 무엇이냐고 계속해서 물으니 생각하게 되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 보이지 않게 흐르는 '관계'라는 게 도대체 무엇인지, 생각하고 생각하여도 내려지지 않는 결론이 답답하기도 하며 어쩌면 우리는 서로를 잘 모르기 때문에, 말 그대로 '완벽한 타인' 이기 때문에 함께 살 수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모든 사람은 다르다. 지독하게 다르다. 100명을 세워 두면 100명이 다르고, 1000명을 세워 두면 1000명이 다른데, 그 숫자 뒤에 계속해서 0을 붙인다고 한들 따라오는 단어가 변하지는 않을 것이다. 다르다, 엄연히. 이렇게 다른 두 사람이 만나 그려내는 관계 역시 흔할 리 없고 같을 리 없으니 그 어디에도 예시는 없고 정답도 없다. '우리' 가 됐다고 해서 절대 같아지는 게 아니라 너와 나는 다름을 인정했을 때 비로소 '같은 길'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게 이 영화를 보고 내가 내린 관계에 대한 결론이다. 

물론 정답 일리 없다. 

그래서 당신이 내린 결론은 무엇인가요? 

매거진의 이전글 퍼스트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