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아기가 태어나길 원치 않았어요’
시작부터 끝까지 엄마의 모습이 선명하게 그려지는 작품이다, 적어도 내게는 그러했다. 이 영화의 감독 ‘알폰소 쿠아론’의 가정사를 나는 알지 못하고, 1970년대에 멕시코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더더욱 알지 못한다. 그저 말문이 막힐 정도의 수준 높은 촬영기법속에서 나의 어린 시절의 모습이, 내 기억속 엄마의 모습이 영화의 한 장면이 되어 화면으로 흐를 뿐이었다. 기억력이 나쁜편은 아니지만 어떤 순간의 ‘색’ 까지는 기억해내지는 못하는데, 작품 내내 ‘흑과백’ 으로만 보여지는 세상 역시 내 기억속 어딘가를 보여주는건 아닌가 하는 착각을 불러 일으키는 데에 작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
이 영화의 포스터로도 사용이 된 스틸컷은 영화를 재생하기전부터도 아름답게 다가왔지만, 재생후에 영화속에서 직접 맞닥뜨렸을 때 밀려오는 그 여운의 깊이는 올해 보았던 그 어떤 영화에서도 느끼지 못했던 특별함 그 자체였다. 2018년이 2주가 채 남지 않은 시점에서 올 한해 내가 본 영화의 장면중 가장 아름다운 장면을 눈에 담을 수 있었다. 정말, 정말 아름답다.
영화가 끝을 향해 나아가는 시점에서 얼마전 엄마와 집으로 함께 들어오던 길에 둘 사이 오고 갔던 대화가 생각이 났다. 엄마는 뭐가 그렇게 미안한지 내게 자주 미안하다는 말을 한다. 내겐 늘 고마운 사람이, 무조건적으로 나의 편에 있는 사람이 내게 미안하다고 말을 할 때면 나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를 몰라 덜컥 신경질부터 내기도 했다. 어느덧 제법 나이가 차올라 엄마가 처음 누나를 만나 엄마가 됐던 그때의 나이가 되기도 했다. 그래도 모르겠는 그 마음을 연신 내게 미안하다고 말하는 지금 엄마의 나이가 되면 조금은 알게 될까.
누군가의 뒤 없는 사랑과 지지가 있기에 오늘의 내가 있다는걸 애석하게도 자주 잊고 산다. 잊지 말라고, 잊어서는 안된다고 말해주고 깨어주는 ‘로마’ 같은 작품을 조우할 때면 하루가 길어진다. 잠을 잊는다.
파도를 뚫고 나아가는 ‘클레오’ 의 모습을 과연 몇번이나 다시 돌려 보게 될 지 지레짐작 할 수 없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