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근차근 천천히’
연말을 맞아 국내외 많은 영화들이 개봉하여 극장에서 상영중이지만 개인적으로 무엇하나 강하게 끌리는 작품이 없어 내심 아쉬운 마음이 컸다. 한해의 마지막 관람작이 될 것이라는 어떠한 명분이 더 신중한 선택을 유도하는구나 하는 찰나,짧은 일정으로 다녀 온 서울길에 집으로 돌아오기 직전 광화문으로 발길을 돌렸다, 이 작품을 보기 위해서.
다큐멘터리 형식의 이 작품은 한 노부부의 이야기다. 흡사 몇해전 국내에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던 작품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가 생각나기도 했지만 개인적으로는 보다 와 닿는것들이 더 많았던 작품이 바로 이 ‘인생 후르츠’ 라고 말하고싶다. 무엇이 더 좋다 나쁘다를 얘기하는게 아닌 내안에 울림의 강도를 따져 봤을때 ‘인생 후르츠’ 가 강하게 그리고 여전히 내 마음 어딘가에서 울리고 있다는걸 숨길 수는 없다는걸 짚고 넘어가고 싶었다.
나는 늘 급했다. 아니 지금도 급하고 앞으로도 아마 급하지 않을까 싶다. 특히 2018년의 ‘나’는 무엇이 중요한지도 모른채 마음만 앞서고 생각만 급했던 날들이 부끄럽게도 아닌 날보다 더 많이 존재했다. 그런 내게 벌이라도 내리듯, 누가 내리는지도 모른채 이런저런 벌들을 달게 받으며 무너지고 반성하기를 반복하며 다시 딛고 일어서기 시작한 요즘, 바로 이러한 상황속에 빠져 있던 내가 만난 이 작품은 넌지시 정확히 일곱마디 던진다.
‘차근차근 천천히’
이제는 고인이 되신 배우 ‘키키 키린’ 의 반가운 목소리로 들려오는 저 일곱마디가 들려 올때마다 울컥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작품의 흐름을 흐트리는 내레이션이 아닌 한 스토리가 마무리 되면서 잔잔하게 읊조려주는 반복되는 멘트가 이야기를 정리하여 차곡차곡 쌓아 올려주는듯한 느낌을 주는데 지금도 사라지지 않는 이 여운의 큰 일조를 했다고 할 수 있겠다.
혼자로 살아 간 세월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낸 둘의 모습을 담아 낸 장면들은 정말이지, 굳이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봄 같았다. ‘슈이치’ 씨가 좋아하는 고로케를 정성스럽게 만드는 ‘히데코’ 씨의 손길, ‘할머니’ 가 잘 보이게 해야 한다며 입간판 배경에 온통 노란색을 칠하시던 ‘할아버지’ 의 손길. 그들의 사랑 가득 묻은 손길은 내눈엔 끝나지 않을 ‘봄’ 처럼 보였다.
살아 온 날보다 살아 갈 날이 더 많은 내게 급할 필요 없다고, 차근차근 천천히 하자고 말해주는 이를 만난다는건 삶에 있어서 얼마나 큰 행복일까.
또 다시 검증되는 진리다. 사랑은 인생에서 우리가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행복이다, 확실하다.
분명한 철학과 확고한 신념을 가진 인간이 뿌리를 내리고 취하는 움직임은 상황이나 나이에 국한되지 않은채 많은 이들에게 사랑과 긍정의 이름이라는 달콤하고 잘 익은 열매를 선물한다. 무더운 더위에도 꿋꿋하게, 매서운 추위에도 덤덤하게, 사계절 내내, 오래오래. 한해를 마무리하는 이 시점에, 설레는 마음과 이루고자 하는 소망들이 한껏 부풀어지는 바로 이 시점에, 만나게 되어 참 다행이라고, 힘들었던 2018년의 마지막 작품이 되어 주어 참 고맙다고, 다가오는 해에는 꼭 ‘차근차근 천천히’ 나아가겠다고, 꼭 그러겠다고 다짐하고 또 쓴다.
한번 더,
차근차근 천천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