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이 프로젝트가 즉흥적인 모험이 되길 바래’
살다보면 마지막으로 눈을 감는 그 순간까지도 기억속에 두고싶은, 가슴속에 품고싶은 순간을 꽤나 여럿 맞닥뜨리게 된다. 훗날 지우고싶은 장면이 될 수도 있겠지만 그 순간만큼은 가장 선명하고 맑은 빛을 뿜어내며 기억해달라고 소리치는 사람이나 물건이나 배경이 분명히 존재한다. 이 부분에 있어서는 내가 사랑하는 음식보다도, 내가 좋아하는 글보다도 더 확실하고 독보적인 힘을 내는게 있다. 사진, 바로 사진이다.
피사체를 프레임안에 담아내는 그 과정 혹은 피사체가 되어 누군가의 프레임안에 담기는 그 과정은 사람이 살아가면서 행할 수 있는 가장 복잡하지 않은 동시에 가장 많은걸 남기는 예술적 행위라고 단언할 수 있다. 단지 셔터를 눌렀을 뿐인데 그날의 계절과 시간, 그리고 감정이 고스란히 담기는 사진은 ‘물체를 있는 모양 그대로 그려냄. 또는 그렇게 그려 낸 현상’ 이라는 사전적 의미가 터무니없이 부족하게만 느껴진다.
즉흥적이기 보다는 계획적이며 정밀한 작업을 추구하는듯한 ‘JR’ 과 우연이 만들어내는 운명을 사랑하는 ‘바르다’ 의 만남은 단순히 젊고 상대적으로 늙은 남녀의 만남이라는 점을 배제하더라도 다소 어색해 보였다. 저 둘이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라는 내 모래알 같은 편견은 이 작품의 시퀀스 하나하나가 잘게 아주 잘게 부수어냈다고 말하고싶다. 또 한번 편견이라는 색안경을 쓰고 세상을 바라 본 나, 자신의 어리석음을 반성한다.
전혀 낯선 혹은 이미 알고 있는 프랑스 외곽지역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두 사람이 만들어내는 족적의 존재적 가치는 그 무엇으로도 환산될 수 없는 것들임이 틀림없다. 그 지역을 이루고있는, 동시에 함께 성장한 사람들의 모습을 피사체로 담아 낸 얼굴 혹은 전신사진을 벽에 새기는 그 과정은 아름답다못해 경이롭기까지 했다.
지난 몇개월간 그리고 몇년전의 내가 담아 냈던 ‘속초 고성’ 의 사진들을 차근차근 천천히 넘겨 보았다. 이것저것 많이도 찍었다는 만족스러움과 동시에 그곳은 왜 안찍었지 하는 아쉬움또한 역시 짙게 남는다. ‘2012’ 폴더를 클릭해보니 이제는 만날 수 없는 존경하는 외할아버지의 얼굴도 만날 수 있었다. 그 당시에는 별 생각없이 무심코 찍어 낸 사진일수도 있겠지만 그때의 나에게 지금의 내가 고마운 감정을 느낄 수 있게 하는 것, 역시 사진이다.
언젠가 사람의 ‘눈’ 이라는 가장 훌륭한 렌즈를 놔두고 왜 그 무거운 카메라를 들고 다니냐는 질문을 받은적이 있다.
우물쭈물하며 그 당시에는 똑바로 대답을 하지 못했는데 이제는 할 수 있을것 같다.
‘세상은 눈으로만 보는게 아니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