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말이 칼처럼 심장을 찌르네요’
삶의 모든 순간이 천국 같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행복했다고, 지금도 행복을 찾으며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고 감히 말하겠다. 굳이 감히를 가져다 적은 이유는 이 작품 ‘가버나움’을 보고 나서는 그 어떠한 정도의 행복도 쉽게 입에 올릴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인생이 개똥 같다고, 좆같다고 말하는 열두 살 소년 ‘자인’ 에게 해 줄 말도 해줄 수 있는 말도 이 세상에는 없다는 걸 영화를 보고 나면 비로소 알게 된다. 말문을 막는다, 이 영화는.
매 시퀀스가 강한 울림을 자아낸다. 그 대부분의 장면이 내게는 그리고 영화를 보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당연한 것들이다. 지갑 안에 내 존재를 검증할 수 있는 신분증이 있는 것, 수도꼭지를 틀었을 때 맑고 투명한 물이 콸콸 쏟아지는 것, 냉장고를 열었을 때 음식이 아니 어쩌면 냉장고가 있다는 것, 그 자체를 우리는 한 번이라도 의심해 본 적이 있던가. 부끄럽게도 나는 없다.
자인은 분명 강하고 똑똑한 아이다. 그럼에도 아직 ‘아이’ 다. 지옥 같은 삶을 버텨내기엔 그 안에서 홀로 서기엔 아직 너무 어리고 여린 존재다. 그런 존재가 지켜내려고 한, 지켜 낸 존재들은 어떠한가. 더 약하고 어쩌면 더 궁지에 몰린 존재들이다. 자신이 느끼는 이 사회의 불합리함을 절대 되물리지 않겠다는 그 의지와 저력이 그 작은 체구의 삐쩍 마른 소년에게서 절절하게 뿜어져 나온다. 누가 봐도 스파이더맨과는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이는 그저 허접한 의상을 따라 입은 노인을 보고서 스파이더맨과는 무슨 관계냐고 묻는 자인의 순수함에서는 알 수 없는 죄책감에 입안에 피가 가득 고이는 느낌이 들었다. 그저 미안했다.
내 삶 대부분의 나날들은 열 번 행복하면 한번 불행했다. 근데 그 한 번의 불행이 늘 열 번의 행복을 밀어 내, 나를 괴롭혔고 행복의 빈도를 스스로가 묵살시키기 바빴다. 반면에 ‘자인’ 은 본인에게 닥친 열 번의 불행 중 단 하나의 불행도 남에게 주지 않기 위해 싸우고 소리친다, 그 얇디얇은 팔을 거세게 흔들며 말이다. 그래서 또 미안했다.
영화 가버나움은 다른 세상의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 보일러가 따뜻하게 돌아가는 내 집 한편에 앉아 이 영화에 관한 글을 적는 게 현실인 것처럼, 저기 저 멀리 어딘가 미로 같은 차가운 현실 속에서 방황하는 아이들에게도 이 시간은 똑같이 흐르고 있다. 함께 호흡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결코 잊지 않겠다.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지 늘 생각하며 살아가겠다.
2019년이 아직 335일이나 남았지만, 또 감히 말하겠다.
올해의 영화가 여기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