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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진우 Feb 07. 2019

가버나움

‘엄마의 말이 칼처럼 심장을 찌르네요’


삶의 모든 순간이 천국 같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행복했다고, 지금도 행복을 찾으며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고 감히 말하겠다. 굳이 감히를 가져다 적은 이유는 이 작품 ‘가버나움’을 보고 나서는 그 어떠한 정도의 행복도 쉽게 입에 올릴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인생이 개똥 같다고, 좆같다고 말하는 열두 살 소년 ‘자인’ 에게 해 줄 말도 해줄 수 있는 말도 이 세상에는 없다는 걸 영화를 보고 나면 비로소 알게 된다. 말문을 막는다, 이 영화는.

매 시퀀스가 강한 울림을 자아낸다. 그 대부분의 장면이 내게는 그리고 영화를 보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당연한 것들이다. 지갑 안에 내 존재를 검증할 수 있는 신분증이 있는 것, 수도꼭지를 틀었을 때 맑고 투명한 물이 콸콸 쏟아지는 것, 냉장고를 열었을 때 음식이 아니 어쩌면 냉장고가 있다는 것, 그 자체를 우리는 한 번이라도 의심해 본 적이 있던가. 부끄럽게도 나는 없다.

자인은 분명 강하고 똑똑한 아이다. 그럼에도 아직 ‘아이’ 다. 지옥 같은 삶을 버텨내기엔 그 안에서 홀로 서기엔 아직 너무 어리고 여린 존재다. 그런 존재가 지켜내려고 한, 지켜 낸 존재들은 어떠한가. 더 약하고 어쩌면 더 궁지에 몰린 존재들이다. 자신이 느끼는 이 사회의 불합리함을 절대 되물리지 않겠다는 그 의지와 저력이 그 작은 체구의 삐쩍 마른 소년에게서 절절하게 뿜어져 나온다. 누가 봐도 스파이더맨과는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이는 그저 허접한 의상을 따라 입은 노인을 보고서 스파이더맨과는 무슨 관계냐고 묻는 자인의 순수함에서는 알 수 없는 죄책감에 입안에 피가 가득 고이는 느낌이 들었다. 그저 미안했다.


내 삶 대부분의 나날들은 열 번 행복하면 한번 불행했다. 근데 그 한 번의 불행이 늘 열 번의 행복을 밀어 내, 나를 괴롭혔고 행복의 빈도를 스스로가 묵살시키기 바빴다. 반면에 ‘자인’ 은 본인에게 닥친 열 번의 불행 중 단 하나의 불행도 남에게 주지 않기 위해 싸우고 소리친다, 그 얇디얇은 팔을 거세게 흔들며 말이다. 그래서 또 미안했다.

영화 가버나움은 다른 세상의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 보일러가 따뜻하게 돌아가는 내 집 한편에 앉아 이 영화에 관한 글을 적는 게 현실인 것처럼, 저기 저 멀리 어딘가 미로 같은 차가운 현실 속에서 방황하는 아이들에게도 이 시간은 똑같이 흐르고 있다. 함께 호흡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결코 잊지 않겠다.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지 늘 생각하며 살아가겠다.


2019년이 아직 335일이나 남았지만, 또 감히 말하겠다.
올해의 영화가 여기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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