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하지 않다 보면 대단한 뭔가를 하게 되지’
버리고 싶은 생각들을 버리는 노력을 하다 보면 버리려고 하지 않았던 생각마저 따라 버려지는 불상사를 경험하게 된다. 이 상황은 마치 잘 뜯어지지 않는 음료 마개를 뜯어내다 음료를 손등에 묻히는 일과 크게 다르지 않다. 버리려고 하지 않았는데 버려진 거다. 음료도, 생각도. 그렇게 사라지는 것들은 인생에 있어서 꽤나 중요하게 여겨질, 소중하고 고귀한 것들인 경우가 많으며 그렇게 사라지고 나면 애석하리만큼 쉽게 돌아오지도 않는다. 어쩌면 영영 사라져 버리고 만다.
다이어리와 문집을 꺼내 펼쳐 내 어린 시절과 잡으려면 잡힐듯한 멀지 않은 과거 그 안을 들여다보았다. 비록 내 옆에 말하는 곰 인형은 없었지만 그보다 특별하고 소중한 감정과 마음이 내 안에 있었다, 분명하고 선명하게. 그런데 어느 순간 잊고 살았다. 버리려고 한 것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지키려고 애쓰지도 않았더니 정말, 그냥, 그렇게 사라지더라. 겉으로 보여지는 모습과는 다르게 어딘가 불안해 보이는 ‘크리스토퍼 로빈’ 에게 이제는 길을 잃지 말라던 ‘푸’의 말이 더 와 닿았던 건 그러한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쏟아진 음료를 다시 담는 방법은 없겠지만, 버려진 생각을 다시금 내 것으로 만드는 건 마음만 먹는다면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이다. 길을 잃지 않으려면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내가 노력을 해야 한다는 얘기다. 내 생각을 내 것으로 만드는 데에는 그만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소리다. 잊지 않고 간직해야 할 시간들을 기억할 노력을 해야겠다는 다짐을 새삼 하게 된다.
원제인 ‘Christopher Robin’을 왜 이렇게 번역했는지 궁금했는데 비로소 알겠다.
푸, 다시 만나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