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악은 특별한 것이 아닙니다’
참 오랜만에 극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보고 싶은 작품도 많고 기대되는 작품도 많은 요즘 극장가에서 내 선택은 다름 아닌 ‘검은 사제들’이라는 인상적인 장편 데뷔작을 연출한 장재현 감독의 신작 ‘사바하’. 주변에서 영화와 관련된 극도로 상반되는 평가들을 접하고, 흥미로운 리뷰들이 많이 보여 우선적으로 관람한 작품인데 보고 나니 왜 이렇게 호불호가 갈리는지 알겠다. 우선적으로 밝히자면 나에겐 ‘호’에 가까운 작품이다.
영화는 극의 극초반부터 음산하고 스산한 기운을 강하게 표출한다. 사용하는 음악이며 화면에 비치는 색감의 톤이며 그 무엇 하나 밝거나 혹은 가벼운 것이 없다. 자연스럽게 나홍진 감독의 ‘곡성’ 이 떠오르는 인트로였는데 확실히 또 다른 매력을 뿜어내니 소재에 대해서 많은 공부와 깊은 연구를 했다는 게, 장면 장면의 정말 많은 공을 들였다는 게 오프닝 시퀀스에서부터 느껴지곤 했다.
보통의 작품들이 따르는 전개 방식이 아닌 마치 이야기 속의 퍼즐을 맞추는듯한 연출 방식도 참으로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빙고나 퍼즐을 하듯이 큰 판을 보여주고 숫자 하나 또는 퍼즐 조각 하나 툭툭 예정된 타이밍에 맞춰 던져주는 듯한 전개가 극의 완성도를 높이는데 많은 일조를 한다고 여겨진다. 복선을 던지고 다시 그 복선을 회수하는 능력, 굉장히 뛰어나다.
단점이 보이지 않는 것도 아니다.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을 활용하는 방식이라던지, 꼭 넣어야 했을까 하는 몇몇의 장면들도 있지만 앞서 말한 장점들이 이런 작지 않은 단점들을 상쇄시키고 집어삼킨다. 전체적인 사운드와 조명의 밸런스가 정말 큰 장점이라고 다시 한번 언급하고 싶다. 개인적으로 이러한 부분에서 굳이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행위의 기쁨을 느낀다.
믿음, 믿음이 지닌 가장 공포스러운 점은 특정한 순간이 오면 그것이 옳은가, 옳지 않은가를 더 이상 중요하게 여기지 않음에 있다. 내가 믿는 그 순간부터 그것이 곧 진리고 정의가 되는, 절대적인 선이 되는 것이 바로 믿음이 지닌 이율배반이다. 내가 믿는 것이 곧 ‘선’이니 내가 믿는 것을 믿지 않는 모든 자가 곧 ‘악’이 되는 이 구조는 우리 사회 깊은 곳에 여전히 자리하고 있으며 아마 앞으로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인간의 믿음이 가장 단단해지는 순간은 잔인하게도 인간이 가장 나약한 상황에 처해있을 때다. 이상적인 사고판단이 되지 않는 그때, 나 자신이 내 안에서 길을 잃어버린 그 순간에, 나타나는 길잡이가 그들에겐 구원자고 곧 정의로 낙인 된다. 그 길잡이가 뱀인지 마군 인지도 식별하지 못한 채 그저 빛, 나를 구원해줄 신 그 자체로 여겨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한 믿음에 푹 젖어있는 사람들을 옆에서 지켜보는 일은 썩 유쾌하지 못하다. 안타깝다 못해 참으로 슬픈 일이다. 극 중 배우 이정재가 연기한 박목사가 유사한 감정을 작품의 후반부에서 읊조릴 때 작지 않은 울림을 느낀 것은 그런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앞서 말했듯이 흔하지 않은 소재이기에 더 많은 공부와 연구가 필요로 했을 거라 생각된다. 본인이 하고자 하는 일에 말하고자 하는 걸 잘 녹여내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는 걸 알기에 이 부분에서도 큰 박수를 보내고 싶다. 그러한 감독의 의도대로
선악의 그 ‘모호한’ 경계에서 아주 제대로 놀아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