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vengers Assemble’
-Captain America
어떠한 경우에도 하루 종일 할 수 있다고 말하며 모든 일에 있어서 매번 강하고 선한 의지를 넓은 어깨와 엉덩이에서 뿜어내는 캡틴 아메리카, 스티브 로저스는 본인의 슬픔이나 고통보다 타인의 것이 우선인 사람이다. 슬픔을 딛고 함께 나아갑시다! 라고 강단 있게 말을 하며 누군가에겐 작은 위로와 격려를 건네는 영웅적인 면모를 보이는 한편, 우리는 그래선 안된다며 이 아비규환의 상황을 진정시킬 수 있는 아주 희박한 경우의 수까지 놓치지 않으려는 조금 더 영웅적인 면모를 지닌 사람이다.
첫 번째 어벤져스 시리즈에서 스티브 로저스와 토니 스타크가 갈등을 빚는 장면을 떠올려 볼 때 토니는 스티브에게 너의 모든 특별함은 실험실에서 나온 거라며 실험용 쥐 취급을 하며 조롱을 하는 시퀀스가 있다. 그리고 스티브 로저스는 마지막 어벤져스 영화에서 토니가 틀렸음을, 본인의 ‘고결함’을 스스로 증명한다. 어벤져스 시리즈에서 가장 듣고 싶었던 ‘Assemble’ 을 화면 가득 소리치며 말이다.
매 순간 개인보다 대의가 우선인 삶을 살아온 스티브는 토니가 말하는 ‘인생’ 을 한번 살아보고 싶었다고 말을 한다. 그리고 그 인생은 아름다웠다고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하는 그의 표정에서 캡틴 아메리카와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자글자글한 주름 사이를 뚫고 나오는 어떤 행복이 진하게 묻어있다. 인생, 아름다움 그리고 행복, 본인의 희생으로 지켜낸 누군가의 삶이 지닌 가치를 비로소 경험한 그의 모습은 그 어떠한 순간보다도 편안해 보였다.
마지막 시퀀스, 샘의 말처럼 스티브 로저스의 캡틴 아메리카가 없는 세상은 한동안 조금 슬프겠다 아니 어쩌면 긴 시간 그리고 많이.
-Iron man
2008년에 개봉한 영화 ‘아이언맨’ 을 보고 느낀 충격은 새롭고 신선했다. 그간 내가 그리고 우리가 봐 왔던 히어로 영화 ‘스파이더맨’ 이나 ‘배트맨’ 과 같은 영웅들의 모습과는 많이 다른 성질을 띄기 때문이었다. ‘아이언맨’ 은 본인의 가면을 스스로 벗었기 때문이다. 필사적으로 본인의 얼굴을 숨기려고 했던 ‘피터 파커’ 혹은 ‘브루스 웨인’ 과는 굉장히 대조되는 영웅적인 스탠스를 보여주며 앞으로 그의 앞에 닥쳐 올 세계는 저 둘과는 어떤 차이점이 있을까 하는 궁금증을 유발하기도 했다.
이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모든 사건 사고가 본인의 잘못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본인의 얼굴을 감춰 줄 가면이 없는 ‘토니 스타크’ 가 지고 있을 ‘아이언맨’ 이라는 이름의 무게를 생각해보면 괜스레 어깨가 뻐근해짐을 느끼기도 했다. 그러한 토니의 심리를, 내적으로 본인을 괴롭히는 수많은 짐들을 잘 묘사하고 보여준 작품 ‘아이언맨3’ 는 ‘엔드게임’ 을 감상한 뒤 가장 먼저 생각이 난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작품이었다. 세상을 위해서 행해 왔다고 믿어 온 그간의 행보의 실상이 세상을 파괴하고 있음을 알았을 때, ‘백만장자’ ‘플레이 보이’ 토니 스타크는 강철 옷을 두르고 전쟁의 현장으로, 핵 미사일을 등에 업고 우주로, 계속해서 대의를 위해 본인을 희생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편하게 잠을 이룰 수 없었던 까닭은 본인의 가면을 스스로 벗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 모든 행동에 대해, 본인이 행한 행동에 대해 끝까지 책임을 져버리지 않는 그 모습이 많은 사람들이 토니 스타크를, 아이언맨을 3000만큼 사랑하는 이유일 것이다. 11년이라는 길고 긴 시간을 함께한 영웅의 시작과 끝을 많은 사람들이 오랫동안 기억할 것이다.
따뜻한 마음이 있다는 그 증거를 말이다.
작년에 개봉한 작품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 의 엔딩은 흔한 것이 아니었다. 작게 보면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내에서도, 크게 보면 그간 접해 온 히어로 영화들의 결말을 생각해 보아도 작품 속 빌런에게 그토록 대놓고 손을 들어주고 끝내는 작품은 적어도 내 기억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심지어 그 악당의 승리로 빚어진 결과는 어떠한가, 은하계 생명체의 절반을 없애겠다는 상상하기조차 쉽지 않은 상황을 언급하고 실행한 그 결과는 얼마나 처참했던가. 늘 바른말을 고수하며 긍정적인 방향으로 생각의 회로를 바꾸는 캡틴 아메리카, 스티브 로저스의 모든 걸 잃은듯한 표정과 그의 입에서 뱉어지는 ‘신이시여’ 라는 대사가 그날, 그들의 참담한 패배를 다시금 실감 나게 했다. 지키겠다는 신념과 의지로 늘 이겨왔던 어벤져스는 파괴하겠다는 보다 무거운 신념을 가진 ‘타노스’ 에 의해 정말 처참하게 짓밟혔다.
엔드게임의 오프닝 시퀀스는 그날의 처참함, 슬픔, 비극을 다시금 강하게 상기시키는 기능을 한다. ‘인피니티 워’ 에서는 등장하지 않았지만, 어벤져스의 원년 멤버이자 가족이 본인의 존재 이유임을 강조하던 캐릭터 ‘바톤’ 에게서 반이 아닌 모든 걸 빼앗아가는 짧고 강렬한 오프닝 신은 시작부터 몰입감을 최고조로 끌어올린다. 타노스는 절반이라고 했지만, 누군가에겐 모든 것일 수도 있다는 비극적인 상황이 주는 슬픔의 깊이가 남다르게 느껴지곤 했다. 그리고 흘러나오는 ‘Traffic’ 의 ‘Dear Mr. fantasy’ 는 정말이지, 이전에도 언급한 적이 있지만 아주 뛰어난 선곡이라고 다시 한번 꼭 언급해야겠다.
지금까지 영화를 세 번 보았는데, 2차 3차 관람에서는 작품의 전체적인 흐름보다는 등장인물 개인의 감정이나 상황에 좀 더 포커스를 두고 관람을 하였다. 지금 돌이켜보면 가장 연민이 가는 캐릭터는 역시 ‘토르’ 다. 전작에서 본인의 입으로 상실, 고통, 슬픔 등이 본인을 더욱 강하게 만들어준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고 얘기하지만, 결국 그 패배의 그늘 속에 잠식되는 ‘인간’적인 모습을 보일 때 토르라는 캐릭터가 가지는 매력이 더 부각된다고 여겨졌다. 과거로 돌아가 어머니의 위로를 받고 난 후 묠니르를 손으로 꽉 쥐며 ‘난 여전히 자격이 있어’ 라고 말하는 부분이 강하게 뇌리에 박힌 이유는 그 때문일 것이다.
인피니티 워의 엔딩이나 사전에 공개되었던 트레일러에서 풍기는 무거운 분위기와는 다르게 엔드게임은 적당한 위트를 섞어가며 3시간이라는 짧지 않은 러닝타임의 호흡을 제법 유연하게 조절한다. 많은 사람들이 3시간이 전혀 길지 않게 느껴졌다고 말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토니가 과거로 돌아가 아버지 하워드를 만나 나누는 대화가 그중 하나라고 여겨진다. 거대한 스케일과 화려한 시각효과가 가득한 전투신만큼이나 두 부자 사이에 오고 가는 말들이 선명하게 기억되니, 가족 간의 사랑을 강조함에 있어서 억지로 강요하는 게 아닌 자연스럽게 녹아들게 유도하니 조금도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감동은 강제로 쥐어 짜내는 것이 아님을 이 히어로 영화는 말하고 있다.
어벤져스를 단순히 한 편의 히어로 영화라고 정의하기엔 이 문화적 컨텐츠가 지닌 파급력의 정도가 일정 수준을 넘어섰다고 생각된다. 한 시대를 통용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많은 이들의 사랑과 관심을 받은 이 세계관 속 이야기는 오랜 시간 동안 회자되며 사람들의 가슴속에 꺼지지 않는 불꽃처럼 자리할 것이다.
앞으로 살면서 이러한 시리즈를 또 만날 수 있다면 그건 그대로 기쁠 것이고, 설령 만나지 못한다 하더라도 이미 만난 오늘이 있기 때문에 또 기쁠 것이다.
‘Love you, 3,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