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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늦작가 Jun 07. 2024

무쓸모의 쓸모

삼식이가 된 이사님께 보내는 편지

여전히 어설픈, 30s


"밥값은 하고 있냐?



사회 초년생 시절에 정말 미웠던 상사가 있는데 그렇게 나에게 ‘밥값을 하고 있는지’를 물었다. 월급 받은 만큼 일을 잘하고 있는지를 묻는 질문이었는데, 꼭 점심시간에 밥이 나오기 전에 이 질문을 해서 그 자리를 무겁게 만들었다. 밥을 잘 먹으면 밥이 넘어가냐고 뭐라고 하고, 밥을 못 먹으면 기운 내서 더 열심히 할 생각을 하라고 닥달이었다. 어쩌라고 진짜. 



덕분일까? 듣기 싫은 소리는 한 귀로 흘리면서 꼭꼭 씹어 먹어 소화도 잘 시키는 튼튼한 위와 장을 갖게 되었다.



월급이 통장에 찍힐 때마다 나의 쓸모에 대해서 고민하게 된다. 일정 스펙을 갖추고 들어온 동료들 사이에서 나의 쓸모가 더 돋보이기를 바라며 공작새처럼 치장하기도 하고, 더 일찍 출근해서 더 늦게 퇴근하기도 한다. 이렇게 20년 30년 회사를 위해 쓸모를 다했던 이가 결국 쓸모를 다하는 순간에 얼마나 비참하게 갈아치워지는지도 목격한다. 매일 밥값을 했냐고 묻던 이는 스스로 밥값을 증명하지 못하고, ‘삼식이 아저씨’가 되었다. 앞으로 그는 어떤 식으로 밥값을 할까. 잔인하게 효율만 추구하는 자본주의 시장에서 끝까지 살아남을 쓸모란 무엇일까.



의외로 회사에서 쓸모없다고 하는 재주들이 삶에는 큰 쓸모가 있음을 발견하는 요즘이다. 노안이 와서 엑셀에 있는 작은 숫자들 보기는 힘든 박부장님은 사모님과 주말농장에서 자식들을 위한 가지와 오이를 키워내며, 손주에게 풀꽃 이름을 알려주는 행복한 할아버지다. 골프도 못 쳐서 접대골프를 못 나가 승진을 못하는 영업팀 최 과장님은 주말마다 고아원 아이들이 목 빠지게 기다리는 레고 선생님이다.



내 쓸모는 회사 밖에 있을 수 있다. 쓸모를 회사가 정하게 하지 말자. 회사가 정해준 쓸모대로 살아가기에는 이건 내 인생이다. 그리고 너무 짧은 인생이다. 또 회사 안에 쓸모가 회사 밖에서는 하등 쓸데없는 잡기일 수 있다. 



그래서 명함으로 나를 소개할 수 없는 시절이 올 때 나의 쓸모가 이것이라 말할 수 있게 부지런히 앞뒤 살피며 살아가자. 내 밥값은 앞으로 밥값은 내가 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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