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름으로 완성되는 나의 생
네가 내 이름을 불렀을 때,
아빠는 너에게 내 심장을 주기로 결심했단다.
그전까지 ‘아빠’라는 단어는 나에게 무거운 책임감의 다른 이름이었다. 대출 원리금을 계산하고, 자산 유동성을 체크하며, 네가 자랄 환경을 물리적으로 견고하게 구축하는 것. 그것이 내가 정의한 아빠의 역할이자 의무였다. 나는 차가운 숫자로 너의 미래를 설계하는 이성적인 보호자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네가 그 서툰 입술을 달싹여 나를 명확히 지칭한 그날, 나의 모든 이성적인 방어벽은 단 한 마디에 무너져 내렸다.
사실 징조는 있었다. 며칠 전부터 너는 입술을 안으로 말아 넣으며 "부, 바, 바" 같은 소리를 연습하곤 했지. 나는 그게 그저 구강 구조의 발달 과정 중 하나라고 분석하며, 유튜브 발달 영상을 찾아보던 중이었다. 그러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평범한 오후, 퇴근하고 돌아온 나를 향해 네가 배밀이로 다가오다 고개를 번쩍 들었지. 그리고 내 눈을 똑바로 응시하며 아주 선명하게 내뱉었다.
"아빠!"
그것은 단순한 공기의 울림이 아니었다. 8년이라는 긴 침묵을 깨고 마침내 도착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초대장이었다. 나를 부르던 네 입술의 오물거림, 나를 향해 빛나던 그 눈빛, 그리고 성공했다는 듯 지어 보이던 네 황홀한 표정을 나는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그 찰나, 내 머릿속을 가득 채우던 복잡한 계산기 숫자들은 증발해 버렸다. 대신 내 심장이 너의 부름에 박자를 맞추어 뛰기 시작했다.
자식을 키우는 것이 이토록 황홀한 행복인데, 사람들은 왜 ‘무자식이 상팔자’라는 말을 만들었을까 의구심이 들 정도였다. 아마 그들은 아이의 고사리손이 ‘주세요’라는 말에 반응해 내 손바닥 위로 물건을 툭 올려놓을 때의 그 기특함을, ‘아니’라고 도리질하며 자기 의사를 표현하는 그 경이로운 성장을 미처 보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요즘 너는 부쩍 말이 늘었지. "아빠, 엄마"는 기본이고 "맘마"를 찾기도 하고, 싫은 건 분명하게 "아니"라고 말할 줄도 안다. 네가 내뱉는 그 짧은 단어 하나하나가 나에게는 세상 그 어떤 문장보다 위대하게 들린단다. 그 소리를 들을 때마다 아빠는 다짐해. 너에게 오래오래 이 목소리를 들려주기 위해서라도, 네가 부를 때 언제든 달려가기 위해서라도 정말 건강해야겠다고 말이야.
시온아, 아빠는 요즘 부쩍 먼 훗날의 일들을 상상하곤 한단다. 내 생의 모든 시계가 천천히 멈춰가고 호흡이 잦아드는 그 마지막 순간 말이야. 그때 네가 내 곁에 와서, 지금처럼 맑은 목소리로 나를 "아빠"라고 불러주겠지? 죽음이라는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워진 그 순간에도, 나는 내 안에 남은 마지막 단 한 조각의 에너지까지 모두 털어 모아 너를 향해 활짝 웃어 보이고 싶어.
내가 듣는 내 생애 마지막 ‘아빠’ 소리에도 내가 기쁘게 응답할 수 있다면, 나는 비로소 내 인생이 더할 나위 없이 충분히 완성되었다고, 참으로 근사한 생이었다고 확신하며 눈을 감을 수 있을 것 같아. 8년의 기다림 끝에 나를 아빠로 깨워준 네 첫 목소리부터, 내 생의 마지막 페이지를 닫아줄 너의 그 목소리까지. 네가 불러주는 그 이름은 내가 이 험한 세상을 전진하게 했던 단 하나의 이유이자 구원이란다.
아빠가 너에게 언제나 평안하고 안온한 안식처가 되어주듯, 너 또한 나에게 영원한 행복의 원천이 되어주렴. 나를 아빠라고 불러주어서, 나의 메마른 세계에 사랑이라는 홍수를 내어주어서 정말 고맙다. 나의 시온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