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약. 그 위대한 발걸음

중력을 이겨낸 꼬마 영웅의 눈물겨운 전진

by 늦작가

시온이는 고개가 살짝 기울어진 채 세상에 왔다. 좋게 말하면 개성 넘치는, 냉정하게 말하면 선천적으로 조금 ‘삐딱한’ 아이였다. 그 기운 목을 바로잡기 위해 우리는 매주 아동발달클리닉의 문턱을 넘었다. 갓 태어난 핏덩이를 데리고 병원을 오가는 길은 부모에게도, 아이에게도 고통스러운 행군이었지만, 뜻밖의 수확도 있었다. 시온이는 그곳에서 아동 전문 물리치료사 선생님들에게 뒤집기와 터미타임, 배밀이와 네 발 기기까지 전수받았다. 이른바 '프리미엄 1:1 집중 과외'를 받는 엘리트 코스를 밟게 된 셈이다.


아빠가 처음인 나에게 신생아의 성장 서사는 도통 알 수 없는 미지의 영역이었다. 주변에 조언을 구할 어린 조카도 없었기에 나의 스승은 오직 유튜브뿐이었다. 화면 속 남의 집 아이들과 우리 시온이를 끊임없이 대조하며 마음을 졸였다. 그러다 문득, 전문가들에게 하드 트레이닝을 받는 시온이를 보며 씁쓸한 웃음이 났다. ‘그래, 우리 딸은 지금 국가대표급 훈련 중인 거야.’ 그렇게라도 생각해야 타들어 가는 속이 조금이나마 진정되었다.


시온이는 마치 자신의 발달 캘린더를 머릿속에 넣어둔 아이처럼, 때가 되면 기가 막히게 다음 진도를 빼곤 했다. 사경 치료의 핵심이라는 ‘터미타임(엎드려 고개 들기)’을 위해 거실은 거대한 훈련장이 되었다. 아이의 시선을 끌기 위해 화려한 거울과 장난감을 깔아두었지만, 최고의 장난감은 결국 부모의 얼굴이라는 말에 나는 기꺼이 광대가 되기로 했다. 시온이 앞에 엎드려 과장된 표정을 짓고, 쉴 새 없이 말을 걸었다. 10초가 20초가 되고, 그 짧은 찰나가 마침내 1분을 넘어서기를 바라는 마음은 간절함을 넘어 처절하기까지 했다. 아이가 시기에 맞춰 커가는 것이 오롯이 나의 성적표인 것만 같아 늘 조바심이 났다.


지금 돌이켜보면 참 부질없는 욕심이었다. 그저 시온이와 눈을 맞추고, 도통 알 수 없는 아이의 표정을 하나하나 읽어내며 바닥을 뒹굴던 그 고요한 시간들이 얼마나 짧게 지나가 버렸는지 이제야 깨닫는다. 그 시절을 불안과 초조가 아닌, 순수한 행복과 설렘으로 채웠더라면 어땠을까. 10시간을 자야 할 아이가 9시간밖에 못 잤다고 발달 장애를 검색하기보다, "아빠가 없으면 잠들지 못할 만큼 나를 사랑하는구나"라는 근거 있는 자부심으로 하루를 보냈더라면 훨씬 근사했을 텐데 말이다.


터미타임을 할 때면 시온이는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힐 정도로 최선을 다했다. 목 근육을 키워 기어코 세상을 정면으로 보겠다는 그 눈물겨운 사투를 지켜보는 일은 생각보다 고통스러웠다. 대신 해주고 싶어도 그럴 수 없고, 섣불리 도와주는 것이 오히려 아이의 성장을 방해한다는 사실이 부모를 무력하게 만들었다. 그저 한 걸음 뒤에서 응원하며 기다려 주는 것, 그리고 아이의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정성껏 닦아주는 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아빠 노릇'이었다.


시온이가 처음 뒤집기에 성공하던 순간은 지금도 박제된 사진처럼 선명하다. 엉덩이가 바닥에서 붕 뜨고 얼굴이 터질 듯 빨개지도록 온 힘을 쥐어짜던 찰나, 마침내 ‘툭’ 하고 몸이 뒤집혔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부럽지 않은 카타르시스가 거실을 감쌌고, 스스로가 대견해 죽겠다는 듯 승리감에 도취한 시온이의 표정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뒤이어 시작된 배밀이는 또 어떠했나. 눈앞의 핸드폰이나 장난감을 향해 배를 바닥에 대고 필사적으로 전진하던 모습은 단순한 움직임이 아니었다. 그것은 생존의 의지였고, 미지의 세계를 향한 거침없는 호기심이었다. ‘인생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단단한 DNA가 내 딸에게도 있구나.’ 그 역동적인 전진을 보며 나는 내심 깊은 안도감을 느꼈다.


물론 성장의 기쁨 뒤엔 ‘뒤집기 지옥’이라는 복병이 숨어 있었다. 자다가도 무의식중에 뒤집어놓고는 정작 되뒤집지를 못해 울어버리는 시온이 때문에 우리는 한동안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밤에는 제발 ‘도약’하지 말고 잠 좀 자자고 애원해 봐도, 시온이의 도약에는 낮밤이 없었다.


어느덧 옹알이가 풍성해지고, 이제는 분명한 의지를 담아 나를 찾는 시온이의 시선을 느낀다. 중력을 거스르고, 마침내 스스로 몸을 일으켜 나에게 다가오는 너의 그 모든 과정이 아빠에겐 우주적인 사건이었단다. 시온아, 너의 모든 도약은 이미 충분히 위대하다. 조금 천천히 가도 괜찮으니, 네가 내딛는 모든 발걸음에 아빠가 늘 함께 있다는 걸 잊지 마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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