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마을이 너를 안아주었거든
"한 아이를 키우는 데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을 들어본 적 있니? 네가 세상에 태어나기까지, 그리고 태어난 후 지금까지 너는 참으로 많은 사람의 축복과 정성 어린 도움 속에서 자라왔단다. 네가 아주 작아서 스스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을 때, 사실 엄마와 아빠도 크게 다르지 않았어. 모든 게 처음인 초보 부모에게 육아라는 세계는 낯설고 두려운 정글 같았거든. 하지만 그때마다 우리 곁에는 아낌없는 조언과 따뜻한 손길을 내밀어 준 '인생 선배'들이 계셨단다.
먼저, 네가 세상의 빛을 처음 본 봄빛병원의 한수연 의사 선생님과 간호사 선생님들이 계셔. 아빠는 제법 학구적인 성격이라 궁금한 게 생기면 질문 리스트를 A4 용지에 출력해서 가곤 했지. 선생님은 그 빽빽한 질문들을 보며 "1번은 하셔도 됩니다", "2번은 30분이면 충분해요", "3번은 걱정 마세요"라며 명쾌하게 리스트를 격파해 주셨어. 출산 명의로 워낙 바쁘셨을 텐데도, 그 나긋하고 침착한 목소리로 우리를 안심시켜 주셨지. 특히 네가 역아여서 걱정이 태산이었던 우리에게, 안전한 출산과 흉터 없는 세심한 수술로 보답해 주신 건 지금 생각해도 큰 은혜란다.
아빠는 신생아실 간호사 선생님들께도 '나름의 로비'를 펼쳤어. 면회실 유리창 너머로 너를 볼 때마다, 선생님들과 눈이 마주치면 입 모양으로 크게 "감.사.합.니.다!"라고 무음 인사를 드렸지. 우리가 곁에 없을 때도 시온이를 조금만 더 예뻐해 주십사 하는 부모의 염치없는 간절함이었어. 그 진심이 통했는지, 선생님들은 이튿날부터 우리 얼굴만 봐도 네 번호를 기억하시고는 시온이를 가장 먼저 데려와 보여주셨단다. 아빠가 네 앞에서 재롱을 떨다 아쉬운 발걸음을 돌릴 때, "걱정 마세요"라며 웃어주던 그분들의 눈인사가 얼마나 든든했는지 몰라.
네 방을 가득 채운 온기도 잊을 수 없어. 네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이모와 삼촌들은 내복부터 장난감, 욕아용품까지 정성 어린 선물들을 보내주었지. 시온아, 누군가의 대소사를 챙긴다는 건 생각보다 많은 에너지와 진심이 드는 일이란다. '시온이에게 뭐가 필요할까?' 고민하며 쇼핑몰을 뒤졌을 그분들의 시간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네가 꼭 알았으면 좋겠어. 그리고 그동안 내 자식을 키우면서 추억이 묻은 장난감과 옷들을 깨끗하게 닦고 빨아서 보내주는 일들이 육아를 하면서 병행하기 얼마나 힘든 일임을 아빠는 점점 더 알게되었어. 아빠는 이 마음의 빚을 돈이 아니라, 우리의 손과 발, 그리고 진심 어린 성의로 갚아나가려 해. 너 또한 누군가의 인생에 기분 좋게 참견할 줄 아는 따뜻한 어른으로 자라나길 바란다.
산후조리원 식구들도 빼놓을 수 없지. 24시간 내내 네가 감기 걸리지 않게, 맘마 잘 먹고 쑥쑥 크도록 돌봐주신 분들께 아빠는 마지막 날 이런 고백을 했어. "덕분에 너무 잘 있다가 갑니다. 아기 예쁘게 잘 키울게요. 이름은 '시온'이라고 지었어요." 그랬더니 원장님께서 축복의 말씀과 함께 한아름 선물을 챙겨주시더구나. 산후관리사 선생님은 또 얼마나 햇살 같은 분이셨는지! 퇴근 시간이 지났는데도 "시온이가 너무 예뻐서 발길이 안 떨어진다"며 너를 품에 안고 "사랑한다, 축복한다"고 속삭여 주셨지. 쌀쌀했던 봄날, 선생님이 사 오신 따뜻한 떡 간식과 그 온화한 목소리 덕분에 우리 집은 늘 온기로 가득했단다.
사경 클리닉의 선생님들도 기억나니? 네가 치료 중에 울면 함께 마음 아파하면서도, 네 고개를 바로잡기 위해 3kg도 안 되는 네 몸을 짐볼 위에서 둥가둥가하며 땀을 흘리시던 분들. 카운터 선생님들까지 너를 '슈퍼스타'라 부르며 반겨주셨던 그 다정함이 지금의 씩씩한 시온이를 만들었단다.
가족들의 사랑은 말해 무엇하겠니. 네 탄생을 가장 애타게 기다렸고, 지금은 네 재롱 한 번에 세상을 다 얻은 듯 행복해하시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을 보면 아빠는 비로소 인생의 큰 효도를 마친 기분이 들어. 이분들의 사랑을 다 적으려면 이 책이 대하드라마가 될 것 같아 아껴두지만, 네가 가장 먼저 갚아야 할 큰 사랑임을 잊지 마렴.
이웃들의 다정함도 기적 같았어. 아파트라는 삭막한 공간에서 네 울음소리가 층간소음이 될까 봐 전전긍긍하던 우리에게 "애들 키울 땐 다 그런 거다, 우리 애들도 그랬다, 아무 소리 안 들리니 걱정 말라"며 오히려 등을 두드려 주시던 이웃들. 백일떡을 돌릴 때 과일을 챙겨주시고, 용돈까지 쥐여주며 너를 축복해 주신 그분들 덕분에 아빠는 세상이 여전히 살만한 곳임을 배웠단다. 산책길에서 만나는 할머니들과 언니, 오빠들이 건네준 "귀엽다"는 칭찬 한마디 한마디가 모두 네 자양분이 되었어.
마지막으로 아빠의 회사 동료들, 이모와 삼촌들에게도 고맙구나. 네가 태어나고 아빠가 조금 소홀했을 때도 "그럴 수 있다"며 배려해 준 그분들 덕분에 아빠는 오로지 너에게 집중할 수 있었어. 아빠는 이 은혜를 나중에 출산과 육아로 힘들어할 후배들에게 똑같이 되돌려주는 '내리사랑'으로 갚아보려 한다.
시온아, 너는 앞으로 살아가며 수많은 귀인과 은사를 만날 거야. 그때마다 아낌없이 감사하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어. 타인을 배려하고 손 내미는 것이 네 일상이 되기를 바란다. 엄마와 아빠가 먼저 그런 사람이 되어 네 앞길의 지도가 되어줄게.
너를 통해 세상을 보니 비로소 이해되는 것들이 참 많아졌어. 세상은 결코 혼자 살 수 없단다. 함께 살 수 있게 만드는 힘은 때론 논리적이지도, 합리적이지도 않은 '따뜻한 진심'에서 나오거든. 우리가 그 사실을 잊지 않고 늘 감사하며 더불어 살아가기를, 아빠는 오늘도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