쓴맛, 계획대로 되지 않는 존재

사경(斜頸)의 터널을 지나, 삐딱한 고개 너머로 배우는 인생

by 늦작가

산후조리원의 신생아실 캠(Cam)은 우리 온 가족의 24시간 감시망이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화면 속 시온이는 늘 왼쪽만 바라보고 있었다. ‘왼손잡이가 되려나? 아니면 내가 볼 때만 우연히 저쪽을 보나?’ 대수롭지 않게 넘기려던 찰나, 장모님께 연락이 왔다. 아이가 너무 한쪽만 보니 선생님께 말씀드려보라는 것이었다.


신생아실 선생님들이 거즈를 말아 베개를 고여보고 별의별 방법을 다 써봤지만, 시온이의 고개는 도통 반대편으로 돌아올 줄을 몰랐다. 불안해진 아내가 정보를 찾기 시작하더니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여보, 시온이 혹시 사경(斜頸) 아닐까?” 죽을 고비를 넘긴다는 ‘사경’이 아니었다. 흉쇄유돌근이 경직되어 목이 기울고 안면 비대칭을 유발하는 선천적 질환. 신생아의 1~2%에서 발견된다는 그 진단명을 소아과 의사의 입을 통해 확정받았을 때, 나는 화장실로 달려가 허공에 대고 읊조렸다.



“오 주님… 저 지금 충분히 힘들거든요.”


하지만 아내 앞에서는 짐짓 씩씩한 척을 했다. “치료받으면 되는 일이라는데 뭐, 받으면 되지!” 그러고는 속으로 생각을 고쳐먹기로 했다. ‘이건 영웅 서사의 도입부다.’ 역아회전술의 압박에도 심박수 하나 변하지 않던 줏대 있는 시온이가, 이제는 ‘사경’이라는 난관을 극복하는 스토리. 이 과정을 통해 우리 가족은 인생의 굵직한 교훈 하나를 챙기게 될 것이라고. 부모가 된다는 것은 이토록 연약한 찰나의 긍정에 억지로라도 숨을 불어넣어 커다란 풍선을 만들어 나가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운 좋게도 집 근처에 베테랑 치료사들이 포진한 발달클리닉이 새로 문을 열었다. 인생 3주 차, 봄꽃을 시기하는 찬바람을 뚫고 주 3회 치료가 시작됐다. 저 작고 말캉한 것이 목을 돌리는 강화 운동의 불편함을 이기지 못해 40분 내내 자지러지게 울 때면 부모의 심장은 타들어 갔다. 선생님들은 “아파서가 아니라 불편해서 우는 거예요”라며 우리를 달랬지만, 적막한 차 안에서 지쳐 잠든 시온이를 보며 돌아오는 길은 여간 심란한 게 아니었다.


클리닉에는 많은 아이가 있었지만 우리 시온이가 단연 막내였다. 조기에 발견해 다행이라는 안도감과, 너무 어린 애를 고생시키는 건 아닌가 하는 죄책감이 수시로 교차했다. 그 와중에 “아기가 너무 예뻐요”라는 소리를 들으면, 나는 영화 <라이온 킹>에서 주술사 라피키가 아기 심바를 세상에 선포하듯 시온이를 번쩍 들어 보여주곤 했다. 심란해도 자식 자랑은 포기 못 하는, 반쯤은 미쳐있던 초보 아빠의 풍경이었다.


치료의 권위자가 있다는 아주대병원 교수님을 만나기 위해 수개월을 기다려 드디어 진료실에 들어섰을 때, 교수님은 뜻밖의 감탄을 내뱉으셨다. 초음파를 보는 내내 시온이가 울지도 않고 침착했기 때문이다. “아니, 이렇게 씩씩한 아기가 어디 있어요?” 부모 기분 좋으라고 하시는 말씀이겠지만, 나는 또다시 확신했다. ‘역시 영웅이 틀림없어. 비범하니까 난생처음 하는 초음파도 가뿐한 거야.’


돌을 앞둔 지금, 시온이는 이제 월 1~2회 정도의 유지 치료만 받고 있다. 또래보다 다리가 길고 운동 능력이 좋다는 칭찬을 들을 때면, ‘나름의 조기 교육과 특수 마사지를 받은 덕분’이라며 우리만의 정신 승리를 거두기도 한다.


돌이켜보면 사경은 우리에게 예상치 못한 선물을 남겼다. 병원을 다니며 수많은 선생님의 품에 안겼던 시온이는 낯가림 없는 뛰어난 적응력을 얻었고, 한 시간 이상 차를 타는 일에 익숙해져 멀미도 모르는 아이가 되었다. 절대자가 ‘사경’이라는 이벤트를 통해 극성스러운 아빠와 범생이 엄마의 힘을 조금 빼게 하고, 시온이를 더 단단하게 키워내신 건 아닐까.


치료사 선생님 품에서 펑펑 울던 시온이가 내 품으로 건너와 울음을 삭일 때면, 나는 더 많이 말해주곤 했다.


아이고 대견하다 우리 시온이.
이런 어려운 걸 다 감당하고, 정말 대단해. 이제 집으로 가자.

인생은 결코 계획대로 되지 않고, 항상 평탄할 리도 없다. 시온아, 네가 밖에서 성장통을 겪고 돌아올 때마다 엄마와 아빠는 이 넓은 품으로 너를 안아줄게. 대견하다고, 잘했다고, 이제 따뜻한 우리 집에서 푹 쉬자고 말해줄게. 아빠가 말이 많아 네 위로에 잔잔한 잔소리가 섞일지도 모르겠지만, 네 인생의 역경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튼튼한 뿌리가 되어보겠다고 다짐한다.


우리의 병원 사진 속에는 늘 웃음이 있다. 시온이가 머물렀던 모든 공간이 행복으로만 기억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병원 트리 앞에서는 루돌프 머리띠를 씌우고 가족사진을 찍었다. 시온아, 네가 이 시간을 다 기억하지는 못하겠지. 하지만 힘들 때일수록 더 크게 웃고 감사할 줄 아는 우리의 이 ‘가풍’만은 네 마음속에 오래오래 이어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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