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고요한 그 풍경이 떠올랐어

'평온'이 더 빛나는 삶을 살기를

by 늦작가

아내와 뉴질랜드의 작은 마을에서 하루를 보낸 적이 있다. 코끝을 스치는 바람결, 시리도록 푸른 하늘과 겹겹이 쌓인 구름. 아무리 걸어도 끝이 보이지 않는 광활한 대지 위에 서자, 비로소 세상의 소음이 잦아들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평온함이 우리를 감싸 안았다. 대자연이 주는 압도적인 광활함, 그리고 역설적이게도 지독히 적막했던 그 한가운데에서 우리는 마음속 분주함을 하나둘씩 내려놓기 시작했다.


늘 무언가를 기다리고, 찾고, 성취하기 위해 쉴 새 없이 달려왔던 삶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의 고요한 멈춤 속에서 나는 자문했다. ‘나는 혹시 쉼표 뒤에 숨겨진 진정한 평화를 놓치며 살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때 처음으로 깨달았다. 삶의 행복은 무언가를 움켜쥐는 ‘성취’가 아니라, 고요함 속에 머무는 ‘평온’에서 온다는 것을.


우리 부부는 딸의 이름을 지으며 약속이라도 한 듯 그날의 풍경을 떠올렸다. 내 딸만큼은 평생을 치열한 전장처럼 살기보다, 그날 우리가 누렸던 평온함 속에서 숨 쉬기를 바랐다. 비로소 시(始), 평온할 온(穩). 우리는 이 작고 말캉한 존재가 마주할 하루하루가 잔잔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시온’이라 부르기로 했다.


이 이름에는 중의적인 축복이 숨어 있다. ‘비로소’는 곧 ‘시작(始)’이기도 하며, ‘평온’은 곧 ‘완전함(穩)’으로 통하기 때문이다. 시온이의 탄생으로 우리 가족은 비로소 완전한 시작을 맞이했고, 오랜 기다림 끝에 응답받은 우리의 기도는 새로운 완전함을 향해 출발했다.


또한 성경 속 ‘시온’이라는 거대한 산처럼 네가 든든하고 큰 인물로 성장하기를 바라는 마음도 곁들였다. 영어 이름인 ‘Zion’이 주는 특유의 힙(Hip)한 감각도 꽤 마음에 들었다. 무엇보다 아빠는 네게 가문의 돌림자를 주지 않았다. 누군가의 뒤를 잇는 존재나 가문의 틀 안에 정의되는 이가 아니라, 온전히 ‘나’로서 자신을 소개하며 자주적으로 살아가길 바랐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에게 시온이를 부르는 것은 하나의 마법 주문과 같다. 흐트러진 마음을 가다듬어 평온을 찾는 물음이자, 네 삶에 영원한 평화가 깃들기를 바라는 간절한 기원이다.


시온아, 너의 이름이 불릴 때마다 네 세상이 그 고요한 대지처럼 넓고 평온해지기를 아빠는 매 순간 기도한단다. 너는 아직 모르겠지만, 너의 존재는 참 많은 이들에게 평온을 선물하고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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