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6kg의 작은 우주를 지탱하는 방법
산부인과 신생아실에서의 찰나 같은 5일이 지났다. 매일 밤낮으로 시온이는 기특하게도 무럭무럭 자라주었다. 매시간 면회실 창문을 넘겨다봐도 질리지 않았다. 나를 닮은 것 같다가도 어느새 아내의 얼굴이 보이고, 아이 얼굴은 열두 번도 더 변한다는 어른들의 말씀은 틀린 게 하나 없었다.
산후조리원으로 이동하며 나는 생애 처음으로 시온이를 품에 안았다. 태어날 때 2.76kg이었던 아이는 어느덧 3kg를 넘어서고 있었다. 조심스레 건네받은 시온이는 마치 '솜사탕'을 든 것처럼 가벼웠다. 작은 얼굴에 오밀조밀 자리 잡은 눈코입, 내 손가락을 꽉 움켜쥐는 앙증맞은 손, 혀를 낼름거리며 눈을 깜빡일 때마다 보이는 가느다란 속눈썹까지.
이 작은 생명체가 우리 품으로 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생을 했을까 생각하니 가슴이 벅차올랐다. 하지만 솜사탕처럼 가볍고 깃털처럼 보드라운 시온이를 마주한 감동도 잠시, 현실은 결코 만만치 않았다.
솜사탕 같은 아이를 안은 내 어깨 위로, 곧 '태산' 같은 책임감이 내려앉았다. 아빠가 된다는 건 수많은 'To-do List'를 격파해 나가는 과정이었다. 병원비를 수납하며 우리나라 건강보험 제도의 위대함을 찬양했지만, 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육아용품 앞에서는 현실 자각 타임이 오기도 했다. 평생 짠돌이 소리를 들으며 살아온 나였지만, 수술 흉터 케어 제품이나 아이의 유산균 앞에서 고민하는 아내를 볼 때면 대장부처럼 외쳤다. "거 얼마 한다고, 그냥 사!" 생각해보니 아이와 아내를 위해 돈을 쓰는 것만큼 쉬운 일은 없었다. 돈으로 해결되는 일은 육아에서 가장 난도가 낮은 문제였으니까.
진짜 어려운 숙제는 따로 있었다. 모유 수유가 마음처럼 되지 않아 속상해하는 아내를 위로하는 일, 난생처음 기저귀를 갈고 분유 농도를 맞추는 일, 잠든 아이를 깨우지 않고 조심스레 침대에 눕히는 일은 취업 면접보다 곱절은 더 어렵고 힘들었다. 시온이가 온몸으로 울부짖으며 필요를 호소할 때면 초보 아빠는 길을 잃었다. 배가 고픈가? 기저귀가 젖었나? 땀이 났나? 건조한가? 육아서적의 체크리스트를 다 실행했는데도 울음이 그치지 않을 땐 정말이지 머릿속이 하얘졌다. 이건 육아가 아니고 암호해독이었다. 아기 울음소리를 해독해준 유튜브 영상도 출퇴근길에 계속 재생하면서 들었는데, 실전은 달랐다.
남들은 천국이라는 조리원에서 아내는 '엄마 수험생'이 되어 열혈 교육을 받았다. 그녀는 모든 교육프로그램에 참여해 초보엄마 딱지를 떼려고 부던히 애를 썼다. 아내는 심심할 틈 없이 육아책을 보거나 육아다큐 등을 보면서 하루를 보냈다. 그동안 나는 집안을 살림집이 아닌 '육아 센터'로 개조하기 시작했다. 육아용품을 소독하고, 습도를 맞추고, 최적의 동선을 시뮬레이션했다. 무리하게 진행한 이사 탓에 만만치 않은 대출 원리금을 생각하면 자다가도 눈이 번쩍 뜨였다. 혹시나 누수라도 생겨 목돈이 깨지는 악몽을 꾸다 깰 때면, 시온이의 사진을 보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아빠는 슈퍼맨이다. 다 할 수 있다.'
우리가 지구별로 초대한 이 귀한 손님이 조금 더 쾌적한 환경에서 자랐으면 하는 마음, 그 원동력이 우리 부부를 성장시켰다. 돈과 시간이 부족하다고 징징거릴 시간에 당근 마켓을 뒤져서 육아용품을 사거나 AI를 활용해 문제 해결법을 찾는 건설적인 자세가 탑재되었다. 시온이가 우리를 더 괜찮은 사람으로 만들어주고 있는 것이다.
시온아. 네 이름이 큰 산의 이름과 같아서일까, 가끔은 아빠 노릇을 잘해낼 수 있을지 중압감이 너를 닮은 산처럼 다가올 때가 있단다. 그럴 때마다 아빠는 너를 본다.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엄마 품을 떠나 이 험한 세상에 적응하며, 무럭무럭 자라고 있는 기특한 내 딸. '맞아, 이시온 내 딸이지! 날 닮아 뭐든 잘할 거야.'라며 나를 단련시킨다. 솜사탕처럼 가벼웠던 시온이가, 나를 태산처럼 무겁고 든든한 사람으로 키워내고 있는 셈이다.
훗날 시온이가 커서 아빠의 힘든 일들을 알게 될지, 아니면 아빠가 끝까지 숨길지 모르겠다. 어쩌면 아빠가 시온이에게 기대고 싶을 정도로 힘든 날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시온아, 아빠 오늘 조금 힘들었는데 한 번 안아줄래? 같이 아이스크림도 살겸 산책갈까?" 하고 쭈볏거리면 지금 그랬던 것처럼 시온이가 아빠 손을 잡고 싱긋 웃어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