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자기주도 이유식은 못 했단다

옴뇸뇸뇸. 나의 근심이 사라지고, 너의 피와 살이 차오르는 소리

by 늦작가

우리 부부에게는 확고한 육아 철학이 하나 있다. 바로 “부모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할 수 있다”는 것.


그래서 우리는 유행처럼 번지는 ‘자기주도 이유식’이라는 이름의 전쟁터에 뛰어들지 않기로 했다. 온 집안이 밥풀 범벅이 되고 부모의 인내심이 바닥나는 고행 대신, 아이와 눈을 맞추며 한 숟가락씩 정성껏 떠먹여 주는 ‘부모 주도’의 평화를 선택한 것이다. 시온이 너와 온전한 대화가 통하기 전까지는, 이 숟가락의 주도권을 우리가 쥐기로 했다.


처음으로 미음 한 술을 받아먹던 너의 동그란 눈동자가 평소보다 두 배는 더 커지던 날을 기억한다. ‘세상에 이런 맛이 있다니!’라고 온몸으로 외치는 듯한 그 표정이 어찌나 귀엽던지. 다행히 너는 알레르기 반응 하나 없이 엄마가 정성껏 만든 이유식도, 때로는 ‘대기업의 자본’이 들어간 시판 이유식도 가림 없이 잘 먹어주었다. 아빠를 닮은 건지 고기도 좋아하고 생선도 즐기는 네 식성을 보며, 엄마는 매일 정성스레 삼시세끼를 준비한단다. 쑥쑥 크는 너를 보고 있노라면, 그 보이지 않는 엄마의 노고에 아빠는 늘 깊은 감사를 느낀다.


이유식은 아이의 집중력이 유지되는 20분 안에 마쳐야 한다는 지침에 따라, 아빠는 매 끼니 너의 흥미를 끌기 위한 ‘단독 공연’을 펼치곤 한다. 숟가락으로 화려한 비행기 포물선을 그리며 네 입속으로 착륙시키기도 하고, “옴뇸뇸뇸” 같은 국적 불명의 외계어와 온갖 효과음을 남발하지. 때로는 즉석에서 지어낸 정체 모를 노래를 부르기도 한단다. 호기심 많은 네가 주변을 관찰하느라 잠시 한눈을 팔다가도, 아빠가 “시온아, 밥 먹어야지~” 하고 부르면 다시 아빠를 쳐다보며 싱긋 웃어줄 때. 그 미소 한 번이면 아빠의 공연 피로는 씻은 듯이 사라진단다.


특히 네가 정말 맛있는 걸 먹을 때면 나타나는 전매특허 반응이 있지. 기분 좋은 강아지가 꼬리를 흔들 듯 발을 앞뒤로 살랑살랑 흔드는 그 모습 말이야. 할머니들이 오셔서 이유식을 먹여주실 때 네가 손을 모으거나 코를 찡긋하며 “헤헤” 소리를 내면, 할머니들은 그 자리에서 아이스크림처럼 녹아내리시곤 해. 너의 그 작은 몸짓 하나가 온 집안의 온도를 몇 도는 올리는 기분이 들어.


가끔 네가 입안의 내용물을 “푸푸푸!” 하고 내뱉는 투레질을 할 때면, 네 침과 섞인 이유식이 아빠의 얼굴에 훈장처럼 묻어나곤 했지. 처음에는 육아 지침서에서 배운 대로 단호하게 “안 돼!”라고 엄포를 놓기도 했다. 하지만 곧 생각을 고쳐먹었어. 투레질이 사실은 네가 말을 하고 싶어 하는 징조라는 것을 알게 되었거든. 그 뒤로는 “안 돼” 대신 “시온아, 이제 배가 부르니?”, “식감이 조금 낯설어서 그래?”라고 말을 걸기 시작했지. 이해할 수 없던 너의 돌발 행동들이 성장의 한 페이지라는 사실을 깨닫고 나니, 네 삐죽거리는 입술이 전보다 더 사랑스러워 보이더구나.


어느덧 150g의 이유식을 ‘꼭꼭 냠냠’ 해치우는 너를 보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네 입에 밥을 넣어주는 이 행위도 언젠가는 마지막이 오겠지?’ 지금은 아빠의 숟가락 끝만 간절하게 바라보는 너지만, 머지않아 너는 스스로 숟가락을 쥐고 너만의 속도로 밥을 먹게 될 거야. 아빠가 도와주던 너의 작고 연약한 필요들이 하나둘씩 사라져 갈 때, 아빠는 아마 네가 충분히 잘하고 있음에도 괜히 곁에서 참견하고 싶어질지도 모르겠다.


시온아, 오늘도 네가 맛있게 밥을 먹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아빠의 세상 근심은 파도에 씻기듯 사라져 버린다. 아빠는 2026년이 조금 힘든 시기였거든. 근데 시온이 덕분에 잘 이겨낼 수 있었던 것 같아. 잘 먹고, 잘 자고, 잘 웃어주는 것. 그 단순한 일상이 아빠에게는 그 어떤 성취보다 위대한 보상이거든. 네가 스스로의 힘으로 세상을 씹고 삼키게 될 그날까지, 아빠는 기꺼이 네 인생의 가장 든든한 숟가락이 되어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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