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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준우 Jan 11. 2022

아무튼, 혼술: 스위치를 끈다. 그리고 1Q84

광화문 일일주

 바쁜 하루를 마치고 퇴근했지만 머릿속에는 아직 업무의 잔상이 옛날 브라운관 텔레비전의 전원을 막 껐을 때처럼 그대로 남아 있다. 몸은 회사를 떠났지만 정신은 아직 퇴근을 못했고 머릿속에는 여전히 일에 대한 스위치가 꺼지지 않는다. 혹독했던 업무의 문을 '탁'하고 닫고 집으로 가야 하는데 여의치가 않다. 그 "문을 닫을 의식"이 필요하다. 발걸음을 돌린다. '의식을 치르자'


 광화문 사거리를 뒤로한 채 적당한 날씨를 머리 위에 두고 경복궁역 쪽으로 발을 옮긴다. 하늘과 바람이 정말 좋구나. 초저녁의 여름 공기는 달리기를 마치고 한껏 들이키는 맥주 같은 청량함을 안겨준다. 


광화문 [일일주]

금방 도착했다.


 그동안 검색이 부족했었나. 나름 네티즌 수사대 수준의 검색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자부했었는데, 내 활동 범위 안에서 이제야 이런 곳을 찾게 되었다. 광화문 생활 10년 차인데 말이다. 오픈하자마자 들어간 이곳은 대부분 빈 좌석이다. 여유로운 마음을 가지고 주욱 한 바퀴 둘러본다. 음식 맛은 아직 체크 전이지만, 전반적인 분위기가 마음에 든다. 1인용 사시미도 있으니 더욱 그러하다. '회'라는 좋은 표현도 있지만 지금 내가 존재하는 곳이 이자카야이니 별 죄책감 없이 '사시미'라는 표현을 쓰기로 한다. ㄷ자 형태의 바도 마음에 들고 정갈한 분위기도 좋다. 나중 얘기지만 메뉴 주문할 때마다 음식이 너무 후다닥 나와 버려서 마음이 음식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건 좀 아쉬웠다. 


 앉자마자 나오는 기본 안주는 푸른 콩이다. 아오마메青豆인 것이다. 휴가를 맞아 1Q84를 다시 읽고 있는 요즘, 머릿속에 '아오마메'라는 단어가 꽉 차있는데, 이렇게 이자카야의 바에서 아오마메를 만나니 반갑다(아오마메는 이 소설의 여주인공 이름이다). 뭔가 이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광화문의 하늘에는 달도 하나밖에 떠 있지 않고 누군가를 다른 세계로 이동시켜야 하는 일련의 프로젝트도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눈앞에 아오마메가 놓여있고 그것으로 오늘의 지친 하루에 위안을 받는다. 


[추가 설명: 원래 이자카야에서 오토시(자릿세 개념으로 내어주는 기본 안주)로 주는 삶은 콩은 에다마메 Edamame, 枝豆(풋콩)이라 부르는 것이 맞지만 그냥 내 기분에 따라 '푸른 콩 아오마메'로 칭한다]


 여름의 한 낮은, 아니 초저녁은 아직도 태양의 기운이 남아 있다. 이자카야 안에서의 분위기는 이미 어둑하지만 고개를 들어 바라본 창가에는 아직 초록한 기운을 느낄 수 있을 만큼의 해가 남아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표현을 빌면, 태양에 가려 종잇장처럼 걸려있던 달이 이제 슬슬 모습을 드러낼 때가 된 것이다.


 혼술을 위한 안주를 주문할 시간이다. 오늘의 지친 하루를 보상받기 위해서는 입속에 뭔가 '길티'한 기름기가 들어가야 한다. 육체보다는 정신이 힘들었던 하루인데, 왜 육체가 기름기로 보상을 받아야 하는지 당위성은 없다. 육체적 보상을 통해서 정신도 어느 정도는 보상받을 수 있다고, 아니 그렇게라도 해야 보상을 받을 수 있다고 합리화하고 있는지 모른다. 결국 1인 사시미에 추가로 삼겹살 숙주볶음을 시켰다는, 그런 얘기다. 


 하지만 어떤가. 그렇게 해서라도 정신이 아닌 육체의 만족감을 통해서라도 정신이 위안을 받을 수 있다면 다행인 것이다. 우리는 어떻게든, 혹은 현대 사회를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정신을 관리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만 한다. 최대한 다양하게 찾을 수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사람은, 인간이라는 것은 생각보다 온유한 것이어서 정신을 관리할 수 있는 수단이 하나만 존재한다면 곤란하다. 쉽게 지쳐버릴 수도 있으니까. 그런 존재가 나에게는 퇴근 후 혼술이기도 하고, 쉬는 시간에 써보는 일기가 될 수 있고, 주말 새벽 한강을 달리는 루틴이기도 한 것이다. 


 조금 훅 건너뛰어서, 금방 나온 1인 사시미가 상당히 실하다. 가성비가 좋다. 이 정도면 다른 곳에서 2인 사시미 정도 되는 양에, 맛도 좋다. 종류도 다양하다. 종류별로 2점씩 가지런히 원을 그려 놓여있는 모습도 보기 좋다. 청어 사시미가 좋다. 적당히 넣은 칼집은 큼직한 청어회를 입안에서 부드럽게 퍼지도록 식감을 올려준다. 손질이 잘 되어 있다. 소고기 이상의 기름진 맛이다. 감탄하며 한입 한입 먹다가 고개를 들어 주방을 들여다본다. 지금 가지를 손질하는 셰프의 모습을 보니 가지 구이도 괜찮아 보인다. 일단, 앞에 있는 것들부터 즐기자. 가지는 조금 생각해볼 일이다. 


 콩 삶은 것을 집에서 먹어도 맛이 있을까? 삶은 콩을 입에 털어 넣으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마 아닐 것이다. 이자카야에서 기본 안주로 나오는 양배추와 집에서 먹는 양배추의 맛이 다른 것처럼 이 삶은 콩도 다른 맛이 날 것이다. 좋은 술은 모르는 저렴한 입맛을 가졌지만, 이 기본 안주의 TPO만은 알고 있다. 이런 분위기에서의 푸른 콩과 양배추는 자기만의 독자적인 TPO를 갖추고 있는 것이다.



 맛있는 안주를 먹으며 무슨 메뉴를 추가할까 고민하는 순간은 혼술의 하일라이트가 될 수도 있다. 고독한 미식가의 주인공이 극 중에서 혼잣말을 하며 행복해하는 그런 모습이 되어보는 것이다. 이렇게 메뉴와 메뉴 사이에서 고민하며 느끼는 스릴(?)을 다른 사람들이 이해해줄까 싶지만, 나로서는 이런 순간이 바로 남들이 놀이공원에 가서 자기 돈 주고 롤러코스터를 타며 스릴을 즐기는 것과 같은 얕은 수준의 가학적 즐거움이다. 안주를 혼자 먹고 있으니 주문한 메뉴가 실패하면 여럿이 먹을 때보다 타격이 크다. 실패한 안주라고 해서 먹지 않을 수도 없고, 먹고 나면 여지없이 배가 부를 수밖에 없으니 다른 메뉴를 추가할 수 없다. 이런 상황이 될 것이니 나로서는 스릴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다. 그렇다 하더라도 오롯이 혼자 메뉴를 정하는 것은 꽤나 괜찮은 만족감을 누릴 수 있는 과정이다. 누구의 의견도 감안할 필요 없이 나만의 취향으로 내가 마시는 술과 지금 이 순간의 기분에 맞는 안주를 고를 수 있다는 것은 그야말로 소확행인 것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배가 불러온다. 다행은 지갑을 위한 것이고 불행은 새로운 메뉴를 갈구하는 입을 위한 것이다. 술은 더 먹지 않을 생각이다. 나는 어쩔 수 없이 '관리' 가능한 범위 내에 존재할 때 마음의 평안함을 가질 수 있다. 최근 생활을 관찰해 보면 이제 술은 취하는 존재가 되었다. 전과 같지 않은 것이다. 이것을 나쁘다고만 볼 수는 없다. 하나를 빼앗겼다면 무언가 다른 것이 생기기 마련이다. 많은 술을 마시고 즐길 수 있는 시간이 줄었다면, 그에 반해 다른 방편으로 즐길 수 있는 무언가가 분명히 나타날 터이다. 이를 테면 조금 더 맑은 정신으로 마시며 글을 쓰거나 뭔가를 계획할 수 있다면 충분한 보상 또는 상쇄가 되는 것이다.



 자제력을 펼쳐볼 것인가 아니면 마음껏 이 시간을 즐겨볼 것인가. 상당기간 용돈을 아껴온 나에게는 실로 큰 고민이 아닐 수없다. (메뉴를 하나 더 시킬까 말까 하는 상황이다) 하긴, 자제력 따위가 있었다면 진작에 여기에 올게 아니라 카페 구석에 앉아서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일기를 쓰고 플래너를 정리하고 책을 읽고 있어야 했겠지. 어쩌면 어느 정도의 소심한 일탈을 위해 여기로 발걸음을 옮겼을지도 모른다. 오늘의 상처받은(작지만 그래도 상처라고도 말할 수 있는) 마음을 위해. 


 나는 그런대로 잘 살고 있다. 아니 엄청 잘 살고 있는데 가끔 불편한 상황을 감내해야 한다. 이것이 오늘 내가 처한 현실이다. 아무것도 아니다. 어쩌면. 예전에 힘들었던 일들에 비하면. 이런 게 나이 들어서 생기는 완숙함이나 노련함일까. 그렇다면 나이 드는 것은 좋은 것이다. 해를 거듭할수록 불확실성이 감소되어 간다. 이것이 내가 정의하는 나이 듦이다.


 결국 나는 이 집을 더 탐구하기로 한다. 지갑 생각은 잠시 접어두기로 한다. 나는 오늘 철저한 치유를 받아야 한다, 고 생각해서 추가 주문을 해버린다. 새로운 한 접시가 내 앞에 놓였다. 그러나 역시 과한 판단이었고, 참았어야 했다. 추가 주문한 안주를 많이 남긴 것이다.(잘 못했습니다)



 눈을 들어 옆의 벽을 보니 예의 사케 광고 포스터가 붙어 있다. 그 포스터에 담겨있는 사케 설명을 보니 기가 막힌다. 야마나시현의 사케가 소개되어 있다. '야마나시'현은 1Q84에서 '선구'와 '무투파'가 있던 그곳 아닌가. 소설 속에서 많이 등장하던 바로 그 지역이다. 정말 오늘은 어딘가에 끈이 연결되어 있는 것인가. 이곳에 들어서면서부터 1Q84를 생각하고, 아오마메니 두 개의 달이니 하며 머릿속으로 책 내용을 더듬고 있었는데 마침 이런 광고를 보다니 가슴이 서늘해진다. 혹시 이 집을 나설 때 하늘을 올려 보면 달이 두 개인 것은 아닐는지. 그래도 아직 밝은 밝다. 지금은 오후 7시 29분. 달은 없다.


[추가 설명: 무라카미 하루키의 장편소설 1Q84는 평행세계(parallel world)를 배경으로 한 소설로 현실과 다른 또다른 세계의 하늘에는 밤하늘에 달이 2개 떠 있는 세상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읽다 보면 그의 섬세하고도 길고 긴 묘사에 감탄을 하고 만다. 그의 묘사를 통해 머릿속은 더 넓어지고 이미지는 선명해진다. 나도 뭔가 깊은 묘사와 서술을 해 보고 싶다는 충동마저 느껴진다. 약간의 술이 책에 대한 감상을 더해준다. 그래도 여기까지만 생각하자. 더 감상에 젖게 되면 '오바'다.




예정에 없던 70분 정도의 짧은 일탈로 조금은 마음을 위로받았다. 

스위치를 끄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됐다.



오늘도 '혼자' 잘 마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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