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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주 Sep 10. 2016

사람의 말 한마디가 의술(醫術)이 될 수 있을까?

병원을 찾을 때마다 깨닫게 되는 것들

어머니를 모시고 병원에 다녀왔다. 쇠잔한 몸으로 병실에 누워 있는 부모의 모습은 바싹 마른 장작개비를 떠올리게 한다. 그걸 지켜보는 일은 고역이 아닐 수 없다. 눈이 아릴 정도로 아름다웠던 나무에서 꽃과 이파리가 후드득 떨어져 나가 앙상한 가지만 남은 모습을, 두 손이 결박당한 채 바라봐야 하는 처지이기 때문이다. 그 안타까움은 이루 다 말할 수 없다. 어찌할 도리가 없어 처참한 무력감을 느끼게 된다. 


어머니는 응급실에서 링거 주사를 맞는 동안 핏기 없는 입술을 겨우 벌려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어느 시인의 표현을 빌리자면, 목련(어머니)의 등에 살며시 귀를 대면 아픈 기침 소리가 들려올 것만 같았다. 


난 가느다란 호스를 타고 뚝뚝 떨어지는 링거액을 응시하다 소리 내지 않고 울었다. 그렇게 눈물을 다 쏟아내고는 공손히 두 손을 모았다. 그리고 빌었다. 포도당아, 전해질아, 어머니 혈관을 타고 재빨리 흘러들어 가서 어서 양분을 공급해주렴. 꽃과 이파리가 더는 떨어지지 않게 해주렴.



내 바람이 통했는지 링거를 다 맞을 무렵 어머니는 안정을 되찾았다. 한편으론 자신의 소임을 다하고 장렬하게 사그라진 링거액이 대견해 보이기도 했다. 어머니를 부축해서 병원을 나서는 순간, 링거액이 부모라는 존재를 쏙 빼닮았다고 생각했다. 


뚝. 


뚝. 


한 방울 한 방울 

자신의 몸을 소진해가며 

사람을 살찌우고, 

다시 일으켜 세우니 말이다. 


무거운 걸음으로 병원을 나서는 길, 더 무거운 표정으로 어머니가 입을 열었다. 


"이젠 화장만으론 주름을 감출 수 없구나…."


시간은 공평한 것 같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나이가 들수록 성급하게 흐른다. 시간은 특히 부모라는 존재에게 가혹한 형벌을 가한다. 부모 얼굴에 깊은 주름을 보태고 부모의 머리카락에 흰 눈을 뿌리는 주범은 세월이다.


참, 병원에 들를 때마다 깨닫는 것이 있다. (꽤 중요하다고 본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저마다 힘겨운 싸움을 벌이는 공간에선 언어가 꽤 밀도 있게 전달된다는 사실이다. 특히 말기 암 환자가 돌봄을 받는 호스피스 병동에선 말 한마디의 값어치와 무게가 어마어마하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우리가 절박한 상황에서 눈과 귀로 받아들이는 언어는, 잔잔한 호수에 던져진 돌멩이처럼 크고 작은 동심원을 그리며 마음 깊숙이 퍼져나가기 마련이니까.


몇 해 전 일이다. 일산에서 있는 병원에서 어머니가 수술을 받았다. 진료 과정은 다른 병원과 별 차이가 없었는데 의료진이 환자를 부르는 호칭이 다소 낯설게 느껴졌다. 한 번은 나이 지긋한 의사가 회진차 병실에 들어왔는데 그는 팔순을 훌쩍 넘긴 환자를 대할 때도 "환자" 혹은 "어르신"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박 원사님” “김 여사님” 하고 인사를 건넸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소박한 의문이 뭉게구름처럼 솟아올랐다. 음, 이유가 뭘까. 왜 저렇게 부르는 걸까. 어머니가 퇴원하는 날 담당 의사와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내가 “환자라는 호칭을 사용하지 않으시던데요?”라고 묻자 그는 “그게 궁금하셨어요?” 하고 되물었다. 의사는 별걸 다 물어본다는 투로 심드렁하게 대답했지만, 난 그의 설명을 몇 번이고 되씹어 음미했다.


“환자에서 환(患)이 아플 '환'이잖아요. 자꾸 환자라고 하면 더 아파요.”


“아….”


“게다가 ‘할머니’ ‘할아버지’ 같은 호칭 싫어하는 분도 많아요. 그래서 은퇴 전 직함을 불러드리죠. 그러면 병마와 싸우려는 의지를 더 굳게 다지시는 것 같아요. 건강하게 일하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바람이 가슴 한쪽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어요. 병원에서는 사람의 말 한마디가 의술(醫術)이 될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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