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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rsona Mar 18. 2021

아내의 여행

 세월의 흐름 속에 하릴없이 변해가는 내 모습을 발견하고 생각한다. 생각이라고 해서 특별한 것도 없고 남과 다른 것도 없다. 나의 삶은 어디에서 왔으며 어디를 향해 가는 것일까? 지금껏 이룬 결과에 만족하지 못하면서 무엇 때문에 그다지도 바삐 채근하며 살아온 것일까? ‘삶이란 뭐냐?’에 집착하는 철학자라도 된 듯하다.

 생텍쥐페리의《어린 왕자》에서 표현한 것처럼 ‘인생의 참가치’를 진정으로 찾고 알기 위해 열심을 다 해보지 않았던가? 푸시킨의 시처럼 ‘삶이 그대를 속이더라도 기쁨의 날이 오리니 마음은 미래에 사는 것 그리고 지나가는 것은 훗날 소중하게 되리니’에 젖어 삶을 노래하지 않았던가? 공연한 질문만 던지는 나는 ‘삶은 사람이 사는 행위이고, 삶의 안식은 결국 내가 나를 찾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소중히 간직하고 싶은 삶의 일부를 찾기 위해 인생 여행에 나선다. 

 아내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서로 사랑하고 의지하고 떨어져 본 일이 별로 없었던 날들에 대하여 눈감고 생각에 잠긴다. ‘아내가 삶에 대한 무게감도 떨어내고 친구들과 더불어 여행도 자유롭게 가면 좋을 텐데…’ 하는 마음이 나를 지배한다. 아직도 풀리지 않는 정신적 문제점이 무엇인가? 되짚어 본다. 이 시각 나와 대화하고 글쓰기로 삶의 일부라도 정리하려니 마음이 호수처럼 잔잔하다. 

 혼자 집을 떠나 있을 때나 여행을 해도 아내에 대한 불안과 염려의 마음을 가져 보지는 않았다. 항상 집에는 아내가 있고 내가 없어도 잘 있겠지 하는 마음을 가지고 지냈기 때문이다. 가끔 아내가 혼자 외출하는 경우가 있다. 저녁이나 늦은 밤이라도 귀가가 분명하기 때문에 염려가 되지 않고 조급한 마음 또한 들지 않았다. 하지만 아내의 외박이나 여행은 나를 외롭게 하고 불안하게 했다. 어느 날, 아니 어느 때부터인지 아내가 친구와 더불어 외박하는 여행을 한다든지 하는 경우에는 왠지 마음이 불안하고 초조해지며 가슴이 조여드는 느낌이 들게 되었다. 나 때문에 아내는 외박해야 하는 모임다운 모임이나 여행다운 여행을 하지 못했다. 친구들과 오랜 계획 끝에 결정한 여행이나 모임도 불안하고 초조하고 가슴이 조여 오는 나의 기분과 허탈한 심정 때문에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아내의 여행이 국내냐 해외냐 하는 경우 현저하게 느낌도 다르다. 가까운 국내는 별일 없으리라는 생각이 들고 먼 나라 해외는 여전히 마음을 놓을 수가 없다. 국내여행 1박 정도는 내가 견딜 수 있는 마음의 여유로움이 있다. 하지만 해외여행은 아직도 마음이 열리지 않고 온전하지가 못하다. 이런 경우 나 자신의 심리적 정신적 문제가 있지 않나 하는 물음이 나를 번민케 했다.

 오래전의 일 두 가지가 생각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2002년 여름, 장모님과 처형댁이 있는 카자흐스탄 알마티에 방학을 이용해서 한 달 동안 여행을 했다. 나와 아내만 여행을 마치고 귀국한 뒤 처형댁에 머물던 장모님이 하늘나라로 떠났기 때문에 처 가족들과 아내가 다시 카자흐스탄에 가려 했었다. 그것이 첫 번째 일이었고, 두 번째는 2007년 가을에 아내가 가깝게 지내는 교우들과 4박 5일 일정으로 일본에 갔던 때이다. 결국 아내의 외국행 중 첫 번째는 나의 불안과 초조한 심리가 도져서 불발되었고, 두 번째는 내가 불안하고 초조한 마음을 견디겠다고 떠나보냈던 것이었는데 잘 도착했다는 소식도 없이 하루 이틀 연락이 없었다. 그때 나는 가깝게 있는 학교의 출퇴근을 서울 막내 처제 집에서 다녔다. 아무도 없는 내 집에 혼자 있기가 외롭고 답답해서.

 두 가지 일 모두 나로서는 견디기 어려웠고 심적인 불안과 고통으로 나타났다. 그 후 내가 이기적이고 나약하고 부족한 존재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곤 했다. “스스로가 자기 자신을 알지 못하며 그것도 영원한 자기 자신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절망적인 무지”라 했던 키르케고르가 어린 소녀 레기네 올젠에 대하여 갖는 복합적인 심리처럼. 나에게는 아내에 대한 설명할 수 없는 부끄러움이 있었다. 복잡한 인간 정신 상태에 대한 유별난 의식에 짓눌리고 있는 내 속에 커다란 틈이 있지 않았나 싶다. 지워지지 않는 두 가지 일로 인해 생긴 무의식의 감정적 콤플렉스였나 보다.

 어린 시절부터 장사하러 나가는 어머니와 떨어지기 싫었던 잠재의식이 전이되어 아내에 대한 애착으로 의지하고픈 마음이었던 것 같다. 무의식적인 마음의 작용이 언제나 일어났다고나 할까. 내 어린 시절의 분리불안 심리가 무의식적으로 잠재되어 나타난 것임을 비로소 알게 된 것은 2002년이었다. 아내가 카자흐스탄으로 떠나지 못했을 때 정신과 의사와 상담을 하면서였다. 집착하는 마음을 내려놓고 무엇인가에 몰두할 것을 찾으라는 처방이 내려졌다. 이후 주어진 직분에 몰두하면서 폭넓은 삶의 유연함을 가지며 애써 강인한 모습으로 살고자 했다. 지혜롭지 못하게 전전긍긍해 왔던 분리불안 심리를 극복해야겠다고 나 자신에게 다짐도 해 보았다. 

 요즘 아내는 초·중 동창들과 해외여행을 가기로 계획하고 있단다. 10여 년이 훨씬 지나고도 분리불안 증세가 아직도 남아 있어, 나는 아내가 해외여행 간다는 말을 꺼내면 초조하고 가슴이 졸이는 듯한 마음을 지울 수가 없다. 다만 국내여행 1박 정도는 견뎌 보리라는 마음은 갖는다. 마음을 열고 편안한 마음으로 국내여행은 보내려 한다. 남들이 보면 ‘의처증이 있는 거 아냐?’ 하겠지만 그것은 절대 아니다.

 이제 글쓰기에 몰두할 시간이 있기에 견뎌낼 담담한 마음의 여유로움을 갖는다. 그동안 나만을 위해 살아주었던 아내가 친구들과 몇 번이나 계획했던 여행을 오늘 실천에 옮겼다. 비록 1박 2일의 짧은 국내여행이지만 즐거운 마음으로 떠났다. 몇 년 전 나와 함께 다녀온 강원도 경포대로. 지금 경포대의 아름다움에 젖어 나와의 지난 여행을 생각하고 있지나 않을까? 친구들과 즐겁게 여행만을 누리면서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고 있겠지. 그동안 가슴에 담았던 섭섭한 마음들을 잔잔한 호수에 내려놓고 충만한 힐링을 하고 있을까. 혼자 독백에 잠긴다. 

 멀리 있는 아내를 향한 그리움에 내 마음도 경포 호수로 달려가고 있다. 아직도 아내의 해외여행에 대해 어떻게 처신해야 할까 하는 숙제는 미해결로 가슴에 남아 있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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