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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기생충, 봉준호의 표상-메시지 분석기.

진술분석 관점에서 감독 봉준호의 메시지를 해석하다.

'진술분석은 진술인의 말하고 싶은 하지만 말할 수 없는 것을 찾아가는 작업이다.'라고, 한 전문가가 말했다.

필자가 진술분석에 흥미를 느끼게 된 부분도 바로 이 부분이다.

음악이나 영화를 도구삼아 불특정 다수를 향해 나의 메시지를 간접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과 상당히 유사한 매력이 있다. 다만 분석 대상과 주객의 관계성에 있어 숨김의 의도만 다를 뿐이다.

"영화 기생충을 통해 봉준호는 관객에게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걸까?"


   이 영화는, 미시적으로 한국의 빈부격차의 현주소를, 거시적으로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나타난 신계급 계층의 모습을, 투사시켜 가족희비극으로 메타포한 영화라고 생각한다.


   영화 형식을 취하기에 극적 요소와 장치가 표면적으로 드러날 뿐, 그것들을 뺀 나머지 부분들만을 분석재료로 메시지를 해독하면, 많은 행간의 숨은 뜻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영화를 볼 때와 다르게, 영화를 본 후 글로 감상문을 적다 보면, 머릿속에 각인된 이미지나, 사건 및 인물관계, 그리고 숨겨진 행간의 의미가 스멀스멀 글로 녹아 다시금 자각하게 되는 과정이 재미있다. 안 해보신 분들은 해보시기를 적극 추천한다.


영화를 본 후 세 가지 관점에서 평을 한다.


1) 신선함.

   사전에 아무런 정보 없이 단지 칸 황금종려상을 받았다는 사실만 알고 봤다.

   영화 '델리카트슨 사람들(Delicatessen, 1991)'이 생각났다. 

   인육을 먹는 디스토피아 사회를 그린 영화인데, 당시 '컬트 무비'라는 장르적 표현을 처음 접하게 된 영화였다. 내가 받은 이런 느낌 때문에 다른 이들도 영화 기생충을 봉준호 장르의 첫 신호탄 영화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또한 영화 표현에 있어서도 특유의 영상미, 대사 등의 톤 앤 매너가 기존의 영화적 틀을 살짝 비틀어, 봉준호만의 묘한 냄새(?)를 풍기게 만들어 주는 스토리 작화력과 연출력이 드러나기 때문에 나온 찬사라고 생각된다.


2) 재미.

   재미는 몰입감과 같은 맥락의 표현이다. 재미가 없으면 몰입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는 단 한 번도 지루하다고 생각 들지 않았기에 재미있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특히, 잊을만하면 뜻하지 않는 폭소를 머금게 하는 대사와 상황은 다소 발전된 봉준호의 영화적 표현력을 가늠케 했으며, 감독으로서의 여유마저 느낄 수 있었다.


3) 감동.

    여기서 내가 언급하는 감동적 요소는 신파적 요소와 다르다. 

    영화, 즉 스토리 콘텐츠로써 어떤 의미를 내포, 혹은 은유, 아니면 그와 유사한 메시지적 가치를 지닌 요소가 함의되어 있는지를 일컫는 것이다. 그리고 단순히 내재된 의미만으로는 안된다. 그 의미가 관객에게 전달되지 않는다면, 어떤 효과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영화제에서 수상한 부분에 있어서도 이 부분에 대한 평이 좋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어떤 의미를 내포하고, 우리에게 전달하는지 분석해 보자!

     (여기서부터는 스포일러가 상당하니 영화를 안 보신 분들은 미리 이점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특별 출연한 민혁(박서준)에서 봉준호 감독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단서를 찾다.'

   영화 초반에 잠깐 나오는 이 캐릭터에, 이 영화가 전하는 의미를 분석함에 있어, 단서를 찾았다는 것이 다소 의아할 수도 있으리라 생각된다. 그러나 이 글 소제목에 언급한 바와 같이 필자는 진술분석을 하는 사람으로서, 진술분석 관점에서 봉준호 감독의 메시지를 분석, 해독, 판독하고자 하는 것인 만큼, 또 다른 영화적 해석으로 이해해주기를 바란다.

   

    진술분석은, 진술인이 하지 않는 말 혹은 못하는 말을 분석하여, 추리 추론 추정하고 정보로써 활용하는 프로파일링의 한 분야라고 볼 수 있다. 궁극적으로는 사실관계를 파악하고, 종국에는 실체적 진실을 알아가기 위한 과정이다. 필자는 이 분석에서 진술인을 봉준호 감독으로, 영화는 진술 내용으로 취급했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주조연도 아닌 특별 출연한 이 민혁 캐릭터에서 단서를 찾았는가?

   궁금할 것이다. 

   이유는 매 상황마다 다르겠으나, 대다수의 진술인은 자신이 알고 있는 진실을 다 말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자신이 용의 선상에 있어, 자칫 말실수라도 할 경우, 범죄 혐의를 받을 수 있다는 걱정 때문일 수도 있고, 아니면 자신의 지인이 곤경에 처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숨길 수도 있다. 또한 실제 진술인이 범인인 경우에는 당연히 범행 사실을 자백하려고 하지 않는 이상, 말할 수 없을 테니 진술분석은 어찌 보면, 진술인이 숨기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가면서부터가 시작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면에서 볼 때, 이 영화에서 민혁은 아주 큰 단서이다.

   

   진술 내용에 있어 스킵(skip), 생략되는 것에는 늘 단서가 있다고 본다.

   민혁은 영화 초반 이 영화의 주인공인 기택(송강호)과 그의 가족에게 뭔가를 들고 나타난다.

   그리고 궁박한 그들의 처지에 있어 단비 같은 일자리를 툭 던지고 떠난다. 

    여기서 관객은 극적 질문을 하게 된다. 

    '과연, 그 일자리를 획득하여 궁박한 처지에서 조금이나마 이들은 벗어날 수 있을까?'

    하지만 분석가는 불필요한 정보가 노출될 때 집중한다. 

    이유는 진술인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곳에 주로 진실이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숨김에 있어 진술인은 중요하지 않은 부분까지 신경 쓸 겨를이 없다.


    민혁은 기택의 아들 기우에게 박사장(이선균)네 딸, 다혜의 영어 가정교사 자리를 물려줌에 있어서 이런 말을 한다. 다혜를 좋아하고 대학에 진학하면, 자신이 해외 교환 학생으로 유학 다녀와서 정식으로 사귀려고 하니 잘 부탁한다고 말이다. 영화에 있어서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정보일 수 있다. 

   그러나 민혁은 관객에게는 극적 질문을 갖도록 만들게 해주는 감독의 메신저이며, 진술인(영화감독)에게는 면담자(관객)를 향해 가장 보편타당한 캐릭터의 모습을 지닌 역할로 비치게 함으로써 이 진술내용(영화 스토리)을 진실인양 믿을 수 있도록(몰입할 수 있게) 유인하는 장치라고 볼 수 있다.


   이 영화의 등장 캐릭터를 아래와 같이 분류해 보겠다.

   이 영화를 자본주의 사회에 있어 신계급사회에 비유, 메타포한 영화라고 보는 관점은 최근 영화 후기나 기사를 보더라도 큰 이견은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등장 캐릭터, 계층(계급)]


1) 동익(이선균) 가족:

    돈 있고, 능력은 있으나, 그다지 사람을 사람 그 자체로 보기보다는 지위와 역할과 계층 수준으로 바라본다. 

   따라서 그 수준의 선을 넘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을 자주 들어낸다. 

    이는 기득권자들이 스스로를 포장할 때 '합리적 보수'라는 말로 자주 쓰는 논리다.

    보수는 다소 부패하고, 그다지 정의롭지는 못하더라도 유능하고 돈이 많기에, 합리적 사고로써 그 효용가치를 인정해야 한다는 논리다. 이들이 말하는 합리적 사고는 일전에 뇌물수수 사건으로 문제가 된 한 사건을 어떤 정치인이 한 말 '떡을 다루다 보면 떡고물이 묻기도 한다. 그것을 문제 삼으면 누구도 그 일을 할 수가 없다.'는 식의 뉘앙스가 가장 잘 대변한 사례라고 생각한다.

   즉, 동익의 가족은 현재 자본주의 사회의 상위 계층을 나타낸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2) 민혁:

       1)을 동경하고 지향하는 중산층 민혁(박서준)

   기우의 집에 드나들 수 있고, 편의점 앞에서 기우와 종이컵에 소주를 한 잔 할 수 있는 부류다.

   또한, 기우 보다는 좀 우월하다는 의식을 갖고 있다. 그 근거로, 취미로써 가치를 인정하는 사람에게만 효용성이 있는 수석을, 당장 먹을 게 없는 기택의 집에 가져가는 그의 맹랑함이 이를 짐작케 한다. 특히, 반지하 기택의 집 창문에 술을 먹고 노상방뇨를 하는 취객에게 큰 소리로 꾸짖는 모습에서는 정의감 마저 느껴진다.

    그런데 기우와 편의점에서 소주 한 잔 하며, 말하는 민혁의 대사에서는 1)의 대한 동경이 그대로 묻어 있다.

    추정컨대, 스펙 쌓아 그들 틈에 가려는 욕망이 고스란히 엿보인다.

    지나가는 사람들을 상대로 '당신은 소득 대비 상위층, 중산층, 빈곤층 중 어디에 속하십니까?'라고 설문조사를 하면, 거의 대다수가 '중산층'이라고 체크한다는 기사를 본 기억이 있다.

     봉준호 감독은 민혁을 바로 이런 의미에서 보편적 다수인 중산층으로 설정하고, 영화 관객에게 의식이든 무의식이든 민혁에게 동질감을 느끼도록 함으로써, 자신이 앞으로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의 세계에 들어오도록 만든다. 그리고 이후 과감하게 그를 삭제한다. 마치 민혁의 자리에 관객이 자리하게 한 것처럼 말이다.

 

3) 문광(이정은) 부부:

   1)의 수족을 자처하고, 그들의 그늘에서 안주하고픈 서민층처럼 보인다.

   그리고,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그녀의 남편, 사회적 패자로 대변되며, 1)을 리스펙트! 하고 신처럼 여기는 마치 무슨 부흥회 집회에 나서는 이처럼 보인다. 이 영화적 결말의 원인을 마치 문광 남편의 도발적 일탈행동으로 이 모든 사건이 귀결됨에 있어서, 그의 정신병적 문제라고 치부하면, 아마도 이 영화를 만든 봉준호는 울고 싶을 것이다. 제발 그렇게 생각하지 마시길 바란다.


4) 기택(송강호) 가족:

   선택받는 것 외에는 그 어떤 것도 기대할 수 없는, 즉 능동적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로, 영화 대사에도 나오는 것처럼, 계획을 세우지 않으면 실패할 일도 없다고 생각하는, 그냥 먹고살기도 팍팍한 저소득 빈곤층.

   따라서 기회만 주어진다면, 1)에게 철저하게 기생하며, 살아가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당신은 어느 계급에 속해있는가?! 이 질문이 불편한가?!'

   그래서 만든 캐릭터가 바로 민혁이라고 생각한다. 관객들에게 그 자리(관점)에서 편안하게 보라고 말이다.


   봉준호 감독의 최종 메시지는 분석 결과,

   "당신이 속한 계급이 어디든 안전하지 않다."

   라고 말하는 것처럼 보인다. 


※ 영화 포스터, 홍보 이미지 등에 반복 등장하는 배우들의 눈을 가린 것도, 

     이 영화에 등장하는 이들을 단순하게 특정인으로 여기지 말라는 메시지로 해석된다.

     즉, 이 캐릭터들의 행동을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특정 캐릭터의 일탈행위로 보면, 감독의 메시지를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때문에 이 영화를 보고 난 뒤에 느낌은,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우리의 가치에 가장 중심엔 '사람'이 있어야 함을 결코 간과하지 말라고 역설적으로 말하고 있음이 느껴진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천박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람을 각 계층 계급에 몰아넣고는 

   그 선을 넘지 못하게 만드는 현재의 이 사회가 과연 언제까지 평온고요하게 유지될지, 

   끊임없이 묻고 있는 감독 봉준호의 목소리가 이 영화를 본 후 내내 내 귓가에 한동안 메아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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