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수다의 미학(美學)

인간의 수다, 디스토피아를 유토피아로 바꾸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근대 철학자 데카르트가 말한 것이다.
하지만, 인간의 생각은 수천년전부터 있었다. 


그리고, 생각한 것을 공유했다. 말과 글로써 말이다. 그것이 인간을 발전시키기도 하고, 때로는 죽음으로 몰아 넣기도 하였다. 하지만, 발전 시키는 노력이 더 있었기에 아직까지 인류는 말짱하다. 그러나 지금은 인간 스스로가 죽음을 택하는 묘한 세상이 되어 버렸다. 왜 일까? 정신의학에서 보면 우울증이란다. 우울증이 스트레스에서 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러면 왜 수천년동안 인간은 엄청난 문명 발전을 이룩했음에도, 스트레스는 줄지않고 오히려 증가했는가?! 많은 사람들이 시스템에서 해답을 찾는다. 약육강식의 논리로 돌아가던 세상에서, 머리를 쓰고, 생각하고, 고민해서 만든 사회 시스템이 완벽하지 못하다는 것을 살아오면서 느끼고 몸소 체험하기 때문이다. 완벽하다는 말 자체가 현실에선 불가능한 말로 들릴 수도 있겠으나, 적어도 우리가 살아가는 삶 속에서 스스로 죽음을 택하는 이들이 사라져야 함에는 동의할 것이다. 혹자들은 말한다. 비록 현재의 시스템이 부족하고 불안전한 시스템이지만 강자에게 무참히 죽임을 당하는 약자들의 수많은 희생으로 만들어진 시스템이다. 차차 인간이 이것을 올바르게 만들어가면 된다. 스트레스 좀 줄이자고, 다시 예전의 약육강식의 야만적인 삶으로 돌아갈 수는 없지 않는가?! 맞는 말이다. 이 시스템을 올바르게 만들어가는 것이 바로 정치이다. 다시 말해서 정치는 그런 것이다. 미래를 유토피아로 만들 수도, 디스토피아로 만들 수도 있는 것이다. 


정치 무관심의 가장 큰 대가는,
가장 저질스러운 인간들에게 지배당하는 것이다.


고대 철학자, 플라톤이 지금으로부터 2500년전에 한 말이다. 그 시대보다 100년 앞서 산, 즉 소크라테스와 같은 시대의 인물, 공자의 논어를 보면, 플라톤이 한 말과 일맥상통하는 말들이 수도 없이 나온다. 


   문답식의 더욱 더 확실한 수다를 통해 얻은 지혜를, 잘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놓고 있는 것이 논어이다. 

   정치는 변한게 없다. 우리는 술자리에서 혹은 모임에서, 심지어 가족끼리 만나도 정치얘기는 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이것은 과연 바른 말인가? 이는 철저히 무지한 말이고, 잘못된 말이다.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지 않고 회피하려고만 하는 약자가 만든 말일 수도 있고, 기득권에 문제 제기를 하지 못하도록 강자들이 만든 말일 수도 있다. 그러나 당장에 맞닥들힌 문제들을 회피하려다 결국 삶을 회피하게 됨을 왜 모르는가?! 종국의 현실이다. 다시 말해, 자신에게 닥쳐올 미래를 모르고, 당장의 안위와 평화만을 고집한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하나? 무엇을 하면 이들을 변화 시킬 수 있겠는가?!  

   바로 '수다'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힐링의 시작이라고들 한다. 힐링이 가장 필요한 인간의 부류가 오랜 전 부터 있었다. 바로 여자들이다. 약자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래서 그 약자의 고통과 설움을 수다로 힐링해왔다. 그래서 수다=여자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생긴 것이다. 지금은 남여노소 모두에게 필요한 것이다 최근 시대적 열망이 계층간, 사회간, 세대간, 국가간, 매사에 소통을 강조한다. 소통의 밑바닥이 바로 수다이다. 말을 해야 소통이 시작되는 것이다. 말하지 않는데 소통할 수 있는가?!


수다를 잘 하려면 어떻게 해야하나?


   소통을 잘 하려면 어떻게 해야하나? 많이들 고민한다. 바로 듣는 것 부터 시작하면 된다. 그리고 들은 것을 내가 해석하고 이해한 뒤에 의문점을 상대방에게 잘 다시 물어보는 것 부터 시작이다. 예를 갖추어서 말이다. 내 말을 듣지 않고 수용하지 않는 사람에게 말을 하고 싶은 사람은 없다. 어떤 사람이 나를 피하게 만드는 방법은 아주 쉽다. 그 사람이 하는 말마다 평가하고, 지적하고, 비난하면 된다. 그러면, 나를 피하게 될 뿐 아니라 나를 원수보듯 할테니 말이다. 말이라는 것은 이렇듯 소통의 시작일 수도 있으나 끝이 될 수도 있다. 

   소통의 밑바닥이 수다라고 했다. 수다를 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앞서 소통은 상대방의 말을 잘 듣고 수용할 자세를 취하면 쉽게 해될 된다라고 했다. 하지만, 수다는 그러려고 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소소한 일상에서 부터 무거운 소재, 주제까지 가릴 것 없이 말로 떠드는 것이 수다이다. 

   바로 해답은 여기에 있다. 수다의 소재와 주제!    


수다는 무엇보다도 소재와 주제가 중요하다.


  모두가 몰입하고, 공감하고, 심지어 감동까지 할 수 있으면 그 수다는 바로 철학적 대화로 발전할 수 있는 것이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이 바로 하얀 까운 걸치고 사우나에 앉아서 떠들던 이야기, 수다가 바로 현재 우리가 공부하는 철학의 시초이다. 왜 낮과 밤이 있는가? 의문에 천문학이 시작되었고, 인간의 생, 사에 대해 고민하다 의학과 신학이 시작되었다. 또한, 다양한 인간의 삶을 이야기하다 인문학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이들의 욕망이 과학을 발전시켜 왔다. 


   그러나 현대는 어떠한가? 아는 이들만 떠들고, 모르는 이들은 입을 다물고 있다. 심지어 입을 다물면 중간은 간다고 하는 말까지 마치 진리인 듯 말하는 세상이다. 바로 이것이 배움의 동기이다. 알아야 떠들고 수다에 참여할 수 있다. 나는 아이들에게도 공부해라! 공부해라! 하지말고 떠들어라! 떠들어라! 라고 수다를, 가르칠 것을 강력하게 주장한다. 칠판에 떠든 아이 이름 적는 것은 일제시대의 대표적 잔재이다. 떠들면 바로 불만이 나오고 거기에 동조하고 그러면 체제가 붕괴된다라는 얄팍한 생각에서부터 시작된 것이다. 교육은 각 또래 세대에서 떠들어야 할 내용, 컨텐츠 즉 수다의 소재와 주제를 정하는 것 부터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수다가 산으로가지 않게 선생님은 잘 핸들링만 하면 된다. 사실 이런 교육방식과 수업이 전세계 어디에서나 있어 왔다. 서양의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 뿐 아니라, 동양의 공자부터 우리나라에서도 근대 조선시대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논어는 바로 이런 스승과 제자의 문답, 수다를 정리한 최초의 철학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떤 소재와 주제가 수다를 통해 힐링하고,
디스토피아를 유토피아로 바꿀 수 있나?


   철학적 소재와 주제는 이미 우리 많은 선조들이, 인류의 지혜를 얻고자 떠든 말을 곱씹어 현대의 문명에 응용하고 적용하여, 시스템을 정비, 보완, 구축해나가면 된다. 말이 좋아 요즘 융합이지 결국 이 말인 것이다. 철학은 그런 면에서 가장 좋은 학문이다. 철학은 지혜를 찾아가는 행위 과정의 학문이다. 지혜는 각 분야에서 다 필요로 하고 진리에 한 걸음 다가서기 위한 해법이다. 하지만, 기득권 세력은 이런 것을 싫어한다. 그들은 현재의 시스템에 안주하고 이것을 지키려는 자들이기에, 당연히 철학적 사고, 근본을 재정비하는 학문을 두려워 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이념이 생긴 것이고, 전쟁까지 하는 지경에 이르지 않았나! 사실 그 이전에는 종교였다. 종교인들이 곧 기득권층이었고, 그들이 부패하고 부정한 행위를 하는 것에 몇몇 철학자들이 반기를 들고 의문을 던지자 죽임을 당한 것이 아닌가! 인간들이 사는 시스템은 그닥 과학, 문명의 발전에 비해 썩 나아지지 않은 것이다. 바로 이런 점을 다시 해결하고자 요즘 핫 이슈로 떠오른 아이템이 융합, 인문학이라는 말이다. IT의 발전으로 이젠 정보의 바다에 헤엄치다 못해 익사하게 될 지경에 빠진 현대인들에게 이 정보를 걸러내고 필터링할 사고체계가 필요하게 되었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실제 인간이 경험한 정서적 체험, 기억을 서로 공유하며, 수다 떨면서 나만의 맞춤 지혜를 얻는 것이다. 이것들을 증명하는 것이 결국 인터넷에 널린 후기들이 아닌가 생각한다. 나의 정서적 체험과 기억들을 쏟아부어 만든 후기. 정말 놀랍지 않는가? 누가 쓰라고 해서 쓰는 것이라면 아마 이렇게 많은 후기들이 나올 수 없을 것이다. 논어에 보면 이런 말이 있다. '천재는 막을 길이 없고, 바보에는 약이 없다.' 이 말은 타고난 대로 흘러가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어찌보면 세상의 이치도 여기에서 찾을 수 있지 않나 생각한다. 억지로 무엇을 바꾸기 보다는 자연스럽게, 그러나 올바르게 흐르도록 우리가 관심을 갖는 것. 끊임없이 주목하고 지켜보는 것이 바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아닌가 말이다.

 

  그렇게 지켜만 보면 재미없지 않는가? 그래서 떠들자는 것이다. 수다를 떨다보면 이 흐름이 올바른 것인지 아닌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가르칠 때, 나 혼자 스스로 배움에 있어서 얻지 못한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경험을 한다. 바로 수다의 미학도 여기에 있다. 떠들다 보면, 스스로 깨닫게 되는 것이 많다. 깨달음이 없다고 해도 적어도 마음 속 응어리진 감정은 쏟아낼 수 있기에 수다는 인간에게 주어진 최고의 선물이 아닌가 생각된다. 눈이 안보이고, 귀가 안들리고, 말을 못해도, 수다는 다 떨 수 있다. 하지만, 뇌가 서버리면 더 이상 불가한 것이 수다이다. 결국 인간의 가장 중요한 신체부위인 뇌가 하는 행위가 수다인 것이다.

  

수다는 부작용이 없다. 잘만 하면 말이다.


   수다의 목적과 방법에 있어서 목적은 윤리적, 이성적, 도덕적 방향성만 유지한다면 절대 헤롭지 않다. 방법은 좀 다르다. 수다의 방법은 상대방의 말을 평가하고, 지적하고, 비난하려하면 안된다. 이것은 종국에는 지금의 현실 정치처럼 반목하고, 정쟁하게 되는 도구로 수다의 가치를 전락시키는 결과를 낳기 때문이다. 대화, 소통, 토론, 토의 이런 말들로 우리는 결국 서로 듣고 말하기를 하는 것인데, 어느 한 쪽이 들으려는 수용의 자세를 취하지 않는다면 더 이상 진행될 수 없는 것이다.

 

   헤겔의 변증법, 정반합, 이것이 바로 정, 반에서 그치지 말고 합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절대 피해야 할 수다의 방법이 바로 평가, 지적, 비난을 하지 않는 것이다. 다만, 논리적으로 상대방의 생각과 말, 그리고 나의 생각과 말이 어느 것이 타당하고 합당한지 떠들면서 찾는 것이 핵심이다. 만약 찾지 못한다면, 찾을 때까지 그래도 못 찾겠다면, 정서적으로 접근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인간의 심리, 뇌과학으로까지 접근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근래에 나온 시스템1, 시스템2의 뇌과학 행동경제학이 주목받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논리적으로도 해결할 수 없었던 인간의 오판이 바로 뇌의 타고난 습성인 것임을 과학적으로 증명한 것이기 때문이다.

 

  '수다'의 사전적 의미는 '쓸데없이 말수가 많음, 또는 그런 말.'이다. 부정적인 말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러나 필자가 좋은 단어들을 재치고 수다라는 단어를 사용한데는 바로 이런 이유기이기도 하다. 쓸데없는 말에서 아이디어가 나오고 지혜가 나오고 종국에는 진리를 얻게 되는 것이 아닌지 말이다. 서양 경영학에 보면, 브레인 스톰(brain storm)이라는 아이디어 회의방식이 있다. 하나의 주제에 대해 마구 자신의 의견을 쏟아내는 것이다. 이때, 두 가지 원칙이 존재한다. 첫째, 정해진 시간내에서 해야 한다. 두번째, 상대방의 의견을 절대 비난해서는 안된다. 창의적인 일을 하는 작가에게도 브레인 스톰에 준하는 셔레이드(charade) 연상 훈련법이 있다. 정해진 짧은 시간 안에 하나의 소재, 단어를 처음 기준으로 연상되는 단어들을 마구 쏟아내듯 적는 것이다. 그러다보면, 마치 어떤 스토리가 떠오른다. 사실 이 방법을 통해 나온 1차적 스토리는 배설해야 할 나의 감정, 기억, 정서적 쓰레기이고, 그 다음 더 내면으로 들어가면 나오는 것이 진짜 창의적인 발상, 이야기라는데 아직 나는 알듯말듯한 수준의 창작자일 뿐인 것 같다.

결론은...
수다를 떨면, 정신적 힐링부터 내면의 내 자신과 마주하게 되기도 하고,
깨달음을 얻기도 하며, 상대방을 좀 더 잘 이해하는 기회도 얻게 된다.


   더 나아가 사회적 시스템에 있어서는 소통의 밑거름이 되어 강자, 기득권의 횡포, 전횡에 맞설 수 있는 약자들의 무기가 될 것이며, 긍정적으로 미래를 바라보는 도구가 될 것이라 확신한다. 로봇이, 강한 인공지능이, 인류를 위협해도 우리에게는 수다가 있기에 설국열차, 매드맥스 같은 디스토피아는 오지 않으리라 믿는다. 자~ 모두들 수다떨기 위해 모여라!!!

-끝-

<사진, 글 모두 JackLee>


이전 02화 우리가 쫓는 행복의 실체를 찾아서...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