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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나쁜 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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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메다 Aug 09. 2020

너는 내 친구야?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는 어리석은 구조 신호

여느 때와 다름없는 하루. 안대를 벗으니 따사로운 햇살이 내 눈가를 두드린다. 요새는 계속 비가 왔는데 오랜만에 해가 들었다. 하지만 기분이 썩 좋지는 않다. 오늘은 해가 떴으니까 햇빛 받으러 나가야겠지 하는 생각에 몸이 무거워진다. 일어나야 할 걸 알지만 힘이 나지 않는다. 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하려고 했으나 너무 멀리 있다. 손조차 뻗기 힘들다. 겨우 1m 남짓 떨어진 테이블에 올려둔 핸드폰인데 왜 이렇게 멀게만 느껴질까. 하늘의 별을 보는 것 같다.


일어난 지 얼마나 지났을까. 숨 쉬는 것도 지겨워지려는 찰나 겨우 몸을 일으킨다. 오늘 하루도 이렇게 보낼 수는 없다는 생각에 겨우 일어나 약을 먹는다. 사실 먹어도 그리 좋아지지는 않는다. 그냥 이거라도 먹어야 나아지겠지 하는 생각에 꿀꺽 삼킨다. 의사가 말하길 자기한테 맞는 약 종류와 양을 찾을 때까지 계속 약을 바꿔야 한다. 얼마나 오래, 얼마나 많은 약을 먹어야 할지 모르겠다. 나를 제일 절망스럽게 하는 건, 약을 아무리 먹어도 내 삶이 바뀌리라는 기대는 생기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책상에 앉았다. 책상에는 어제 쓰다 만 일기장과 정리하다 만 수첩, 내일 책가방을 싸기 위해 준비해 둔 인강 교재 등이 이리저리 흩뜨려져 있다. 정리할 생각에 막막하다. 일기를 마저 써야지 하며 일단 연필을 집어 든다. 일기장에는 알아보기도 힘들 정도로 갈겨쓴 글자가 가득하다. 나를 향한 분노와 자책, 우울로 가득한 종이를 보니 맥이 빠진다. 책상에 털썩 몸을 던진다. 소리도 한번 질러본다. 기분이 나름 나아지는 듯하다. 또 그렇게 한참을 있다가 겨우 상체를 들어 올린다. 커터칼을 꺼내 손목을 가볍게 그어본다. 상처가 나지 않도록, 가볍게. 뱀이 내 몸 위를 지나다니듯 스르륵 칼날이 손목을 스친다. 힘을 넣고 싶지만 그러면 후회할 걸 알기에 하지 않는다. 자해 흉이 남지 않으려고 흉터 연고를 바르는 내 모습처럼 역겨운 모습은 없다.


어젯밤에도 울다가 잠들었다. 펑펑 울지는 않았다. 눈가에 맺힌 눈물이 얼굴을 타고 떨어지지 못하고 안대에 닿아 안대를 축축이 적신다. 그 느낌은 정말 싫다. 운 이유는 구구절절 설명하면 너무나 길지만 짧게 이야기하면 또 너무나 간단하다. 나를 향한 분노, 자책, 우울, 가엾음. 온갖 감정이 터져 나와서 울었다. 그리고 또 내일이 기다려지지 않는다는 사실이 너무 슬퍼서 눈물이 났다.


시계를 보니 벌써 두시다. 밥을 먹어야지 싶지만 도저히 힘이 나지 않는다. 배는 고프지만 채우고 싶지는 않다.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난다. 배가 텅 비었다며 음식을 채워 넣으라고 시위한다. 이 텅 빈 느낌이, 꼬르륵 소리가, 내가 살아있다는 증거인 것만 같다. 그래서 도저히 밥을 먹을 수가 없다. 또 그렇게 한참을 있었다.


텅 빈 느낌은 내게 너무나 익숙한 느낌이다. 항상 공허하고 외롭다. 삶의 모든 순간이 의미 없는 것만 같다. 사람들의 관심을 갈망하지만 먼저 내게 관심을 달라고 이야기할 용기는 없다. 상대가 날 귀찮아하지는 않을까, 상대가 날 부담스러워하지 않을까, 날 싫어해서 더 이상 나와 이만큼의 관계도 맺지 않으면 어쩔까. 무서워서 누군가에게 먼저 전화를 걸진 못한다. 대신 나를 향한 사람들의 관심도 체크를 위해 이틀 전에 카카오톡을 탈퇴했다. 혹시나 날 걱정해서 누군가 연락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했다. 하지만 역시나 연락은 오지 않았다. 인간의 숲 속에서 내 주변에만 투명한 유리벽이 서 있어 남들과 나를 가로막고 있는 듯하다. 이 적막은 도저히 무덤덤 해지지 않는다.


사실 연락은 왔다. 고등학교 친구 세명이 먼저 "카톡 탈퇴했나?", "무슨 일 생겼나?" 하면서 연락해왔다. 하지만 그들의 문자 메시지는 내 맘에 들어오지 않는다. 나를 걱정해주는 친구들의 존재보다 내게 연락하지 않는 사람들을 향한 분노와 억울함만 터져 나온다. 단톡방에서도 다 나가 졌을 텐데. (알 수 없음)이라고 떠도 누가 나갔는지 알 텐데. 아무도 내게 연락해주지 않는구나. 머릿속에서는 부정적인, 그나마도 사실이 아닌 온갖 상상이 구름처럼 떠다닌다. 구름은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 뭉게뭉게 수증기를 머금고 덩치를 키워간다. 이내 하늘은 먹구름으로 뒤덮여 회색빛으로 변한다. 햇빛은 찾을 수 없다. 구름의 움직임도 보이지 않는다. 하늘은 하얀 캔버스에 회색 빛 물감을 끼얹은 것 마냥 생기라곤 없다. 차라리 비가 내렸으면 좋겠다.


정신과 의사나, 상담 선생님이나 모두 같은 이야기를 했다. '터널 비전'이란 터널 안에서 터널 밖을 보는 것처럼 주변을 보지 못하고 시야가 극도로 좁아지는 현상을 의미한다. 내가 지금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물이 반밖에 안 남았네", "물이 반이나 남았네"하는 사고방식의 문제가 아니라 정확하게 물이 반임을 인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나는 지금 무슨 이야기를 하든 부정적인 이야기만 하고 내 과거와 현재를 모두 쓸모없는 무언가로 인식하고 있다. 하지만 그게 현실은 아니다. 진흙탕에서도 연꽃은 피듯이 내게도 분명 긍정적이고 행복한 무언가가 있을 텐데 나는 그런 요소를 애써 무시하고 있지는 않냐고 물었다.


맞는 말이다. 내게는 먼저 연락해온 친구들이 보이지 않는다. 내게 연락하지 않는 사람들의 얼굴만 떠오르고, 난 쓸모없는 존재라는 생각이 나를 둘러싼다. 그럼에도 내게는 그들만 눈에 들어오는데 어떡하는가. 참 어려운 일이다. 어떻게 해야 할지 알면서도 그렇게 하지 않기 때문에 더더욱 갑갑하다. 화살은 내게로 향한다. 상담 선생님은 내가 '할 수 없는' 상태라고 했지만, 나는 '하지 않는' 내게 화를 낸다. 그래서는 안되는데 말이다.


연락처를 죽 훑어본다. 그나마 편하다고 느끼는 이들에게 의미 없는 문자를 보낸다.

너는 내 친구야? 넌 왜 나랑 친구해?


정말 의미 없는 질문이다. 바닥까지 떨어진 자존감을 채우기 위해서일까. 내가 정말 누군가에게 쓸모 있는 사람임을 확인받고 싶어서일까. 아니면 최대한 불쌍해 보이는 척하면서 상대의 동정을 사기 위함일까. 나도 내 심리를 잘 모르겠다. 정말 누가 내 친구일까. 누구에게 돌려 말하지 않고 내가 너무 힘들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누구에게 도와달라고 구조 신호를 보내야 할까. 누가 나를 버리지 않을까. 한없이 두렵기만 하다.


그런 친구가 없지는 않았다. 얼마 전까지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없다. 다시 그런 친구를 만날 수 있을까. 매력이나 장점도 하나 없고 항상 우울한 이야기만 해서 대화하는 재미도 없는 내가, 다시금 친구를 사귈 수 있을까. 살다 보면 더 나은 사람을 만날 수 있다. 어쩌면 내 주변에 이미 그 친구보다 훨씬 더 좋은 사람이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 내게는 보이지 않는다. 나를 향해 손 뻗어주는 이들의 앞모습보다는 연락 없는 이들의 뒷모습만 보인다. 내게 뻗은 손을 맞잡을 용기가 나지 않는다. 다시금 홀로 될까 봐, 지금보다 더한 외로움과 공허함에 시달리는 게 무서워서 나는 지금의 고통을 울며 겨자 먹는 심정으로 감수하고 있다. 참 어리석은 일이다.


오늘도 나는 의미 없는 문자를 보낸다. 나만 알아볼 수 있는 구조 신호를 보낸다. 이 절망의 구덩이에서 나를 구해 달라고. 나는 네가 던진 밧줄을 잡을 힘조차 없으니 구덩이 안에 들어와 나를 꺼내 달라고. 아무도 이해하지 못할 의미 없는 문자를 보낸다.


(퇴고해야 함은 알지만 너무 버겁다. 언젠가 기력이 생기면 그때 다시 읽고 손을 대지 않을까. 내 감정밖에 써내려가지 못하는 글재주가 절망스럽다. 피천득 선생님 같이 깊은 통찰은 없다는 사실이, 내 감정을 설명하지 않고도 감정을 묘사해내는 재주가 없다는 사실이, 남이 읽기 편한 글을 쓰지 못한다는 사실이, 이마저도 솔직하지 못해 중간 중간 나를 감춘다는 사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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