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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나쁜 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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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메다 Aug 13. 2020

나는 이런 사람이야

나를 도와줄 수 있겠니?

길어서 미안해, 괜히 심란하게 해서 미안해해. 그리고 다시 한번 부담스럽게 해서 너무 미안해.


넌 내가 싫어? 솔직히 머릿속에 그런 생각이 없지는 않지만, 그렇지는 않다고 애써 믿어.

내가 부담스러워? 나라는 사람이 부담스러운 건지, 아니면 우울하고 무서운 이야기를 하는 내가 부담스러운 건지, 아니면 어제의 나처럼 감정적으로 충동적으로 달려드는 내가 부담스러운 건지, 아니면 이런 식으로 도움을 요청하는 내가 부담스러운 건지(그렇게 친한 관계는 아닌 것 같다) 이야기해줬으면 해. 내겐 솔직한 대답이 필요해.


다음은 내 상태를 설명하려고 해. 난 대인관계 문제로 끝없는 절망감, 무력감을 느껴. 인간관계를 맺고자 하는 욕구는 항상 있어. 하지만 그것 보다는 두려움이 더 커. 이 사람이 날 싫어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말이야. 그래서 내가 먼저 다가가는 건 당연히 못하고, 남들이 먼저 다가와도 두려워서 도망쳐. 사실 누가 내게 뭔가를 같이 하자고 하면, 같이 놀자고 하면 굉장히 기분이 좋아. 하지만 동시에 굉장히 두려. 기쁨보다 더 큰 두려움이 나를 덮쳐. 이 사람들이 나를 싫어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해서 기뻤어. 내가 그리 나쁘게 살지는 않았구나 해서 좋았어. 하지만 동시에 '아, 여기 가서 말실수하면 어떡하지? 가서 재미 없게 굴면 어떡하지? 그럼 다음에는 안 부르겠지? 그럼 이만큼의 관계마저도 없겠지?'하는 두려움이 있어.


깨지는 게 두려워서 깊은 관계 맺는 걸 멀리해. 그래서 중학교때나 고등학교때나 지금이나 내 인간관계는 다 피상적이야. 부모님도 마찬가지야. 상대가 어떻게 생각하든, 그리고 실제로 관계가 얼마나 깊든 간에 나는 그렇게 느껴. 단 한 명만 제외하고. (물론 그 사람은 이제는 내 곁에 없지만. 그리고 그 사람이라고 두려움이 없지는 않아.) 그렇기 때문에 난 항상 공허하고, 외롭고, 허무하고, 무기력한 감정을 느껴. 내일도 이런 하루가 바뀌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날 너무 절망하게 만들어. 그러다 어떤 계기때문에 이 문제가 심해져서 상담을 받기 시작했어. 자해도 좀 하고 가끔 공황도 오니까, 상담사가 약도 먹어보는게 어떻겠냐 권유해서 지금은 정신과도 다니고 있어. 한달쯤 됐네. 근데 사실 약 별로 효과 없어.


내 문제는 대인관계 보다는 나 자신을 대하는 나의 태도 문제래. 내가 나를 무가치하다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저 사람도 무가치한 나를 싫어할거야!'라고 생각한다는 거야. 내가 바라보는 나는 말이야, 재미 없고, 우울하고, 진지하고, 이기적이고, 매력 없고, 잘 하는 거 없고, 가치 없고, 생각이 없고, 같이 있기 싫은 사람이야. 그렇게 나를 바라보다보니까 상대도 당연히 이렇게 생각할거야, 날 미워할거야하고 생각한다는 거야. 그러다보니 인간관계가 무섭고, 과하게 의식해서 사리거나 회피하고. 그러면 내 인간관계는 더 피상적인데 동시에 나는 관계를 갈망하고. 거기서 오는 괴리가 큰 문제야. 그리고 애초에 저런 생각이 기저에 깔려있기 때문에 상황을 제대로 인식하지도 못해.


예를 들어 난 솔직히 내가 보낸 연락에 1시간이 넘도록 답이 오지 않으면 엄청난 불안을 느껴. '내가 무슨 말을 잘못했나? 그래, 내가 뭘 잘못했어. 말을 잘못했나? 아님 저번주에 만났을 때 뭔가 내가 잘못한 게 있나? 맞아. 그래서 봐놓고도 답장을 안 하는 거야. 그래, 그렇지. 확인하고 답장조차 하기 싫은 사람이야. 난 그정도로 구제불능이야. 무슨 이야기를 하냐. 다음에는 이 사람한테는 연락 하지 않아야지. 어차피 답장 오지 않을 거. 난 정말 왜 이럴까.. 뻔히 날 싫어하는 게 보이는 사람한테.' 거의 이런 사고방식이야. 단순히 답장이 늦는 것 만으로도 나는 '내가 거부당했다, 내가 수용당하지 못한다'라고 생각하거든. 어쨌거나 나는 이런 사람이기 때문에, 불안해서, 무서워서, 내가 가치있는 존재라는 걸 확인받기 위해서 너한테 그렇게 격정적으로 앵기면서 답을 바랬어. 그래도 넌 조금이나마 편했거든. 그런 질문이 별 의미 없는 거 알아. 어제는 좀 많이 무서워서 그랬어. 미안해. 이해해줬으면 해.


중요한 건 약이나 상담은 결국 본질적으로 날 치료해주지 않는다는 거야. 가장 절망적이지만 절대 잊어서는 안되는 내용이지. 약은 우울이나 불안감을 조금 줄여줄 뿐이지 내 생각을 바꿔주지는 못해. 생각을 바꿔주는 약이 있으면 세상에 우울증은 없을 거라고 하더라고. 상담은 내게 가이드라인을 제시하지만 그걸 따라가고 수행하는 건 온전히 내 몫이야. 수업 듣는다고 전부 다 수업 내용을 따라갈 수 있는 건 아니잖아? 그래서 난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해. 힘들 때, 불안할 때, 무서울 때, 죽고 싶을 때, 이 감정을 얘기할 누군가가 필요해. 옆에서 내게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 네가 잘못한 게 아니야'하고 이야기해줄 사람이 필요해. 원래는 나 스스로 해야 하는 거지만 그리 쉽지는 않네. 그래서 이야기해봤어.


필요할 때 가끔 기대도 될까? 거절하기 힘들기는 할 것 같은데 부담스러우면 그냥 부담스럽다 해. 나는 그게 더 나아. 오지 않는 답장 기다리면서, 돌려 말한 답을 읽으면서 나 혼자 온갖 상상하는 것보다 솔직한 말이 훨씬 편해. 어제처럼 막무가내로 나가지는 않을게. 적당히 조절할 수 있어. 말할 내용을 조절하지는 못하지만, 누구에게 얘기할까 정도는 조절할 수 있어. 내가 선을 넘어서 가 나를 감당 못할까봐 그러는 건 걱정하지 마. 난 지금 정말 솔직하게, 상처받을 각오 하고 이야기하는 거야. 너도 솔직하게 대답해줘. 괜히 불쌍하다고 생각하면서 말 돌리거나 맘에 없는 말 하지 말고, 아니다 싶으면 아니라고 얘기해줘. 그게 나아. 그게 덜 힘들어. 있는 그대로 믿으면 되니까.


그럼 긴 글 이만 줄인다. 읽어준 것 만으로도 고맙다. 그리고 미안하다.

괜히 심란하게 해서 미안하지만, 좋은 하루 되길 바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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