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나쁜 날들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메다 Aug 25. 2020

지난 목요일엔 서울에 다녀왔어.

공황발작을 처음 경험했다.

지난 20일에는 서울에 올라갔어. 행정고시 2차 시험을 치러 갔지. 야, 뭔 시험을 5일이나 친다더라. 21일부터 25일까지. 정말 5일 동안이나 치는 시험이 말이나 되냐? 시험장은 한양대였어. 짐 싸들고 한양 올라가니까 과거시험 치러 가는 느낌이 나더라. 그래도 과거시험 치는 선비 체통에 양민들처럼 급하다고 뛰어다니고 덥다고 부채질을 할 수가 있냐. 따가운 햇살에 온 몸이 타들어가는 기분이었지만 부채질 한번 하지 않고 햇살을 만끽하며 숙소로 갔어. 한양대 앞에 있는데 에어비앤비로 잡았어. 위치가 참 좋더라. 시험장까지 걸어서 5분이었으니까 말 다했지. 숙소도 사진 그대로였어. 사장님도 참 친절했어. 대신 치명적인 문제가 하나 있었는데, 거기 반지하 방이더라. 그런 얘기는 안 해줬었는데.. 내 생애 처음 들어가 본 반지하 방이었어. 어우 축축하고 습하고 눅눅하고, 이상한 냄새가 확 나더라. 뭔가 불쾌한 냄새. 게다가 창문을 열어놔도 환기도 안 되고 공기 중에 먼지가 계속 떠다니는 걸 보니까 '아, 이래서 반지하는 살지 말라고 하는구나' 깨닫게 되더라. 역시 백문이 불여일견이야.


첫날은 나름 괜찮게 지냈어. 3시에 서울역에 도착해서 서울역을 헤매다가 4시에야 숙소에 도착해 짐을 풀었어. 시험은 12시에 끝나니까 난 오후에 서울 구경을 다니려고 했거든! 그래서 여행 가이드북을 하나 사러 교보문고에 갔단다. 그런데 참 난 서점이랑 안 맞는 것 같아. 서점에 서서 내가 '한 번에 다 읽지 않을' 책을 '일부만 읽어보고' 산다는 행위가 도저히 익숙해지지가 않네. 그래서 그냥 이것저것 뒤적거리다가 여행 계획도 못 짜고 가이드북도 못 고른 채로 광화문에 나왔어. 집회 금지한다고 경찰들 광화문에 좍 풀어놨던데 좀 불쌍하기도 하고 어처구니없기도 하더라. 마치 인간 허수아비를 보는 것 같았어. 허수아비를 세워놓는 것보다 의경들 세워놓는 게 더 싸게 먹히나? 의경들을 굳이 이렇게 많이 세워놔야 하는 생각에 기분이 언짢더라.


그래도 덕분에 텅 빈 광화문 광장을 볼 수 있었어. 전에 두 번 올라왔을 때는 모두 시위하는 군중들로 가득 찼었거든. 광화문 광장 정말 넓더라. 왜 광장廣場이라는 한자를 쓰는지 한 번에 확 왔어! 광장 거의 중앙에서 하늘을 딱 올려다보는데 구름이 참 예뻤어. 저 멀리서 은은하게 노을이 지는데 구름이 뭉게뭉게 뭉쳐서 흘러가는 모습이 마치 구름바다를 보는 듯했어. 매트리스 솜만 빼놓은 것 같기도 하더라. 정말 빠져들고 싶은 하늘이야. 이렇게 예쁜데 봐주는 사람이 나 하나밖에 없다는 생각에 하늘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슬프기도 했어. 정말 달콤 쌉싸름한 하늘이었다.

친구들은 솜사탕 같다던 구름. 내게는 바다처럼 보였다. 빠져들어서 영영 안식에 잠기고 싶은...


다음날도 별 일은 없었어. 열심히 시험은 치고 나왔는데 정말 아무것도 모르겠더라. 남들은 10페이지짜리 답안지를 꽉꽉 채워 쓰는데 난 4월부터는 우울증을 핑계 삼아 제대로 공부도 안 했으니 답을 쓸 수가 있나. 아는 대로 3번 문제만 꾸역꾸역 내 마음대로 쓰고 나왔어. 점심은 한양대 앞 맛집이라는 우동을 먹고 친구를 만나러 나섰어. 사실 이 친구는 1차 시험에 떨어졌었거든. 그래서 내가 괜히 놀리러 가는 건 아닌가, 친구가 나를 고깝게 보진 않을까 굉장히 두려웠어. 사실 만나서 이야기하면서도 계속 그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어. 그래도 만나니까 편하더라. 고등학생 때 그렇게 친한 친구였다고는 생각 안 하는데, 참 편했어. 요 근래에 그렇게 즐겁게 웃어본 적이 언제였나 싶더라. 사소한 거 하나하나가 정말 재미있었어. 하지만 숙소는 최악이었고, 중간에 또 내 머릿속을 헤집어놓는 사건이 일어나서 머리가 복잡했어. 너무 우울하고 나 자신이 미워서 미칠 것 같았지. 커터칼을 안 가져와서 다행이지 있었으면 또 손목을 그었을 거야. 무슨 일인지 궁금하면 따로 물어보렴. 이야기해줄게. 사실 별 일은 아니었어.


셋째 날이 고비였어. 어젯밤의 그 자기혐오와 우울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했었거든. 시험도 별로 눈에 안 들어오더라. 사실 아는 것도 거의 없었고, 그래서 이번에도 문제 세 개 중에 하나만 겨우 썼어. 시간은 남아도는데 할 일은 없으니 심심해 죽겠더라. 그래서 문제지 뒷면에 오늘 뭐 할지 계획이나 써보기로 했지. 그런데 쓰다 보니까. 정말 관련 없는 이야기인데.. 갑자기 내게 편지를 쓰고 싶어 지더라. 내가 지금 어떤 상태인지, 그리고 뭘 원하는지. 무슨 말을 듣고 싶은지. 정말 신이라도 들린 것 마냥 일필휘지로 써 내려갔어. 그러면서 울었다. 소리 내면서 펑펑 울지는 않았지만 쓰다 보니까 눈물이 나더라고. 그 눈물은 자기 연민의 눈물이었을까? 아니면 너무 힘들어서 난 눈물이었을까? 아니면 이제는 그래도 내 상태를 보다 정확히 안다는 사실에 기뻐서 흘린 눈물이었을까. 난 아직도 잘 모르겠어. 펜을 열심히 움직이다가 갑자기 멈추고 한 오분쯤 가만히 있고, 그러다 눈물을 흘리고. 다시 눈물을 닦으며 펜을 움직이는 나를 보고 감독관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갑자기 궁금해지네.


시험을 끝내고 밖으로 나오니 비가 뚝뚝 떨어지더라. 한양대 앞에서 점심을 사 먹고 또 방에 들어갔어. 그 축축하고 눅눅한 곳에 계속 있다가는 돌아버릴 것 같아서 다시 짐을 챙기고 밖으로 나왔지. 비가 와서 멀리 가지는 못하겠는데 또 실내 시설은 코로나 때문에 다 휴관이라서 갈 곳이 없더라. 사실 내가 가고 싶은 곳은 국립중앙박물관과 종로 일대 조선시대 유적들, 그리고 마포대교였거든. 앞은 휴관이고 뒤는 비 때문에 가지를 못하겠었어. 카페라도 들어갈까 했지만 서울까지 와서 흔하디 흔한 카페에 들어가서 시간을 보낸다고? 하는 생각에 들어가지도 못하겠고.. 아, 정말 미칠 것 같더라. 프랜차이즈는 안돼! 흔한 곳은 안돼! 반드시 서울만의 특색 있는 무언가를 보고, 먹고, 즐기고 가야 해!라는 압박감이 내 모든 걸 지배했어. 친구들도 그런 의도는 아니었지만 비슷한 말을 하기도 했고. 그런데 아... 뭔가 견디기 힘들더라.


답답하고 우울한 기운이 내 몸을 휘감았어. 이리저리 헤매다가 왕십리역 비트플렉스의 한 카페에 자리를 잡았는데 거기가 3층이었거든. 바깥에 테라스처럼 테이블이 있어서 밖에 나갈 수가 있었어. 거기 앉아서 왕십리 광장을 보며 든 생각이 '아, 여긴 별로 안 높아서 떨어져도 안 죽겠지.'였어. 뭐 평소에도 웬만한 모든 것들에서 죽음을 떠올리긴 해. TV에서, 산책로의 나무에서, 식물에게 물을 주며, 아침에 일어나며 항상 죽음을 떠올리지. 너무나도 일상적이고 자연스럽게. 마포대교에 가고 싶은 이유도 단순히 자살명소라서였으니까. 그런데 그날 든 생각은 너무나 음침하고 무서운 것이었어. 정말 이대로 있으면 내가 나를 통제하지 못해서 죽어버릴 거라는 두려움이 들었어.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공황이 오더라고. 사실 난 공황이라고까지 할 정도는 아니지만 심장이 굉장히 빠르게 뛰고 숨이 빠르게 내쉬어지지. 친구에게 전화해서 30분쯤 이야기를 했는데 막 가라앉지는 않더라. 그래서 울먹이면서 엄마에게 전화를 했지. 나 서울 싫다고, 시험 포기하고 부산 내려가고 싶다고. 엄마는 이유도 묻지 않고 내려오라고 하더라. 참 고마웠어.


도망치듯 떠난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직접 체험해봤어. 짐 챙기고 지하철 타고 서울역 도착해서 ktx에 타기까지 한 시간이 채 안 걸렸어. 평소에는 그 자리 떠나서 조금 걷다 보면 다시 숨이 골라지던데, 도저히 그러지가 않더라. ktx 타고 광명역에 도착하기 전까진 계속 사실상 패닉 상태였어. 정말 죽는 줄 알았단다. 지금 와서 다시 생각해보면 서울에서 '뭔가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압박감과 어딜 가든 처음 보는 건물들, 그리고 계속해서 신경 써야 하는 대중교통이 내게 큰 스트레스였나 봐. 부산에서는 그런 생각도 안 들고 길 잃을 일도 없을뿐더러 역을 착각해 잘못 내리거나 버스를 잘못 타도 그냥 되돌아가면 그만이거든. 서울이라고 크게 다를 건 없는데 그때의 나는 그렇게 받아들이진 않았나 봐. 나 자신이 많이 힘들고 예민했는가 싶다. 마포대교도 꼭 가보고 싶었는데, 솔직히 뛰어내릴까 봐 무서워서 못 갔어. 어차피 요새는 마포대교 cctv 24시간 돌아가고 빠지면 바로 경찰 떠서 구조한다고 하긴 하던데, 한번 시도했다가 실패하면 내가 정말 죽고 싶을 때 그 기억이 떠올라서 못 죽을까 봐. 동시에 정말로 내가 떨어져 죽어버릴까 봐 두려웠어. 참 인간이 양면적이고 신기해. 그지?


부산역 도착해서 부산 지하철 타니까 딱 기분이 나아지더라. 정말 집에 온 기분이었어. 1호선 문이 열리고 그 익숙한 지하철 차량에 탑승하니까 또 눈물이 막 나더라. 주변 사람들은 무슨 미친놈인가 했겠지. 그래도 좋았어. '아, 드디어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거든.


지금까지가 내 서울 여행 이야기야. 읽어줘서 고맙다. 아래는 내가 시험 치면서 내게 썼던 편지야. 사실 내게 쓰는 편지이기도 하지만 사실 네가 봐줬으면 하는 편지이기도 해. 까만 건 내가 하고 싶은 말, 빨간 건 내가 듣고 싶은 말이야. 읽어줘서 고마워. 내 곁에 있어줘서 고마워. 사실 네가 영원히 내 곁에 있으리라고 생각하지는 않아. 그렇기 때문에 마지막 순간에 후회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할게. 다시 한번 정말 고맙다. 내게 친구라 부를 사람이 돼 줘서 고맙다.



내가 내게 쓴 편지. 이런 내용들을 친구들에게 말해야 할지, 혹은 내 스스로 쓰고 끝내야 할지 아직 잘 모르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는 이런 사람이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