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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메다 Oct 18. 2020

나 정신과 가야하나?

책 <어쩐지 도망치고 싶더라니>, 뇌부자들

“젊은 정신과 의사들의
솔직하고 은밀하고 자상한
정신 건강과 마음 이야기,
<뇌부자들>입니다.

오늘의 책, <어쩐지 도망치고 싶더라니>


뇌부자들

‘의존성 성격장애’, 내가 <뇌부자들>을 만날 수 있었던 행운의 단어다. 심리상담 3, 4주 차쯤에 나는 나무위키에서 정신과 정보를 검색했었다. 파란 글씨를 누르고 누르다 보니 ‘의존성 성격장애’ 문서에 다다랐다. ‘나는 의존성 성격장애다!’하는 확신으로 가득 차서 유튜브에 정신과 전문의 영상을 검색했다. 거기서 나는 <뇌부자들>을 알았다.


<뇌부자들>은 연세대 의대 출신, 30대 정신과 전문의들이 진행하는 팟캐스트와 유튜브다. 유튜브는 네 명, 팟캐스트는 하나가 더 붙어 다섯 명이 멤버다. 다섯은 나이는 서로 다르지만, 연세대 의대를 같은 해에 졸업한 동기이다. 서로 이야기하는 걸 듣고 있으면 전공의 시절의 그들은 분명 ‘슬기로운 의사생활’을 찍었으리라 생각하게 된다.


자기네 말로는 수련이 끝나고 흩어져서 만날 일이 없다 보니, 구실 만들어 술이나 먹으려고 방송을 시작했다고 한다. 하지만 정말 열심히 방송 준비를 하고, 때때로 마음만큼 방송이 안 풀린다는 이야기를 하는 걸로 보아 그냥 유머에 불과한 것 같다. 메일로 오는 모든 사연에 하나하나 답장을 해 주는데, 주말에 답장 네다섯 편을 쓰면 하루가 다 간다고 하니 정말 지극정성이다.     


<뇌부자들> 팟캐스트는 다양한 정신과 질환이나 정보를 재미있게 소개(하려고 노력)한다. 실제 사연을 받아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사연 없이 정신질환이나 관련 이슈를 주제로 삼아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요즘은 영화나 소설, 드라마 등장인물의 심리나 병리를 분석하기도 한다. 사연을 이야기할 때는 "정말 힘드셨겠어요. 정말 많이 노력하고 계세요." 하는 말이 빠지지 않는다. 정말 자상하다. 내가 사연자라면 위로받는 기분에 눈물이 왈칵 터져 나올 것 같다. 그리고 굉장히 자세하고 솔직하다. 방송 중간중간에 자기들이 만난 환자들 이야기뿐만 아니라, 사람 ‘뇌부자들’의 이야기도 있는 그대로 털어놓는다. '자기' 이야기들이라 믿음이 안 갈 수가 없다.

    



<어쩐지 도망치고 싶더라니>

<어쩐지 도망치고 싶더라니>는 팟캐스트 <뇌부자들>의 산문판이다. 그리고 여타 정신과나 심리학 서적과는 매우 다르다. 여러 가지 문제로 괴로워하는 사연자(또는 사연자가 특정되지 않은 일반적인 증상)와 이를 분석하고 설명하는 의사라는 포맷은 동일하다. 차이점은 구성이다. 다른 책들은 서술자(정신과 전문의나 심리상담사, 심리학자 등)가 전지전능한 위치에 서서 “A 같은 증상은 B로 설명할 수 있다. B의 원인은 b이다. B를 가진 사람은 C처럼 행동해야 한다.”라며 우리에게 가르침을 준다. 교양서이고 설명서인 셈이다. 하지만 자칭 “공전의 히트를 친, 교보문고 평가도 좋은 한때의 베스트셀러” <어쩐지 도망치고 싶더라니>는 소설 형식을 취한다. 병원 진료실을 그대로 종이에 옮겨 놓았다.


1인칭 주인공인 ‘나’는 정신과 전문의이다. ‘나’는 병원을 찾아온 환자(=내담자)의 이야기를 들으며 내담자가 어떤 문제를 갖고 있는지 분석한다. 진단에 필요한 정보를 얻으려고 먼저 질문도 하고, 때로는 내담자와 밀당도 한다. ‘나’는 언행이나 생각 하나하나에 바로 이름을 붙이지 않는다. ‘항상 불안해하고 대인관계를 회피하는 걸로 보아 회피성 성격이 아닐까?’하며 내담자의 진술을 종합해 병리를 추측한다. 하지만 ‘나’가 정신과 전문의라고 해서 늘 정답을 맞히지는 못한다. ‘자기애성 성격’인 내담자를 ‘회피성 성격’으로 잘못 진단하기도 하고, 때로는 과한 의욕으로 인해 내담자에게 상처를 주기도 한다. 모든 내담자가 증상을 완전히 털어내어 웃으면서 이야기가 끝나지도 않는다. 이 책은 총 다섯 장으로 돼있다. 네 편의 이야기에는 드디어 내담자가 자기 문제를 인식해 변화를 시작하는 단계에서 막을 내린다. 나머지 한 편에서는 ‘나’의 실수 때문에 내담자가 스스로 치료를 중단하는 배드 엔딩이 나오기도 한다.


<어쩐지 도망치고 싶더라니>는 정신 질환에 고통받고 있지만 정신과에 갈 용기가 없는 이들에게 정답을 알려주지 않는다. ‘이런 문제가 있다면 저리저리 하세요~’하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냥 장면을 보여주며 질문을 던질 뿐이다. “당신도 이런 행동을 하고 있나요? 그렇다면 나는 왜 이런 행동을 하는지 한 번만 생각해 볼래요?”하고 말이다. 의사의 일방적 가르침이 아니라 두 인간의 상호작용이 작품 내에서 계속 드러난다. 의사도 완전무결한 존재가 아니기에 정답을 내려주지는 않는다. 아니, 내릴 수 없다.


그래서 의사는 진료실에서 내담자에게 계속해서 질문을 던진다. 어떤 행동을 하는지, 언제 그런 행동이 나오는지, 그리고 행동을 하기 전이나 후에 어떤 감정이 드는지 묻는다. 책을 읽는 독자도 자연스럽게 질문을 따라간다. 스스로 생각해보고 대답한다. 그럼으로써 내 문제가 뭔지,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 조금이나마 알아차릴 수 있다. 최소한 궁금증을 갖고 내게 관심을 가지게 된다.



도망치기만 하는 우리

방어기제는 의식이 관장하는 영역이 아니라 무의식이 사용하는 도구이다. 우리는 불안이나 걱정, 두려움을 만나면 방어기제라는 도구를 사용해 맞선다. ‘승화’나 ‘유머’ 같은 성숙한 방어기제도 있지만 대다수 방어기제는 결국 도망치는 것의 변형이다. 당장의 문제 상황을 해소하지 못하고 억누르거나, 무시하거나 또는 애써 무덤덤하게 넘긴다. 정말 말 그대로 ‘회피’할 수도 있고, 감정을 떠올리기 벅차서 무미건조하게 사실만으로 상황을 설명, 이해하려고 하는 ‘지식화’를 쓸 수도 있다. 사실 이길 수 없는 상대를 만났을 때는 도망치는 게 제일이다. 하지만 도망쳐서는 문제를 해결할 수도 없다.


수풀에 매복해 있는 사자를 발견한 임팔라는 부리나케 도망친다. 이를 눈치챈 사자는 뒤늦게 임팔라를 쫓아가지만 10여분에 걸친 추격 끝에 임팔라를 놓친다. 야생에서는 이걸로 끝이다. 그 사자를 다시 만날 일은 없다. 하지만 우리는 다르다. 스트레스를 주는 상황이나 인물은 언제 어디에나 항상 있다. 직장 상사는 오늘 보고 끝이 아니라, 내일도 모레도 만날 사람이다. 어린 시절 왕따를 당했던 경험은 이미 끝난 일이다. 하지만 사회생활을 하다가 마주하는 여러 상황에서 어린 시절의 악몽은 고스란히 되살아나 나를 괴롭힌다. 그저 도망만 친다면 감정은 결코 해소되지 않는다. 풀리지 못한 감정은 계속해서 내 몸과 마음을 쥐어짜 낸다. 누군가의 말처럼 도망쳐서 도착한 곳에 천국은 없다. 죽지 못해 살아가는 오늘이 있을 뿐이다.


“저기 베트남 전쟁이나 아프간 전쟁 파병 다녀온 군인들 보세요. 이미 전쟁은 끝났는데 그 사람들은 여전히 전쟁 중인 것처럼 고통스러워하잖아요? 보통 우리는 그 사람들이 고통스럽기 때문에 바뀌고 싶어 한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사람은 사실 그렇지 않거든요. 우리에게도 관성이 있어요. 그래서 고통스럽지만 그럼에도 현 상황에 그대로 머물러 있는 경우가 많아요. 왜냐하면 그게 익숙하니까요. 트라우마니, PTSD니 하지만 다 쓸데없이 어려운 말이에요. 그냥 그 사람 마음에서는 그게(전쟁이) 안 끝난 거예요. 그게 다예요.”


내 주치의 선생님이 해준 말이다. 우리는 여러 가지 문제 때문에 고통스러워한다. 하지만 ‘왜’ 내가 그렇게 행동하는지는 들여다보지 않는다. 내 마음을 돌아보고, 실천하고, 결국 변화하는 것은 현재의 고통보다 더 무섭고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계속해서 도망친다. ‘난 왜 이렇게 게으를까? 오늘도 어려운 과목은 손도 못 대보고 게임만 주야장천 했어. 정말 난 구제불능이야.’ 해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아마 내일도, 또는 모레도 중요한 과목을 공부할 시간이 되면 게임으로 도망칠 가능성이 높다. 여기서의 ‘왜’는 정말 내 행동의 이유를 물어보는 ‘왜’가 아니라 비난하는 ‘왜’이다. 물음의 탈을 쓴 자책이고 비난이다.


정말 필요한 말은 ‘왜 어려운 과목을 시작하려고 하면 결국 제대로 하지 못하고 게임을 하는 걸까? 그때 나는 어떤 생각이나 감정이 들었을까?’하는 질문이다. 괴롭고 힘들지만 나 자신에게 관심을 기울여야 비로소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보인다. 마음에서 아직 끝나지 않은 일을 찾아내서 스스로 위로하고 해소해야 한다. 그래야 과거에 머무르지 않고 현재를 살 수 있다. 두렵다고 도망치지 말고 내 솔직한 감정과 마주해야 한다. 그래야 변화가 일어난다. 아는 것이 모든 것의 시작이다. 의식적으로 노력하고 살펴야 한다. 방어기제는 내가 의식할 수 없는 영역이기 때문에 찬찬히 그 내용과 이유를 살펴봐야만 한다. 언제, 어떻게, 왜를 나 자신에게 물어봐야 한다.     



"어도싶"의 역할은 어디까지일까

다섯 내담자 이야기가 모두 내 이야기 같아서 재미있게 읽었다. 의사는 이런 생각을 하면서 나를 보는구나 하고 신기해하기도 했다. 의사의 시선을 따라 내 행동을 분석하는 것도 재미있었다. 하지만 <뇌부자들>은 결코 우리에게 정답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대신 ‘내가 왜 이러는지’에 대한 단서를 제공한다. 정신과 전문의가 쓴 책답게 중간에 전문 지식을 전달하는 내용도 숨어 있다. 하지만 이 역시도 ‘왜’라는 질문의 단초에 불과하다. 아직 병원이나 상담소에 가지는 않았지만 내가 뭔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나는 왜 그랬을까?’ 하고 스스로 생각해볼 수 있다. 더 이상 도망치지 않고 비로소 문제를 마주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미 전문가의 도움을 받고 있는 사람들은 늘 질문을 던져주던 상담사나 의사 대신에 스스로가 ‘나는 왜 그랬을까?’ 하고 질문을 던질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책을 읽으며 스스로를 상담하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결론은 '나는 왜 이럴까?' 하는 질문이다. 정답은 없다.


사실 책의 결말도 모두 이런 식이다. 문제를 완벽히 해소함으로써 웃으며 작별하지 않는다. 내담자는 여러 시행착오를 겪으며 드디어 자기 마음을 들여다보기 시작한다. 그리고 거기에서 이야기가 끝이 난다. 치료가 잘 진행돼서 내담자가 ‘나’를 더 이상 만나지 않을지, 아니면 지지부진한 치료에 희망을 잃고 ‘나’를 찾아오지 않을지는 알 수 없다. 중요한 건 내담자들이 자기 마음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안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지만, 아는 것은 분명 문제 해결의 시작이다.


이 책은 이 정도의 역할을 하며 끝이 난다. 내 마음에 관심을 가져보도록 유도하지만 결코 답은 주지 않는다. 사실 사람은 다 다르기 때문에 똑같은 병이라 하더라도 그 원인은 모두 다르다. 증상도 아마 세세하게는 다 다를 것이다. 나 스스로 자가진단을 내리고 내게 도장을 쾅 찍는 것만큼이나 위험한 일도 없다. 그렇기에 정확한 답을 얻기 위해서는 병원이나 상담소를 찾아가야 한다. 여담으로 처음에 '의존성'으로 자가진단 내렸던 내 성격은 '강박성'이나 '회피성'같다.


대신 책은 병원이나 상담소에 찾아갈 용기를 북돋아준다. 내게 ‘왜 이렇게 행동했는지’ 나름의 깨달음을 준다. 그리고 내가 가진 문제가 나만의 문제는 아니구나! 하는 안도감과, 이런 일로 병원에 가도 이상하지 않구나 하는 고민을 줄여준다. 사실 나도 내가 겨우 이런 일로 병원에 가야 할까? 의사가 날 이상하게 보지 않을까? 하는 고민을 굉장히 많이 했다. 그리고 사실 지금도 그런 생각을 매우 자주 한다. 병원 가기 전날부터는 십 분에 한번 꼴로 이런 생각을 한다. 그럼에도 내가 계속해서 병원에 다니고 상담소에 가는 이유는, 조금씩이나마 나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지금 항우울제와 항불안제를 복용하고 있다. 주 1회 50분의 심리상담도 받고 있다. 하지만 "정말 좋아졌다"는 느낌은 받을 수 없다. 어떤 날은 치료를 받기 전보다 훨씬 더 힘들다. 완전히 무너져 내려서 다시 자해를 하는 하루도 있다. 그러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고마운 이들에게 모질게 굴기도 한다. '내가 공부한다고 해서 이 시험에 붙을 수 있을까?', '이 강의 돈이 얼만데... 다 들어야 하는데...', '남들은 다 열심히 자기 미래를 준비하는데, 나는 왜 이럴까?' 하는 생각도 굉장히 자주 한다. 강박성 성향도 있어서 하루 계획이 조금이라도 틀어지는 날엔 아무것도 못한 채로 멍하니 자책만 하고 있는 날도 잦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계속 치료를 받는다. 지금 이만큼이나 나아졌으니까, 더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계속해서 나는 병원에 간다. 가끔이지만 즐겁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하고 싶은 일이 생기기도 한다. 부정적 사고는 그대로지만 자살사고는 많이 줄었다. 자해 빈도도 많이 줄었고, 예전에는 칼이나 자를 썼지만 이제는 흉터가 남지 않는 방식으로 한다. 주변 사람들과의 연락도 잦아졌다. 체감하기는 힘들지만 사실을 종합해보면 난 분명 나아지고 있다. 때로는 넘어질 수도 있고 길을 잘못 들어 헤맬 수도 있다. 왔던 길을 되돌아갈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괴로움의 터널을 빠져나가는 걸 포기해서는 안 된다. 저 멀리에는 분명 빛이 있고, 우리는 느리게나마 빛에 가까워지고 있다. 그 사실은 정말 분명하다.


<어쩐지 도망치고 싶더라니>는 페이지도 적고 판형도 작아서 두세 시간 정도면 금방 읽어낼 수 있는 책이다. 게다가 자전적 소설이라 그런지 정말 재미있게 읽힌다. 전지적 작가가 아니라 1인칭 주인공 시점이기 때문에 의사의 시선을 따라 내담자의 상황을 추측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그렇기에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었으면 한다. 사실 책은 지식을 얻기보다는 재미있자고 읽는 것 아닌가? 그것만으로도 이 책을 읽기는 충분하다. 다른 것은 얻어가지 못할지라도 적어도 재미 하나는 얻어갈 것이다. 그랬으면 좋겠다.


책은 읽고 싶지만 소위 고전이니 명작이니 하는 책들은 너무 어려워서 읽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읽을 시간이 없어 짧은 책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분명 불편함이 있거나 괴로운데 무슨 이유인지 모르는 사람들에게, 내 심리적 문제가 있음을 알고 있지만 병원이나 상담소에 가는 것이 두려운 사람들에게, 병원에서 의사와의 상담은 진행하지 않고 약만 타가는 사람들에게, 열심히 병원이나 상담소에 다니지만 내가 전혀 나아지는 기미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그리고 오늘 하루를 힘겹게 버텨낸 모든 사람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그리고 정말 어려운 말이지만, 너무너무 어려운 말이지만, 자책하지는 말자. 무슨 일이 있었고 당신이 무슨 행동을 했든지 간에,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자, 이제 이야기를 들으러 떠날 시간입니다.

정신과 의사들이 보여주는 정신과의 속살,
어디서도 듣지 못한 정신과의 속사정 이야기

<뇌부자들>
지금 바로 시작합니다!


-책 9쪽(서문), 그리고 팟캐스트 <뇌부자들-정비소(정신과의 비밀을 소개합니다)> 인트로 멘트



잘 쓴 글은 문장이 매끄럽고 아름다운 글이 아니라 진심이 담긴 글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그런 글을 쓰고 싶다. 오래되지는 않았지만 늘 하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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