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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메다 Jun 22. 2020

누구나 행복해질 자격이 있으므로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1,2>, 백세희

책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1,2>, 백세희

누구나 행복해질 자격이 있으므로


   나는 얼마 전부터 학교 상담센터에서 심리적인 문제로 상담을 받고 있다. 많은 이별이 사소한 다툼에서 시작되듯이 내가 상담을 받기로 한 계기도 작은 사건이다. 하지만 사소하지는 않다. 싸움을 계기로 고심 끝에 연인에게 이별을 통보하는 이유는 대개 그 싸움이 아니라 지금까지의 모든 것이 쌓인 결과이듯, 내가 어찌어찌 봉합해오던 수많은 문제가 작은 계기로 터져 나왔을 뿐이다. 내가 정서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생각은 전부터 하고 있었다. 하지만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치료를 받아야겠다는 의지는 없었다. 감기에 빗대자면, 나는 재채기를 자주 하고 가끔 열도 났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었다. 그러다가 우연찮은 계기로 한 번 쓰러지면서 병원에 가는 느낌이다. 문제가 더 커지기 전에 병원에 갈 용기가 생겨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상담을 받다 보니 자연스레 관심이 이런 곳에 꽂힌다. 일 년 전쯤 인터넷 서점의 홍보 배너에서 이 책을 본 적은 있었지만 읽고 싶지는 않았다. ‘치료를 다 받은 것도 아닌 사람의 상담기를 읽어서 내가 얻을 게 있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내가 상담을 받기 시작하니까 ‘남들은 무슨 문제로 상담을 받을까?’, ‘내가 상담을 잘 받는 걸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눈길도 주지 않던 베스트셀러에 자연스레 손이 갔다. 책이 나를 빨아들인다는 말을 실감했다.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도 모르고 순식간에 다 읽어냈다.    



   이 책은 기분부전장애와 불안장애를 앓고 있는 사람의 정신과 상담기록이다. 백세희라는 인간의 일상과 우울한 생각, 의사의 치료가 이 책의 전부다. 별거 없는 이야기다. 그저 누군가의 일상적인 어둠 속을 가감 없이 내보일 뿐이다. 저자는 어디 특출나게 다른 사람이 아니다. 사소한 일에 기뻐하고, 슬퍼하고,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어 하는, 우리 주변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흔한 사람이다. 다만 조금 더 우울하고 조금 더 자책이 심할 뿐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내 모습을 많이 봤다. 분명 이 책은 백세희라는 인물의 어둠을 써 놓은 책이지만, 오히려 어둠 속에서 나를 발견했다. 인상 깊은 구절 하나를 소개해본다.


애인은 아직 오지 않은, (그리고 영원히 오지 않을 수도 있는) 내 빛나는 미래에 대해 끊임없이 속삭여주었다. - 2권 79p


   나는 이 대목이 그렇게 슬플 수가 없었다. 저자가 너무 안쓰럽다. 괄호 속의 한 마디가 내 가슴을 후벼파는 듯했다. 물론 찬란한 미래가 오지 않을 수는 있다. 이건 현실의 영역이고, 내 미래가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런데 그 사실을 머리로 이해하는 것과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전혀 다른 얘기다. 나는 저자가 자신의 밝은 미래를 믿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세상에 대한 비관이, 자기를 믿지 못해 불안해하는 마음이 저 한 구절에 다 묻어나는 듯하다. 너무 가슴 아프고 안쓰럽다. 저자를 말없이 꼭 안아주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물론 저자는 싫어하겠지만.) 어떤 미래가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렇기에 누구나 자신의 밝은 미래를 그려볼 수 있지 않나. 행복하고, 사랑받고 싶어 할 자격이 있지 않나. 하지만 그런 상상조차 하지 못하고 주저하는 저자의 모습이 너무나도 가련하다.     



   마음껏 저자를 불쌍해하다가 문득 내 모습을 보았다. 주변에서 아무리 내 칭찬을 하고, 좋은 말을 해주고, 밝은 미래를 빌어줘도 난 항상 그 얘기들을 부정했다. 겸양을 떠느라 한 말이 아니다. 내게 그런 상상을 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 나라는 존재가 얼마나 비루한지 알기 때문에 친구들이 말하는 것을 내가 실현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겉으로야 자신감 넘치는 척하지만 나는 전혀 나를 믿지 않는다.


   ‘누군가가 나를 봤을 때 나도 저렇게 보일까?’ 하는 의문도 들었다. 적어도 내가 이메다라는 사람을 마주했다면, 나는 이메다가 너무나 안쓰럽고 불쌍해 보였으리라. 지금 내가 백세희를 보고 그렇게 느끼고 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내가 이메다를 보고 불쌍해하리라 생각하는 건 그저 생각일 뿐이다. 느낌은 그렇지 않다. 여전히, 난 내가 불쌍한 사람인지 잘 모르겠다. 내가 본 제3자 이메다의 모습은 너무나도 가련하지만, 내가 본 나 자신은 전혀 안타깝지 않다. 조금 한심하다는 느낌만 든다. 내가 제3자를 보고 불쌍하다고 생각하는 건, 그 사람의 사정을 다 모르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한다. 제3자 이메다가 불쌍하다고 해서 정말 이메다가 불쌍한 사람인 걸까? 혼란스럽다. 다만 이런 고민을 하는 나 자신이 안쓰럽다는 생각은 조금 든다. 느낌 말고 생각.


   이 부분이 아니더라도 나는 계속해서 의사 선생님에게서, 저자에게서 내 모습들을 더 발견했다. 선생님의 말에서 C의 지혜로움과 내 어리석음을 발견했고(2권 87p), 문제 해결을 위해 발버둥 치는 저자의 모습에서 나를 보았다(2권 115p). 지나가듯 한 이야기에서 나를 응원해주던 친구 21의 말도 떠올랐다(2권 119p). 백세희의 이야기에서 계속 내가 보였다. 이 책은 백세희의 이야기이지만 동시에 나의 이야기이기도 했다.     




   보통 책 선전에는 유명인의 추천사가 제격이다. 책 뒤표지나 띠지에 무슨 상 수상! 유명한 누구의 추천사! 몇 부가 팔린 대작! 같은 말 따위가 실려 책의 장점을 예찬하곤 한다. 이 책 뒤표지에 실린 추천사는 다른 누구도 아닌 작가 본인의 추천사다. 이 말처럼 이 책을 잘 설명해줄 수 있는 글이 있나 싶을 정도로 공감이 간다. 내가 이 책을 권하는 이유는 작가의 말로 갈음해도 충분하다. 이제 작가의 말을 옮겨 적으며 이번 독후감을 마치려 한다.


   잘 쓴 글은 문장이 매끄럽고 아름다운 글이 아니라 진심이 담긴 글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그런 글을 쓰고 싶다. 오래되지는 않았지만 늘 하는 생각이다.   

  

우울감을 완전히 극복하고 싶은 이들에게 이 책은 그리 좋은 지침서가 아닐지도 모른다. 그저 아무것도 아닌 한 사람의 마음을 속속들이 보여줌으로써 다른 사람들이 자신도 몰랐던 상처를 다독일 수 있게 된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나는 이제 내가 싫지 않다. 내게도 빛나는 부분이 있다. 부족한 나를 받아들이기보다는 나 자신을 부정적으로 바라보지 않기로 했다. 내 세계의 황량한 부분에서만 뒹굴고 있었다면, 이젠 푸르고 빛나는 곳에 머무는 연습을 할 것이다. 할 수 있다고 믿는다. - 2권 뒤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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