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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메다 Jun 27. 2020

대나무도 흔들린다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혜민

대나무도 바람에 흔들린다더라


‘죽고 싶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해봤을 생각이라 생각한다. 내게 죽고 싶다는 생각은 그다지 특별한 생각은 아니다. 하지만 근래 하는 ‘죽고 싶다’는 생각은 전과 조금 다르다. 요새는 꽤 절박하다. 그 어느 때보다 삶이 공허하다. 내가 더 살아갈 이유도 희망도 잘 모르겠다. 하루에도 여러 번, 혼자 있다 보면 죽음에 대한 생각이 아지랑이처럼 스멀스멀 올라온다. 얼마 전에는 칼로 손목을 그으려 해봤다. 무서워서 슥슥 힘 안주고 긋다가 그만뒀다. 대신 자로 손목을 깊게 내리찔렀더니 부어올라서 손목을 그은 듯이 보였다. 기분이 묘했다.


모순적이게도 죽고 싶지만 그만큼 살고 싶다. 죽음을 떠올릴수록 삶에 대한 갈망도 강해지는 듯하다. 갈망이 선명해질수록 어떻게 살아야 행복할지, 어떤 태도로 삶을 대해야 할지 하는 고민도 커진다. 내 안에서는 답이 나오지 않았다. 다른 사람은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는지 궁금해졌다. 문득 엄마가 사놓은 혜민 스님의 이 책이 눈에 들어왔다. 스님의 책은 읽어본 적 없지만, 유튜브 알고리듬 덕에 쌩판 초면은 아니었다. 읽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절에 가면 왠지 모르게 마음이 편해진다. 나뭇잎이 바람에 흔들리며 부르는 노랫소리, 잡념을 다 씻어내주는 듯한 향 냄새, 언제 찾아가도 변치 않고 진중하게 제 자리를 지키고 서있는 듯한 전각들. 마치 속세에서 벗어나 다른 세계에 온 듯한 기분이 든다. 그래서 힘들거나 고민이 많아질 때는 동네 뒷산 절에 올라가고는 했다. 혼란스럽고 어찌 해야할지 모르는 지금, 혜민 스님의 글이 내게 절과 같은 존재가 되어 달라고 빌며 이 책을 읽었다. 그리고 이 책을 읽음으로써 나도 누군가에게 절과 같은 존재가 되고 싶었다.     



혜민 스님은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휴식, 관계, 미래, 인생, 사랑, 수행, 열정, 종교라는 8가지 주제를 돌아보라고 얘기한다. 각 챕터 첫 부분에는 대여섯 페이지 남짓한 짤막한 스님의 이야기가 우리를 반긴다. 그 다음부터는 정말 짧은, 두 문장은 될까 싶을 정도의 짧은 말들이 우리에게 위로와 가르침을 준다. 흔히 말하는 SNS 감성 글귀를 떠올리면 된다. 스님의 인생 역정을 녹여낸 수필을 생각한 사람이라면 책을 보고 실망할지도 모르겠다.


따뜻하고 좋은 말이 많다. 그렇지, 하며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말도 있고 아! 하고 깨달음을 주는 대목도 있다. 때로는 지친 내 마음을 포근하게 안아주기도 한다. 그렇게 스님의 말을 음미하다 보니 비로소 보이는 게 있었다. 그건 바로 ‘나’였다. 현실이라는 이름의 반투명 유리 뒤에 서 있던 내가 보였다. 유리 너머의 내 형체는 어렴풋이 보였기에 나는 나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유리 너머에 실재하는 나는 내 생각과는 많이 달랐다.


스님은 계속해서 가장 중요한 건 ‘나’라고 이야기한다. 이타심도, 배려도, 아낌없는 사랑도, 주변과의 적절한 거리 유지도 모두 내가 좋아서 하는 행위라고 말한다. 소중한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베푸는 이유는? 그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떠올리기만 해도 내 마음이 행복해지니까. 누군가가 나를 욕해도 성내지 않고 웃으며 그를 용서하는 까닭은? 그래야 괜한 싸움을 피하고 내 마음이 편안해지니까. 모든 일을 이런 식으로 설명한다. 꽤 그럴듯하다. 곤경에 처한 사람을 돕는 이유는, 그 사람을 돕지 않으면 계속 그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려 자신이 고통스럽기에 그 고통을 덜기 위해서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누구나 행복해질 자격이 있다. 그러려면 다른 누구도 말고 나 자신에게 솔직해져야 한다. 나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 세상과 나를 비교하지 말고, 세상의 틀에 나를 맞춰서도 안 된다. 내가 정말 원하는 게 뭔지 한 번 멈춰서 진지하게 생각해 볼 시간이 필요하다. 때로는 감정의 소용돌이에 사로잡혀 고통 받을 때도 있다. 스님은 그럴 때 그냥 가만히 그 감정을 바라보라고 한다. 감정은 내가 어찌할 도리가 없다. 흙탕물을 가라앉히려 애를 쓸수록 물은 더 탁해진다. 감정도 마찬가지라서 통제하려고 하면 오히려 더 고통스러워 진다. 그냥 감정이 이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으면 그 감정은 언제 그랬냐는 듯 다른 감정으로 변해 차분히 가라앉는다. 직접 해보니 꽤나 어려웠다. 하지만 감정이란 갑자기 생겼다가 갑자기 가라앉는다는 사실은 경험적으로 안다. 감정은 신기루 같은 것이다. 이 감정을 내가 정말로 원하는지 아닌지, 감정의 소용돌이 안에서는 알 수 없다. 때로는 가만히 지켜보는 게 중요한 때도 있다. 그렇게 내가 진짜 소원을 찾아갈 수 있다.


또 하나 덧붙이자면 스님은 인생 학교라는 표현을 참 많이 사용한다. 잘 모르니까 배우기 위해 가는 곳이 학교다. 틀리거나 모르는 건 절대 잘못이 아니다. 배우러 갔기 때문에 모르는 건 당연한 일이고, 틀린 덕에 내 부족한 부분을 확인하고 더 배울 수 있기 때문에 감사한 일이다. 하지만 요즘 학교는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다. 우리는 학교에서 틀림으로써 더 성장할 수 있다는 깨달음이 아니라, 사회에서는 틀리지 않아야 한다는 현실을 배운다. 인간은 완벽할 수 없는 존재인데 사회는 완벽한 인간을 요구한다. 완벽하지 못한 개인은 사회에 의해서, 그리고 자신에 의해서 벼랑 끝으로 내몰린다.


역사를 배우다보면 유독 눈에 띄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이 있다. 뛰어나지만 이기적인 처세술로 부귀를 누린 사람들은 유독 정이 가지 않았다. 한명회보다는 박태보가 더 마음에 들었고, 이완용보다는 김상옥처럼 살고 싶었다. 팔아선 안 될 것을 팔아 일신의 영달을 이룬 이들보다, 자신이 소중히 하는 가치를 위해 목숨을 걸던 사람들의 의지가 내게 깊은 울림을 주었다. 나도 이왕 사는 인생, 내 일생에서 그치지 않고 오래도록 여운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사군자 중 대나무를 참 좋아한다. 바람 부는 대로 나부끼는 갈대보다는 곧은 대나무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부러질지언정 굽히지 않는다는 대나무의 모습만 상상했다. 조금만 흔들려도 굽어지기라도 하는 양 나를 엄하게 책망했다. 나는 대나무도 바람이 불면 흔들린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예능프로그램 <알쓸신잡 2>에서 뇌과학자 장동선은 인간의 내면을 갑각류에 빗대며 ‘사람의 내면이 성장하는 때는 가장 약해져 있는 순간’이라고 이야기했다. 어떤 시련에도 버텨낼 수 있는 단단한 껍질이 있을 때가 아니라, 죽을 것 같고 스치기만 해도 상처받을 것 같은 순간에 우리 마음은 허물을 벗고 성장한다. 지금의 나 또한 마찬가지다. 도입부에서 어렴풋이 눈치챘을 수도 있는데, 나는 지금 굉장히 약하고 여린 순간을 겪고 있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 성장할 수 있고 더 지혜로운 내가 되리라 믿는다. 내게 이런 시련을 준 모든 것에, 더 배울 수 있게 해줘서 고맙다는 마음을 가지려 한다.


사실 몇 달 전만 해도 힐링, 위로 글이 무얼 바꿀 수 있냐? 하는 생각이 있었다. 그래서 이런 식의 감성 적인 글이나 힐링 열풍을 깨나 고깝게 봤다. 그런 내가 이 책을 읽고 이리도 정성스레 독후감을 쓰고 있는 사실에 얼떨떨하기도 하다. 그만큼 힘들었나보다. (그래도 아직 싫어한다.) 이 책은 나같은 사람을 위한 책이다. 앞으로 한 발자국 나아갈 용기가 모자란 모든 이를 위한 책이다. 죽고 싶지만 그보다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마음이 더 큰 모두에게 이 책을 권한다. 너무 힘들다면 잠시 멈춰서, 그간 보지 못했던 소중한 ‘나’를 비로소 발견할 수 있기를. 책 속의 인상 깊은 구절 하나 옮기며 이번 독후감을 마치려 한다.     


잘 쓴 글은 문장이 매끄럽고 아름다운 글이 아니라 진심이 담긴 글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그런 글을 쓰고 싶다. 오래되지는 않았지만 늘 하는 생각이다.     


힘든 일이 있었나요?
슬픈 일이 있었나요?
그 일로 인해 삶이라는 학교는 분명 나에게
어떤 큰 가르침을 주려 했을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절대로 서둘지 말고 천천히 살펴봐야 해요.
- 책 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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