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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나쁜 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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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메다 Dec 14. 2020

타인의 위로가 비난으로 느껴진다면

내 마음은 내 입장에서 100% 타당하다.

나는 행정고시 준비생이다. 9급이나 7급과는 달리 5급은 인터넷 강의 시장에 프리패스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강좌를 단과로 끊어야 한다. 가격이 말도 안되게 비싸다. 보통 한 강좌가 50만원을 호가한다. 그런데 그런 강좌가 과목당 기본개념부터 실전모의고사까지 4강좌나 된다. 게다가 필수과목 4개에 선택과목 1개까지 총 5개 과목을 들어야 하니 총 20강좌를 들어야 한다. 20강좌에 개당 50만원, 1000만원에 육박하는 돈이다. 여기에 책값, 생활비(나는 집에서 공부하므로 들어가지 않지만), 독서실비 등이 들어가면 정말 어마무시한 돈이 들어간다.


일주일 전 눈물을 머금고 장학재단에서 생활비 대출을 받았다. 차마 엄마에게 이야기하기에는 너무 부담을 지워주는 것 같아서 내가 짐을 짊어매기로 했다. 150만원을 대출받고 교육학 강의 35만원과 경제학 강의 65만원을 긁었다. 100만원이라니, 이렇게 많은 돈을 한번에 써본 적은 처음이었다. 그마저도 남의 돈을! 결제하는데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혹여나 몇 년을 쏟아부으면 과연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이 찾아왔다. 하지만 뭐 어쩌겠는가, 교과서만 읽어서는 이해가 안 가는데. 강의라도 들어야지 하며 긴장한 나를 달래주었다.


책도 함께 주문했다. 강사가 정리한 기본서가 5만원, 부교재 격인 교수님들 교과서가 권당 3~4만원꼴. 책도 20만원어치를 샀다. 이 돈으로 시집이나 소설을 사는게 내 인생에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조금 해봤다. 책장으로 시선을 돌렸다. 사놓고 읽지 않은 책이 읽은 책보다 많았다. 어차피 20만원치 책을 사도 나는 5만원치밖에 안 읽을 것이다. 차라리 공부하는 책을 사면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게 되니까 오히려 이득 아니겠냐는 생각을 했다.



택배는 언제나 설렌다. 내가 좋아하는 물건이 아니라도 택배는 일단 나를 설레게 만든다. 배송날 낮에 오는 배송 안내문자를 받고 나서 내 온 정신은 현관문 밖으로 쏠린다. 혹여나 택배 기사님이 벨도 누르지 않고 상자만 툭 놓고 가버릴까 조바심을 내며 온 신경을 집중한다. 다른 소리는 들리지도 않는다. 오로지 현관 밖에서 무슨 소리만이 내 고막을 가볍게 두드린다. 박스가 바닥에 끌리는 '시시릭' 소리가 들리면 나는 바로 문을 열고 뛰쳐나간다. 하지만 내 문 앞에는 택배가 없다. 실망을 감추지 못하고 풀 죽은채로 내 자리에 돌아온다. 그러고는 다시 내 일에 집중은 하는 둥 마는 둥 하며 택배를 기다린다. 내가 무아지경에 이르른 때가 있다면 아마 택배를 기다리는 시간일테다.


그날도 그런 날이었다. 비록 받고 싶은 선물은 아니지만 어쨌든 내가 내게 주는 선물 아닌가! 기다림이 주는 즐거움을 만끽하며 황지우 시인의 "너를 기다리는 동안"을 필사하고 있었다. 내 마음을 이보다 잘 표현해줄 수 있는 시는 없었다.

기다려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애리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황지우, <너를 기다리는 동안> 중에서

많은 배달 기사님이 내 택배였다가, 택배일 것이었다가 엘리베이터 문이 닫혔다. 택배는 도착 예정시간보다 10분쯤 늦게 왔다. 택배가 도착하자 마자 나는 쏜쌀같이 뛰어나가 택배를 받아 흐뭇한 마음으로 집어들었다. 아기를 돌보듯 애지중지하며 방에 들어와 경건한 마음으로 택배 상자를 열었다. 칼이 테이프를 소리 없이 가르는 미끈한 느낌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감각이다. 이 느낌 자체를 좋아한다기보다는 설렘을 맛보는 순간이 너무나 짜릿하기 때문이리라.


행복감은 순식간에 분노로 바뀌었다. 인강 사이트에서 보낸 응원 메시지때문이었다. 

기쁜 마음으로 책을 구경하며 '표지가 예쁘다'며 감탄하고 있었는데 제일 아래에 끼인 보라색 종이 하나가 눈에 띄었다. 뭔가 해서 읽어보았더니

뒤쳐졌다 느껴, 조급해 할 거 없어요.
나 보다 앞에 뛰어가는 저 사람들도 불안하긴 마찬가지 랍니다.

라는 말이 적혀 있었다. 아마 모든 주문건에 일괄적으로 넣어주는 응원 메시지이리라. 하지만 왜인지 모르게 보자 마자 화가 팍 올라왔다. 좋았던 기분이 다 망가졌다. 왜일까? 나는 왜 화가 났을까?


인강 사이트에서는 저 문구가 수험생들에게 위로가 되리라 생각하고 넣어줬을 것이다. 내 앞에도 수많은 수험생이 저 문구를 받았지만 계속 배송되는 걸 보면 누군가 문제제기도 하지 않은 모양이다. 그럼 적어도 저 말 자체에 누군가를 비하하거나 공격하는 의도는 없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그럼 메시지가 아니라 메시지를 받아들이는 내가 글의 의도를 곡해한 것이다. 그렇게 생각했다.


검증을 위해 친구들에게 사진을 보내고 어떤 감정이 드냐고 물어봤다. 모두가 긍정이나 중립적인 답변을 내놓았다. 임용시험을 준비하는 한 친구는 큰 위안이 된다고도 했다. 악평을 하는 사람은 없었다. 분명 교재를 보낸 쪽에서 잘못한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이제 확실했다. 하지만 내가 화가 났다는 사실도 확실했다. 이건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이럴 때 내 마음을 탓해서는 안 된다. 상대가 어쨌든 간에, 내 마음은 분명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서 화를 냈으리라. 내 감정은 내 입장에서는 100% 옳다는 마음을 가진다. "네가 꼬인거야! 인성이 왜 그래?"하는 자학은 절대 하지 않겠다 다짐하고 차분히 내 마음을 들여다 보았다. 나는 두 번째 문장보다는 첫 번째 문장에 꽂혔다. "뒤쳐졌다 느껴, 조급해 할 거 없어요."라는 말이 내게는 "너, 뒤쳐졌지? 조급하지?"하고 비웃는 것처럼 읽혔다. 그래서 응원 메시지를 비난으로 받아들여 화가 났던 것이다.


나는 왜 조급해 할 필요 없다는 메시지를 비웃음으로 받아들였을까? 그건 알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나를 볼 때 '뒤쳐졌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따뜻한 위로를 차가운 비웃음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나 생각해볼 뿐이다. 내가 조급하구나 하는 생각을 하고 나니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정상적인 멘트에 오히려 화를 내는 나를 탓하기보다는 조급하고 불안한 내 마음을 달래려고 애썼다.


요즘은 이런 연습을 많이 하고 있다. 나에게 화 내지 않는 연습과 내 마음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는 연습, 내 마음을 인정하는 연습이다. 많은 사람들은 자기 자신에게 모진 채찍질을 하며 살아간다. 그 채찍질이 나쁘지는 않다. 하지만 과한 건 역시 독이다. 채찍질이 과해서 내 자신을 부정하기 시작하면 안될 것이요,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을 이유로 채찍질을 해서도 안될 것이다. 내 생각과 감정에 채찍질한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슬프게도 많은 사람들이(나를 포함해서) 그런 삶을 살고 있다.


상대방의 말은 상대방의 말일 뿐이다. 우리가 말을 곱씹고 생각하는 순간, 말은 우리의 생각대로 왜곡된다. 상대의 의도와는 다른 방향으로 변질되며, 상대의 '말'이 어느새 나의 '현실'과 '미래'가 된다. 그래서 부정적 감정이 올라올 때가 많다. 이 부정적 감정을 제어하기 위해 우리가 할 일은 간단하다. 우리는 그 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우리의 마음을 보살피면 된다. 굳이 내가 상대의 말에 마침표를 찍을 필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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