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교사 발령 직전, 나는 약을 늘렸다.

발령 전, 가장 불안했던 2월과 4월의 기록.

by 이메다

이 브런치북은 격주로 연재됩니다.

다음 연재일은 5월 26일 월요일입니다.



지금까지의 불안은, 내가 교사로서 적절한가 하는 이론적이고 뜬구름 잡는 불안이었다. 하지만 발령일이 점점 다가오기 시작하자, 내 불안은 내가 직업인 교사로서 잘 지낼 수 있을까 하는 실존적 불안으로 무겁게 다가왔다. 아래는 그 불안의 기록이다.


2월, 합격발표가 나고 나서 신규 연수가 시작됐다. 주로 온라인 연수로 진행됐으나, 현장 연수가 하루 있었다. 올해 합격한 신규 선생님들은 다들 설렘과 희망으로 가득해 보였다. 합격한 서로를 향해 포스트잇을 쓰라는 활동에서, 다들 서로를 향한 위로와 축하의 메시지가 가득했다. 밝은 모습, 밝은 에너지, 아는 사람들끼리 인사하는 모습. 그 모습들을 보니 괴리감이 들었다. 유독 나만 불행한 사람처럼 느껴졌다. 나만 미래에 대한 기대가 없는 것 같았다. 그래서 조금 괴로웠다. 어쩌면 합격한 지 시간이 1년이나 지나서 감흥이 없어서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나처럼 시작부터 '교사로 평생을 살지는 않을 거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어 보였다.


운 좋게 나도 우리 과 사람들과 밥을 먹을 기회를 얻었다. 사실 나를 안 껴줄 줄 알고 조용히 가려고 했다. 눈치를 보며 슬금슬금 다른 사람들이 다 강의실을 나가기를 기다리는데, 마음 착한 동기가 '야 이메다야. 닌 안 나가?' 하며 나를 찾았다. 마음 착한 동기와 선배들이 나를 챙겨줬다. 밥을 먹고 카페에 앉아 교육계획서를 작성하며 이런저런 말을 주고받았다. 다들 생각보다 준비가 많이 돼 있었다. 기간제 경력이 있는 사람도 있었고, 각종 사설 연수를 들으러 다니며 수업을 준비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나만 준비가 덜 돼 있나?' 하는 두려움과 불안이 몰려왔다. 다들 교사로서의 삶을 착실히 준비해 온 듯 보였다. 교사로서의 준비도, 마음가짐 안 돼 있는 내가 여기 섞여도 되는가, 말할 자격이 있는가 생각했다.


너무 많이 위축됐다. 다들 이미 프로고 베테랑 같은데, 나는 이론만 공부했을 뿐, 실전을 준비하지 않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게다가 나는 중간에 들어가는 중간발령인데, 기대와 설렘보다는 걱정과 불안이 너무 커져서 일상생활을 지속하기 힘들었다. 그래서 정신과 약을 조금 더 늘렸다.


발령이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즐거운 감정이나 단어는 전혀 생각나지 않았고, 합격을 축하한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나를 향한 말이 아닌 것 같았다. 자폐아를 보며 애써 생각을 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러나 결국 소집해제와 발령일은 찾아왔다.


내 소집해제일은 4월 16일이었고, 발령일은 4월 17일이었다. 발령 전에 학교를 한 번은 가야 했기에, 4월 16일에 찾아가기로 했다. 이미 전임 선생님이 소문을 내놓았는가, 아이들의 반응이 뜨거웠다. '새 역사선생님이에요?' 하는 식의 말을 서른 번은 들은 것 같았다. 그렇게 이유 없이 나를 반겨주는 경험이 다소 부담스러웠으나, 싫지 않았다. 기는 빨렸지만 행복했다.


간단한 인수인계와 인사를 마치고, 4월 17일에 정식 출근을 시작했다. 중간에 발령됐기 때문에 학생들을 생각해서 담임을 맡지 않았다. 이는 신규교사인 나를 위한 배려이기도 했다. 수업시간은 OT를 했다. 그간 준비하고 생각해 온 내 교육의 방향성을 바탕으로 나에 대한 간단한 퀴즈와 앞으로의 수업 방식을 소개했다. 내 성장이 눈에 보이지 않아서 공부를 하지 않는다는 말이 와닿았기에, 이를 해결하기 위해 일일퀘스트 시스템을 만들어 소개하기도 했다. 아이들은 얌전했고, 의외로 반응이 나쁘지 않아서 좋았다. 시간강사 때 같은 무기력함은 느끼지 못했다. 교생만큼의 설렘과 흥분도 없었지만, 이만하면 괜찮은 아이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 아쉬운 게 있다면, 이미 선생님들이 다 친해져 있다는 거였다. 학생들이 전 선생님과 친해져 있는 거야, 내가 지속적으로 들어가면서 분위기를 새로 잡으면 됐다. 하지만 선생님들과의 관계에서는 별다른 접점을 찾을 수 없었다. 나는 학생부에 배치돼, 주변 선생님들은 모두 나이대가 있는 부장선생님들이었다. 나를 잘 챙겨주기는 하셨으나 당장 본인의 업무가 더 바쁜 선생님들이셨다. 내가 정서적으로 의지하거나 편히 농담을 나눌 수 있는 분들은 아니었다.


이미 신규 선생님들은 자기들끼리 모임도 갖고 많이 친해 보였다. 숫기 없고 활발하지 못한 내가 중간에 끼어들어갈 틈새는 보이지 않았다. 신규 단톡방이 존재하는 건 알았으나, 나는 그 단톡방에 끼지 못했다. 다른 선생님들에게는 곧잘 장난을 주고받았지만, 내게는 그러지 않았다. 알 수 없는 소외감을 느꼈다.


남자 선생님 무리도 이미 친해져 있는 모양새였다. 게다가 다들 운동이나 헬스에 관심을 보였는데, 나는 거기에는 관심이 없으니 또 힘들었다. 시간표도 잘 맞지 않아서 접점도 생기지 않았다. 게다가 나는 담임을 맡지 않으니 지속적으로 만날 동학년 선생님도 없었다. 신규라서 특별히 챙김을 받던 시기는 지나갔다. 주변에 따로 의지할만한 동기가 있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내 소외감을 가중시켰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내 불안한 교직 생활이 시작됐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해 위태롭지만, 나는 어쨌든 학생들 앞에 나서야 했다.



연재일을 지키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다음엔 꼭 연재일에 글을 올리겠습니다.

다음 연재일은 5월 26일 월요일입니다.

keyword
이전 05화교실 뒤에서 바라본 학교의 민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