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스승의 날, 나는 누구의 쌤도 아니었다

비담임 신규 교사의 첫 스승의 날과 체육대회

by 이메다

비담임 신규 교사의 첫 스승의 날과 체육대회 이야기.


지난 시간에도 말했듯, 난 어떻게든 출근해 앉아 있어야 했고 교단에 서야만 했다. 그 과정은 무척이나 지난했다. 중요한 업무는 3월에 이미 전에 계셨던 기간제 선생님이 해주고 가셨지만, 첫 출근의 무게는 내가 감당하기엔 어려웠다. 책임지는 자리에 있다는 건, 책임을 지지 않는 사회복무요원 때의 출근과는 달랐다.


초반에는 긴장해서 교무실에 앉아 있기만 해도 체력이 소진되는 기분이었다. 주변의 지나다니는 선생님 한 분 한 분, 이리저리 교무실을 찾는 학생 하나하나에 신경을 곤두세우며 지냈다. 혹여 누가 말을 걸진 않을까, 신규로서 해야 할 일이 있지는 않을까 하는 긴장이 나를 계속 괴롭혔다. 주변을 살피고 하루 종일 매뉴얼과 문서대장을 뒤지는 하루가 반복됐다.


내향적인 성격도 발목을 잡았다. 교무실에서는 사교적인 선생님들이 이리저리 말을 붙여주기는 했으나, 이미 형성된 그룹에 자연스럽게 끼어들어갈 만한 넉살은 내게 없었다. 교무실에서는 적당히 이야기를 주고받기는 하지만, 농담이나 사담을 주고받을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학생들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원래 감정표현을 못하는 나였기에, 학생들에게 적극적인 칭찬이나 피드백을 주는 게 힘들었다. 학생들은 친근하게 내게 다가왔지만, 나는 거기에 적당한 보답을 해주지 못했다. 하루는 어떤 아이가 내게 '쌤 근데 말하는 거에 진짜 영혼이 없으시네요'라고 할 정도였다.


그래도 어떻게 시간은 흘렀고, 학교생활에는 차츰 적응이 돼갔다.


5월 15일은 스승의 날이다. 김영란 법이 생긴 후 스승의 날에 대해 말이 많다 보니, 자치회 차원에서 편지와 카네이션을 준비해서 선생님들께 드리는 이벤트가 정례화됐다고 한다. 자치회 담당이었던 내가 아이들을 진두지휘해 행사를 준비하는 역할을 맡았다.


방과 후, 각 반 반장들이 참여하는 학생 자치회가 끝난 후, 아이들을 시켜 편지를 쓰게 했다. 한 번도 해본 적 없다 보니 시행착오가 많았다. 아이들에게 먼저 담임선생님에게 편지를 쓰고, 그 후 남는 비담임 선생님을 한 명 골라서 편지를 쓰라고 시켰는데, 중복 체크가 제대로 되지 않아서 십 수명 선생님의 편지를 따로 새롭게 써야 했다.


또, 학교에 교생 선생님들이 오셨는데 이 분들의 편지도 준비해야 했다. 교생들이 온 지 2주도 채 안 되는 시점이라 다들 교생선생님과 친하지 않아서 편지를 쓰는데 한계가 있었다. 이 역시 며칠에 걸쳐 아이들을 찾아다니며 다시 편지를 완성했다.


당일에는 아침 7시 50분부터 행사를 시작했다. 회장과 부회장 두 명을 데리고 교무실에 들어오는 선생님들을 맞이하며 편지를 드리고 카네이션을 달아드렸다. 우리보다 일찍 출근하신 선생님들, 우르르 들어와서 카네이션을 미처 달아드리지 못한 선생님들, 특별실에 계시는 선생님들 등 다양한 변수가 있어서 생각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아이들이 생각보다 많이 삐걱거렸고, 내가 미리 계획한 대로 되지 않아 당황했다. 선물 전달은 어찌어찌 완료됐으나, 아침부터 쉴 시간 없이 정신없이 시작했다.


그 후는 수업을 진행하고, 남는 공강 시간에는 강당에 가서 e스포츠 대회를 준비했다. 회장 공약이 e스포츠 대회였는데, 중계를 어떻게 할지 전혀 방법이 없이 날짜만 가져온 상태였다. 이 때문에 급하게 중계용 화면을 준비해야 해서, 쉬는 시간 없이 하루 종일 돌아다니며 방송을 준비했다. 나는 7시에 와서 7시에 퇴근하는 정신없는 12시간을 보내게 됐다.



다음 날은 체육대회였다. 나는 담임이 아니라서 우리 반이 없었다. 각 반 담임선생님이 아이들의 흥을 돋운다며 온갖 귀여운 반티를 입고 열심히 달리는 모습에 담임이 아니라 다행이라는 안도감도 잠시 들었다. 하지만 그러기에 체육대회는 너무나도 길었다. 담임이 아닌 교사에게 체육대회 4시간은 정말 너무 길었다. 다른 비담임 선생님들과 섞여서 이야기를 하고 싶었지만, 다들 연차가 많으신 부장선생님들이라 차마 끼지 못했다. 네 시간을 혼자 있으며 나는 쓸쓸함과 외로움에 빠져들었다. 우리 부장선생님은 체육대회가 끝나고 '담임 안 해서 많이 섭섭하죠?' 하며 날 위로하기도 했다.


이틀간 나는 스승의 날, e스포츠 대회, 체육대회로 바쁜 날들을 보냈다. 나는 분명 그 자리들에 있었지만, 그 자리에 실존하지는 않았다. 나는 비담임이라 '내 학생'이 없고, 반대로 학생들도 나를 '우리 쌤'이라고 인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스승의 날 행사를 준비하며 누군가 내 편지도 당연히 썼지만, 나는 카네이션을 받지는 않았다. 내가 담당자이므로 내가 스스로 가져가 확인하면 그만이었다. 그리고 쓰라고 해서 쓴 것임을 알고, 그 과정을 직접 눈에서 봤다 보니 큰 감흥이 느껴지지도 않았다. 당일은 e스포츠대회 때문에 바쁘고 지쳐서 별생각 없이 넘어갔지만, 체육대회날 담임 선생님들을 보니 오만 생각이 다 들었다.


선생님들의 프로필 사진은 모두들 스승의 날에 받은 칠판과 롤링페이퍼 사진이었다. 체육대회가 끝나자 다시 체육대회 때 찍은 단체사진이 우르르 배경이나 프로필 사진으로 올라왔다. 나는 학생들에게 선생님 소리를 듣고, 지나가다 보면 아이들이 내게 반갑게 인사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사실 그 누구에게도 '우리 쌤'이라고 인식되지는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좋은 사람, 괜찮은 선생님으로 기억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역시 담임을 하지 않으면 지나가는 선생님 1에 그칠 뿐이라는 생각에 조금 울적해졌다.


오후 두 시, 체육대회 행사가 다 끝나고 아이들이 모두 귀가했다. 선생님들도 하나 둘 조퇴했으나 나는 수행평가 채점이 있어 자리에 남았다. 그러고는 책상을 정리하다가 문득 편지 하나를 발견했다. 어제(5월 15일) 받은 편지였으나, 바빠서 확인할 시간도 없어 대충 서랍에 넣어둔 편지였다. 해바라기 모형 꽃이 꽂혀 있는 작지만 예쁜 엽서였다.


정말 예상외의 편지였다. 작은 글씨로 빼곡하게 카드의 양쪽이 채워져 있었다. 내가 수업 들어가는 반의 학생이었다. 읽고 나서도 얼떨떨해 무슨 영문인지 몰랐다. 교내 메신저를 뒤져보니, 지난 5월 초에 도서실 이벤트로 진행했던 '선생님께 편지 쓰기' 행사의 일환이었다. 평소 내가 특별히 챙겨주거나 언급한 아이가 아니라서 더더욱 얼떨떨했고, 평소에 입을 잘 열지 않고 과묵하게 수업만 듣는 아이였기에 더 놀랐다.


편지는 좋은 말이 가득했다. 처음엔 실감이 잘 안 났다. 이 친구가 왜 내게 편지를 썼지, 왜 이렇게 좋은 말로 가득하지? 내가 그 정도로 열심히 하고 학생들에게 애정을 보였나? 오만 잡생각이 다 들고 편지 내용을 부정하려고 했다. 내 생각에, 나는 이런 편지를 받을 만큼 괜찮은 인간은 아니었다. 처음엔 나를 잘못 알고 잘못 쓴 편지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다. 일단 혼란스러운 마음을 가라앉히고, 편지를 가방에 집어넣었다. 수행평가 채점에 집중했다.


집에 와서 다시금 천천히 편지를 읽어봤다. 이번에는 뭔가 느낌이 달랐다. 편지는 내 첫인상부터 내 수업 요소들에 대한 감정과 이야기, 그리고 앞으로 잘 지내보자는 이야기로 채워져 있었다. 솔직한 말로, 내 수업에 대한 칭찬들은 별로 진심이라고 여겨지진 않았다. 정확히는, 아이는 진심으로 한 말이었겠지만 내 안에서 그걸 받아들일 수 없었다. 내 안에서 내 수업은 엉망이었기 때문이다.


뒷부분은 조금 더 수용할만했다. 내가 스스로 저평가하는 수업 얘기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이는 나와의 수업이 나름 즐겁다면서, 나의 행복과 즐거움을 빌어주었다. 그 대목은 깨나 위로가 됐다. 아이의 칭찬이나 수업에 대한 호평은, 내 감정에 여유가 없어서 받아줄 수 없었다. 하지만 순수하게 나라는 개인의 행복을 비는 문장들은 내게 따뜻하게 와닿았다. 이런 좋은 편지를 받을 수 있어서 너무 고마웠다.


교사로서 나는 여전히 부족하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부족하겠지만, 그래도 조금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그런 밤이었다. 과연, 내일의 나는 나라는 개인에 대한 위로뿐만 아니라, 내 수업에 대한 칭찬이나 호평까지 받아들일 수 있을까.


모자란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브런치 시리즈는 격주로 연재됩니다.

다음 연재일은 6월 9일 월요일입니다.

keyword
이전 06화교사 발령 직전, 나는 약을 늘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