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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렇게 힘들까

아들이 아니고 강아지라고 생각해야 해.

by 이사라

한차례 소란이 있었다. 나의 노파심에 둘째 아들이 이성을 잃고 폭발을 한 것이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아들은 발을 구르고 소리를 지르고, 급기야는 혁대로 침대 매트리스를 내리쳤는데 그 와중에 천장의 LED등을 깨 버렸다. 유리 조각이 사방으로 튀는 와중에도 아들의 과격한 몸짓은 멈추지 않았다. 한마디로, 아들은 그 순간 이성을 잃고 있었으며, 그 장면을 보는 남편과 나는 참담한 심정이었다.

가끔 나타나는 아들의 분노조절장애는 예전부터 있어왔지만 그날처럼 그렇게 처참하게 나타난 적은 없었다.

방바닥에, 침대 위아래에, 책상 위에, 사방으로 흩어져 쏟아지는 유리조각들을 보며, 남편도, 나도 할 말을 잊었다.


내가 집요하게 아들의 옷을 걱정하여 아들에게 스트레스를 준 것이 틀림없었다.

아들은 며칠 후 친구 결혼식에 가야 하는데 마땅히 입을만한 옷이 없었다. 아들이 늘 입고 다니는 옷은 물 빠진 빛깔의 오버핏 티셔츠와 역시 치마처럼 폭이 넓은 후줄근한 청바지이다. 그렇게 헐렁한 옷을 입고 출근하는 걸 보면 마치 남의 옷을 빌려 입은 것처럼 보인다. 내가 사 준 번듯한 옷들은 상표도 떼지 않은 채 옷걸이에 걸려있다. 아들이 보기에 이제 엄마의 패션감각은 구닥다리이며 촌스럽기 그지없어서 도저히 입을 만한 것이 못 되는 것 같다.


그래도 교사인데 좀 더 깔끔하게 옷을 입었으면...

학교에서 학생들이 왜 선생님은 늘 똑같은 옷만 입느냐고 물었다지?

그게 늘 나의 불만이었다. 하지만 전철을 타려고 줄을 서 있으면 주위의 젊은이들 또한 그렇게 똥 싼 바지처럼 엉덩이가 늘어진 바지를 입고 있고, 구불거리는 머리카락은 답답하게 눈을 덮고 있다. 마치 거리의 방랑자들 같다

한껏 멋을 낸 젊은이들의 모습이 눈에 거슬리는 걸 보니 역시 나의 감각이 늙었음을 인정해야 했다. 그래서 되도록 아들이 무엇을 입던 상관하지 않았는데 (문신을 하지 않은 것만도 얼마나 다행인가 ), 그래도 친구 예식장에 가는데 물 빠진 티셔츠는 아니지 않은가? 옷을 신경 써서 차려입고 왔다는 걸 보이는 것이 예의가 아닌가?


나는 깔끔한 재킷이나 카라 달린 셔츠라도 하나 사주고 싶는데, 아들은 내가 그렇게 참견하는 것이 싫었나 보다. 스트레스받는 직장에서 퇴근하고 집에 와서 편히 쉬려고 했는데, 엄마는 집요하게 옷은 언제 살 거냐고 물어보니까. 곧 살 거라고 대답했는데 만약에 배송이 늦으면 결혼식에 입고 갈 옷이 없지 않으냐. 계속 캐 물으니까. 저 번 교생실습 때 입었던 옷은 너무 두꺼워서 여름에 입을 만한 옷이 아니다, 말꼬리를 잡으니까.....

아들이 짜증이 날 만도 하지, 하는 생각은 나중에 들었다.


그래도 아들은 한동안 화내지 않고 끈질기게 답변을 이어갔다. 차라리 화를 냈으면 나도 입을 다물었을 텐데, 아들이 그렇게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줄 나는 조금도 눈치채지 못했다. 아무리 따져봐도 결론이 나지 않아서 그럼 엄마가 옷을 사줄까? 하고 물었는데 그 말이 아들을 폭발시키는 트리거가 되었다.

엄마가 참견하고 옷을 사준다는 말은 정말 생각만 해도 넌더리가 나는 짜증 중의 왕 짜증인가 보다.

보나 마나 구닥다리 할아버지 같은 옷을 사주곤 입지 않는다고 두고두고 잔소리할 게 뻔하다는 생각이 아들의 머릿속에서 스트레스를 폭발시킨 것 같다.

아아악~~~ 아들은 소리를 지르고 발을 굴렀다.


나는 깜짝 놀라서 입을 다물었다. "엄마가 옷을 사줄까" 하는 말이 그렇게나 스트레스를 주는 말인 줄은 꿈에도 몰랐다. 왜 중간 단계가 없지? 싫다고 소리라도 질렀으면 나는 더 이상 말을 안 했을 텐데.. 조용히 듣고 있다가 저렇게 고함을 지르고 발을 구르니 아들은 뭔가 감정조절에 문제가 있다. 그래서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아들의 감정이 정상으로 돌아오길 기다리며 하던 저녁준비를 마저 하고 있었다. 조금 시간이 지나면 아들은 언제 그랬느냐는 듯 아무렇지도 않게 저녁밥을 먹겠지 하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아들의 고함소리에 놀란 남편이 아들에게 다가가서 아들이 왜 그러는지 이야기를 들어주고, 마지막에 그래도 그건 엄마가 너를 걱정해서 그러는 것 아니냐고 한마디 보탰다가 더 신경을 자극하고 말았다. 막 가라앉으려던 아들의 스트레스가 그 한계치를 벗어나 아들의 머리를 뚫고 이리저리 뛰었다. 아들은 다시 소리를 질렀고, 발을 굴렀으며, 침대 위에 벗어 놓은 혁대를 매트리스 위에 내리쳤다.

또다시 깜짝 놀라 아들 방으로 들어가니 아들은 자기도 놀랐는지, 제가 치울게요. 하고는 빗자루를 찾았다.

아. 이를 어째. 병원에라도 데려가야 하나? 저렇게 스트레스에 취약하면 어떻게 사나? 그런 생각들로 머릿속이 어지러웠다. 저녁밥을 마저 차려놓고 아들 방으로 들어가니 아들은 빗자루로 조각난 유리들을 군데군데 어설프게 모아 놓았을 뿐, 넋이 나간 듯 침대 위에 걸터앉아 있었다. 본인도 놀랐을 테지. 그런 자신의 모습에..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서 밥을 먹으라고, 우리가 마저 치우겠다고 아들을 식탁에 앉혀놓고 남편과 내가 구석구석 아들 방을 청소했다. 나는 쓸고, 남편은 진공청소기를 돌리고, 매트리스 커버도 벗겨서 세탁기 안에 넣어놓고... 우리는 겁먹은 표정으로 소리 없이 방을 치웠다.

왜 이렇게 자식을 키우는 게 힘들까. 이젠 거의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힘들고, 아마도 그건 내가 죽을 때까지 지속될 모양이다. 이젠 내가 아들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하지 말아야 할지 모르겠다. 나는 여전히 아들을 알지 못하고, 아들이 평소에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는지 알지 못한다.


우리는 부부가 합세해서 최선을 다해서 아들을 키워왔다고 생각했다. 우리의 인생에 아들의 양육을 최우선으로 두고, 남편은 하고 싶었던 공부를 포기하고, 나는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청각장애가 있는 아들이 혹여라도 낙오자가 될까봐, 늦게 배워 뒤쳐진 말과 학습을 따라잡기 위해 아들을 옆에 끼고 일일이 가르쳤다. 학교에서 잘 듣지 못하는 아들을 위해 남편은 아들의 영어, 수학, 국어 교사가 되었다. 거의 꼴찌였던 성적을 상위권으로 올려놓았고, 아들은 많은 장벽을 뚫고 되고 싶다던 교사가 되었는데 그것이 아들에겐 엄청난 스트레스였나 보다. 우리들의 조바심과 아들에 대한 염려가 아들에겐 숨 막히는 과정이었을 거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 옳았을까. 다시 예전으로 돌아간다면 나는 달리 아들을 키울까? 조금 느슨하게 마음먹고 잘 될 거라고, 그렇게 조바심 내지 않아도 아들은 잘 성장할 거라는 믿음을 가질까?

나는 여전히 잘 모르겠다.

남편과 나는 곰곰 생각하고 생각했다. 어떻게 해야 할까?

그냥 강아지를 키운다고 생각할까? 아무 기대도 하지 않고, 그냥 예뻐만 하고 지켜보기만 하는 거야.

마치 강아지를 살펴주는 것처럼, 밥 주고, 치워주고, 잔소리는 하지 말고, 말이 통할 거라는 기대도 하지 않고... 그냥 예뻐만 해 주는 거야.


그날 충격이 너무나 커서 아들과 예전의 관계로 돌아가기가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젠 더 이상 아들의 일에 끼어들지 말아야겠다. 아들에게 곤란한 일이 생길까 봐 미리 막아줘야 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관심을 반쯤 접고, 약간 떨어져서 지켜보기만 할 것이다. 성인이 된 아들은 이미 타인이 되었다.

예쁘고 귀여웠던 어린 아들의 모습이 자꾸 떠올랐다. 그런 아들은 이제 없다. 작고 앙증맞은 손으로 내 목을 꽉 끌어안고 엄마가 세상의 전부라는 듯 매달리던 아들은 이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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