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소하고 소박하게 살고 싶은 거야.
이 글은 내가 직장 다닐 때, 남편과 다툰 후 써 놓은 글이다.
요즘 뭔가 글을 쓰는 것이 시들해졌어. 가끔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들은 있는데, 그걸 글로 풀어내는 일이 몹시 귀찮단 말이야. 내가 글을 써서 먹고사는 직업을 가진 것도 아닌데, 그냥 게으르게 살자 하고 뭉그적거리고 있으면 써볼까 했던 이야기들이 슬그머니 사라져 버려. 머릿속이 뿌옇게 안개가 낀 것처럼 아무런 형태도 남질 않아. 보통은 그래. 그런데 며칠 전에 있었던 일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고 머릿속에서 삐져나오려고 하더군. 아침에 세수를 할 때마다, 옆에서 남편이 뭐라고 말을 걸 때마다 계속 그 생각나더군. 뭐라도 끄적거려 봐야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어.
무슨 이야기냐고? 수건에 대한 이야기야. 낡은 수건. 그래. 우리 집에는 낡은 수건이 무척 많아. 아니 사실은 수건이 거의 다 낡아 빠졌어. 처음부터 낡았던 것은 아니었는데, 익숙한 수건들을 매일 쓰다 보니 어느덧 낡은 수건이 되어있더라고. 옛날 생생하게 빛나던 젊은이가 어느새 중늙은이가 되어 있는 것과 비슷하지 뭐야. 어떤 것은 10년도 넘었더라고. 십 년이 뭐야. 이 집에 이사 올 때쯤부터 있었으니까 아마 15년 가까이 된 수건도 있을 거야. 그렇게 오랫동안 수건을 쓰다 보면 처음의 보들보들하고 도톰했던 형태는 사라지지. 수건은 이상하게 뻣뻣해지고, 닳고 닳아서 구멍이 뚫릴 지경이란 말이야. 그런데 왜 새삼 낡은 수건이 신경이 쓰였냐고? 그건 내가 동생 집에서 깨끗한 새 수건들을 보았기 때문이야.
동생이 얼마 전에 이사를 했거든. 동생의 인테리어 비용을 아껴주려고 자매들이 모두 모여 직접 페인트칠을 해 주었어. 거실 전체를 환한 미색으로, 그리고 한쪽 벽면은 강한 코발트색으로 칠했지. 낡고 꽤 오래된 아파트였지만 그렇게 칠을 해 놓고 보니 마치 새집 같았어. 처음 해보는 페인트칠이어서 어깨와 팔에 힘이 들어가긴 했지만 다 칠해놓고 보니 뿌듯했어. 그리고 마침내 동생이 이사를 마쳤을 때 그 집에 가 보았어.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근사하더군. 정말 멋졌어. 우리 집보다 작고 아담했지만 전체적인 분위기는 정말 고급 졌어. 동생의 깔끔한 성격 때문이기도 했지. 적절히 배치되어 있는 예쁜 화분들과 모든 것이 제자리에 착착 자리 잡은 깨끗한 가구들. 아기자기한 귀여운 소품들. 서랍 한 귀퉁이도 흐트러진 곳이 없었지. 잡동사니마저도 줄을 맞춰 도열해 있을 정도였으니까. 게다가 욕실에는 도톰한 새 수건들이 수납장에 차곡차곡 정리되어 있었어. 아마 이사할 때 헌 수건들은 싹 다 버리고 새 수건으로 채워 놓은 모양이야. 세수하고 얼굴을 닦을 때 피부에 닿는 보드라움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군.
그때였어. 집을 깨끗하게 수리하지는 못하겠지만 수건만은 새것으로 채워놓고 싶다는 생각이 든 것은. 우리 집은....... 그래 우리 집은 깨끗하지 못해. 물론 집에 불만이 있는 것은 아니야. 처음 이 집에 이사 올 때 나에겐 너무 과분한 집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이 집에서 평생 살 수만 있다면 바랄 것이 없겠다는 생각도 들었으니까. 그런데 벌써 이 집에 온 지도 15년이나 되었고, 게다가 내가 살림을 남편에게 넘겨 준지도 8년이나 되었다고. 남자가 살림한다는 것은, 겪어 본 사람은 알겠지만, 사실 하나에서 열까지 마음에 드는 것이 없어. 내가 몸이 한 개만 더 있다면 살림도 직접 하려고 했을 거야. 하지만 퇴근해서 집에 오면 너무 늦었고, 힘들어서 널브러져 있게 돼. 그러다 보니 그냥 눈을 딱 감아버리고 신경을 꺼버리는 재주를 갖게 되지. 부엌 싱크대 위에 온갖 냄비며 프라이팬이 춤추다 멈춘 듯 난장판을 하고 있어도 그러려니 하고, 뒤 베란다에 빈 박스가 여러 개 쌓여 있어도 못 본 척한단 말이야. 뭐 특별히 불편한 건 없으니까.
게다가 우리 집고양이는 뭐든지 발톱으로 할퀴는 게 취미라서 사방의 벽지가 너덜너덜해. 고양이 때문에 지금은 새 가구 들여놓는 걸 보류하고 있어. 오래된 소파도 닳고 닳아서 가죽이 해어지고 충전재인 허연 솜이 겉으로 보이는데도, "이놈의 귀여운 고양이 때문에 소파도 새로 못 사고!" 하면서 고양이 탓만 하고 있단 말이야.
우린 또 뭐든 쉽게 버리지 못하는 성격이야. 지구의 환경을 생각해서 적게 사고 적게 쓰고 적게 버리자는 신념 때문이 아니고 그냥 뭔가 일을 벌이길 싫어하는 천성적인 게으름 때문이지. 결혼할 때 산 책상을 아직도 쓰고 있고, 결혼 전부터 사용하던 싸구려 책장은 노쇠해져서 급기야 옆으로 쓰러지게 생겼길래 얼마 전에 간신히 버렸어. 뒷면이 뜯어지고 받침대가 내려앉아서 버리면서도 누가 볼까 봐 창피할 지경이었다니까.
어쨌든 집을 깨끗하게 하고 새 가구를 들여놓는다는 것은 힘드니 수건이라도 새것으로 바꿔놓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 올바른 수건 사용법을 검색해 보았더니, 수건의 교체 시기가 평균 1년, 길어야 2년이라는 말도 있고, 오래된 수건은 피부에 손상을 준다는 정보도 있었으니까. 아, 수건은 닳아 없어질 때까지 쓰는 것이 아니고 일정한 주기로 바꾸어주어야 하는구나. 왜 진작 수건 바꿀 생각을 못했을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어. 수건은 장롱 속에 모아놓은 것이 좀 있거든. 여기저기서 선물 들어온 것도 있고, 아들들 기숙사에 들어갈 때 챙겨주고 남은 수건도 있고. 그래서 살짝 남편에게 운을 뗐어. "저기 있잖아. 너무 오래된 수건은 그만 걸레로 사용하면 어떨까? 장롱 속에 새 수건들이 있는데, 그것 좀 꺼내서 쓰고 말이야." 하고 말했지. 남편은 알겠다고 말했어. "너무 낡은 수건들은 걸레로 쓰고, 오래된 걸레들은 버릴게" 하고 대답했지.
그런데 얼마 전에 남편이 식탁 의자에 낡은 수건을 탁 걸쳐 놓고 "당분간 낡은 수건은 여기에 놓고 손을 닦을 때 사용할 거야. 당신은 욕실에서 새 수건만 쓰라고" 하는 것이 아니겠어? 순간, 얼마 전 출근할 때 옆에 같이 따라오던 남편의 낡은 티셔츠가 생각났어. 언제 샀는지 기억도 안 나는 셔츠가 늘어져서는 소매가 손등을 덮고 있더라고.
"그 옷 좀 안 입으면 안 돼? 내가 새 옷 사줄게." 하고 말했더니 남편은 두 팔을 팔랑파랑 흔들면서 " 이게 얼마나 편한데. 추울 때는 따로 장갑을 안 끼어도 되고. 봐 봐 장갑을 안 끼어도 손이 시리지 않아." 하고 말했어. 나는 낡은 소매 속에서 움추러든 남편의 손등을 흘끔 쳐다보았지. 저 낡은 소매 속의 저 손이 내 시린 손을 따듯하게 잡아주던 그 손이란 말이야? 난 그 손을 고급스러운 옷과 어울리게 하고 싶은데...... 남편은 옷을 사준다고 하면 항상 팔짝 뛰곤 했어. "너나 사 입어. 난 필요 없으니까" 항상 그랬지. 남편이 살림을 맡았을 때부터. 그렇게 말하면 내가 옷을 사 입을 수 있겠나? 마치 직장 상사가 중국집에 가서는 "먹고 싶은 비싼 것 맘껏 시켜들 먹어. 나는 짜장면." 하는 꼴이지 뭐야. 그것도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 게다가 그 걸레인지 수건인지 구분도 안 가는 것을 턱 하니 식탁에 전시한단 말이야? 나는 순간 할 말을 잃었어. 그리고 순간적으로 화가 치밀었어. 그래서 "어유, 참.. 어유~, 어유~" 하고 뒷말을 잇지는 못하고 계속 어~유, 거리고 있었는데, 남편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는 것이 보였어.
"너는 새 수건 쓰라니까, 도대체 왜 구두쇠 남편한테 억압당하는 불쌍한 여자 흉내를 내고 있는 거야." 하면서 화를 냈어. 진심으로 화가 난 남편의 얼굴을 보고 나는 입을 꾹 다물었지. 이젠 화도 마음대로 못 내게 하네. 아무 말도 말아야지 하고 생각했어. 그래서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 우리는 서로에게 인상을 쓰면서 아침밥을 챙겨 먹고, 그 전날 예약해 놓은 영화를 보러 나갔어.
영화관으로 가는 차 안에서 남편이 내게 말했지. "수건이니, 옷은 내 나름의 소비 패턴이 있어. 나는 그걸 무너뜨리고 싶지 않아. 마치 산속에서 생활하는 사람처럼 어느 물건 하나 허투루 낭비하는 것 없이 그렇게 검소하고 소박하게 살고 싶은 거야."
나는 여전히 화가 풀리지 않아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어. 하지만 남편의 말속에 들어있는 조그만 소망 하나가 이해가 되기는 했어. 남편은 나름대로 생활의 원칙을 세워놓고 그것을 소중하게 지키고 싶어 한다는 것을. 그것을 나의 변덕으로 가볍게 무시하면 안 된다는 것을. 하지만 그렇게 이해를 하자 나는 남편과 나의 거리가 마치 도시 한복판과 산꼭대기의 암자처럼 서로 어울리지 않게 멀리 떨어져 있다고 느꼈지.
"당신은 산속에서 생활하는 사람처럼 살고 싶더라도, 나한테까지 그런 걸 요구하면 안 되지. 나는 그냥 평범하게 살고 싶은 사람이야. 나도 쓸데없는 허영이나 사치는 싫어해. 하지만 보송보송한 수건을 욕실에 걸어놓지도 못한단 말이야. 그런 조그만 만족감도 누르면서 살란 말이야?" 서로의 성격이 상충하고 있다는 것을 남편도 순간 깨달은 것 같았어. 잠시 말없이 운전만 하더니 조용하게 내게 말하더군.
"내가 돈을 쓰고 싶은 것이 있다면 당신에게 시간을 사 주는 것뿐이야. 당신 직장을 그만두고 당신하고 싶은 것 하면서 살게 하고 싶어 "
그 말을 듣자니 보송보송한 수건 따위 아무렴 어때하는 생각이 들었어. 도시와 산이 서로 다르더라도 서로를 품고 조화를 이룰 수도 있는 거잖아. 그깟 낡은 수건이야 잊어버리고 즐겁게 영화나 보자, 하는 기분도 들었고.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야. 말해놓고 나니 시원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