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심을 끼고 사는 것
우리 부부는 둘 다 은퇴해서 직장에 나가지 않지만 같이 지내는 걸 부담스럽게 여기지 않는다.
같이 지낸다고는 하지만, 각자의 시간을 독립적으로 보내므로 부딪힐 일이 별로 없다.
수영 강습이 없는 날이면. 아침에 나는 달리기를 하러 밖에 나간다. 한 시간가량 공원에서 달리다가 집으로 돌아와 씻고 나면 아침을 먹을 시간이고, 아침은 간단히 차려 먹는다.
두유, 요플레, 견과류, 과일, 계란찜이나 고등어구이.. 등 탄수화물을 제외한 건강식으로 차려 먹는다.
남편은 수십 년 동안 아침에 밥과 국, 반찬 등을 먹어왔으나 얼마 전부터 탄수화물을 줄이고자 나와 같이 간단식으로 먹는다. 그것이 몸무게를 줄이고 뱃살을 빼는데 도움이 된다고 좋아한다.
내가 운동을 하는 동안 남편은 집에서 "듀오링고"를 한다.
듀오링고는 부담 없고 재미있게 영어 공부를 할 수 있는 앱인데, 이 앱의 장점은 꾸준하게 하도록 도와준다는 것이다. 나는 1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지속하고 있으며 남편도 꾸준히 하고 있다.
마치 게임처럼 점수가 주어지고, 점수에 따라 상위권만 다음 단계로 올라가므로 경쟁적으로 공부를 하게 된다. 그렇다고 실력이 팍팍 늘지는 않지만 한 시간 동안 영어에 노출되는 시간을 갖는다.라고 생각한다.
읽고, 말하고, 듣기를 꾸준히 한다.
아침을 먹고, 커피를 마신 후, 남편이 설거지를 마치면 집안 청소를 로돌이(로봇 청소기를 우리는 로돌이라고 이름 붙였다)에게 맡기고 우리는 도서관으로 향한다. 도서관에서 남편은 종합자료실로, 나는 디지털 자료실로 향한다. 남편은 공부를 하고 책을 읽지만 나는 이렇게 글을 쓰고 책을 읽는다. 점심시간에는 다시 만나서 집에 와서 점심을 차려 먹고 약간의 휴식을 취한 후, 나는 못 치는 피아노를 30분간 딩딩 거리다가 다시 도서관으로 향한다.
저녁을 먹은 후에는 각자 휴식 시간을 갖는다. 남편은 컴퓨터를 보거나 저녁 운동을 하러 나가고, 나는 그 시간에 듀오링고를 하거나 일기를 쓰고, 때로는 TV, 영화를 본다. 매일매일 흘러가는 우리의 일과는 보통 이렇다.
하지만, 남편과 내가 같이 하는 일과가 있는데, 일주일에 한 번 아차산 둘레길을 걷는 것이다. 아차산 둘레길 걷는 것을 남편은 좋아한다. 나무들 사이를 누비다 보면 기분이 차분이 가라앉고 사계절의 변화를 느낄 수 있다. 한 바퀴 빙 돌아 나오는데 두 시간 조금 넘게 걸린다. 둘레길을 걸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누게 된다. 때로는 지난 이야기에 취해서 서로 언성을 높이기도 하지만, 한 바퀴를 다 돌 때쯤이면, 점심을 뭐를 먹을까 하는 행복한 고민을 하면서 화해를 한다.
오는 길에 냉면을 사 먹거나, 동갈전이라는 식당에서 동태 전을 막걸리에 곁들여 먹는다. 동갈전을 먹은 후에는 꼭 엿을 사서 4조각으로 나누고 두 조각씩 먹으면서 집으로 돌아온다. 4조각으로 나누는 것은 주로 내가 하는데, 남편은 그 조각이 균등하게 나누어지는지 엄청나게 신경 쓴다. 혹여 내가 작은 조각을 자기에게 주고 큰 조각을 몰래 먹어치울까 봐 노심초사한다.
요즘은 일요일 오전마다 같이 하는 일과가 하나 더 늘었는데, 남편과 자유 수영을 1시간 30분가량 하는 것이다. 남편은 예전에 수영을 1년쯤 배웠기 때문에 제법 잘하지만, 나는 요즘 배우기 시작했다. 수영은 나에게 넘기 힘든 산 같았다. 여러 번 배우려 했지만 숨이 가뻐서 레일 끝까지 가지 못하고, 킥판도 떼지 못했다. 그럴 때는 "이깟 수영 안 배워도 사는 데는 지장이 없지.." 하고 포기하곤 했었다. 세 번쯤 초보단계에서 다음 단계로 나가지 못하고 포기했던 이력이 있다. 하지만 더 나이가 들면 할 수 있는 운동이 수영 말고 또 뭐가 있을까.
그래서 요즘 다시 도전 중이다.
"수영은 그냥 꾸준히 하다 보면 배워진다고. 도중에 포기하지만 않으면. 누구나 배울 수 있다고"
남편은 경험자로서 나에게 격려를 보내고 그 말들이 내게 힘이 된다. 하지만 역시 나는 지진아라서 남들보다 느려도 한참 느리고, 또 혼자서 거북판을 못 떼고 있다. 남들은 저렇게 멋지게 나아가는데..
창피했지만 그것은 문제가 아니었다.
그래서 강습시간 외에 혼자 연습하는 시간을 갖자고 결심했다. 배영을 하다 보면 자꾸 물속에 가라앉는다. 누군가 내 허리를 받쳐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수영을 하지 않은지 십수 년이 된 남편은 수영장에 가는 것을 엄청나게 귀찮아했지만, 할 수 없이 나를 따라와야 했다. 자꾸 물속에 가라앉는 아내의 허리를 받쳐주러 와서는 오랜만에 수영을 해보니 아주 좋다고 만족해한다. 남편은 뭐든지 처음에는 귀찮아 싫어하지만 일단 발동이 걸리면 누구보다 열심히 한다. 수영장에는 사람이 제법 북적였지만, 한 시간 정도 지나니 사람들이 많이 빠져나가고 30분 동안 한 레일을 남편과 나 둘이서만 사용할 수 있었다.
수영이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 재래시장에 들러 일주일 동안 먹을 과일이나 야채를 사는 것도 큰 즐거움 중 하나다. 저번에 갔을 때는 남편이 평소에 먹고 싶었던 갈치와 오징어를 내 눈치를 보지 않고 마구 샀다. 그날 저녁은 외식을 하기로 했는데 할 수 없이 나는 갈치조림을 만들었고, 남편은 국물 한 점 남김없이 먹어치웠다. 그리고 다음에는 시장에서 무엇을 살까 잔뜩 기대하고 있다.
어쨌든 평화롭게 흘러가는 일상이다.
아들들 고민만 없다면..... 아직도 수업에 복귀하지 못한 큰 아들과 여전히 직장에서 스트레스를 받으며 힘겨워하는 작은 아들에 대한 걱정만 없다면... 완벽할 텐데.. 어떤 날은 아들들에 대한 걱정이 우리의 일상을 어둡게 하고 우리의 평화를 잡아먹고 있다. 우리가 어쩌지 못하는 자식 걱정에 잡아먹히지 말자고 다짐, 또 다짐해 보지만, 어느 날은 불면증에 시달리고, 어느 날은 근심 가득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다가 그런 서로의 이지러진 표정을 미워하게 된다.
사실은.. 이렇게 근심을 끼고 하루를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완벽한 날들 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