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를 기억하는 방식
지금은 덜 해졌지만, 가끔 남편은 자기 연민에 빠질 때가 있다. 내가 보기엔 남들보다 훨씬 일찍 퇴직해서 여유롭게 은퇴 생활을 즐기고, 경제적인 걱정 없이 살고 있건만, 남편의 시선은 지금 현재나 앞으로의 미래가 아니라 줄곧 힘들었던 과거로 향해있다. 남편의 머릿속은 과거의 일들로 항상 복잡하고 실타래처럼 잔뜩 엉켜있다.
과거의 어느 날, 너무 힘들어 머리카락이 뭉텅뭉텅 뽑혀 원형탈모증을 앓았던 때, 혹은 똥줄이 타던 때를..
남편은 아직도 과거의 트라우마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그럴 때는 자신도 모르게 욕을 내뱉는다. 자신도 특정할 수 없는 누구에겐가. 그러고 나면 자신도 깜짝 놀란다.
"나아질 거야. 몸속에서 독기가 빠져나가면 이 병도 고쳐질 거야."
회사를 그만두던 10년 전에도 남편은 그렇게 말했지만, 말끔하게 고쳐지진 않았다.
일 년 남짓 병원에서 약을 타다 먹었지만 결과가 만족스럽지는 않았다.
똥줄이 탄다는 말이 단순한 은유인 줄 알았는데, 실제 스트레스와 긴장이 지속되면 항문 근처가 뜨겁게 달아오른다고 한다. 타는 듯이 뜨거웠다고. 그런 것은 내가 전혀 경험해 보지 못한 경지이다.
나는 바짝 긴장하면 입술이 타다 못해 녹아내린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병원에서 첫 야간당직을 서는 날, 그때 무척 긴장을 했다. 그때는 당직 시, 야만적 이게도 24시간 일을 해야 했다. 아침 9시에 출근해서 다음날 9시까지 퇴근을 못했다.
어떤 약들이 있는지, 어디에 있는지 다 파악도 되기 전의 신입시절, 혼자서 당직을 서는 일은 무서운 일이었다. 갑자기 응급 환자가 들어와 응급처방이라도 내려지면 재빨리 약을 찾아 건네주어야 하는데, 혹시 잘못된 약이라도 주게 될까 봐 온 신경이 곤두서고, 입술은 타다 못해 녹아내려 끈적끈적해졌다.
내가 잘못 준 약으로 약화사고라도 난다면? 제때에 약을 못 구해 사람이 죽는다면? 일어나지 않을 일들이 상상되어 긴장된 채 밤을 꼬박 새우며 하룻밤을 지내다 보면 윗입술과 아랫입술이 녹아서 붙어있고 입을 벌리려면 찐득한 붉은 색소가 콧물처럼 양입술 사이에 묻어났다.
남편은 아들들이 아르바이트하는 것을 싫어하는데, 대학시절 자신이 온갖 알바를 하느라고 공부를 제대로 못했기 때문이다. 대학에 입학하고부터 집에서 돈 한 푼 갖다 쓰지 않고 학업을 마치느라고, 온갖 알바에 시달려야 했단다. 게다가 내가 둘째를 케어하느라 맞벌이를 그만둔 후, 남편이 공부를 포기하고 돈을 벌기 위해 얼마나 발버둥을 쳤는지... 그래서 남편은 가끔 술에 취하면,
"라테는 말이야...." 하면서 자신의 과거를 줄줄이 읊어대는 고약한 취미가 있다.
물론 아들들에겐 씨알도 안 먹힌다.
특히 둘째 아들은 세상 어느 누구도 자신만큼 힘든 사람은 없을 거라는 생각에 젖어있다.
'아빠는 사람들이 하는 말을 알아듣지 못해서 멍청하게 앉아있었던 경험은 없으셨잖아요. 주위 사람들이 모두들 웃고 있는데, 왜 웃는지 알지 못해서, 사람들 속에 있으면서도 철저히 혼자라는 느낌 속에 갇힌 기분은 모르시잖아요. 태어날 때부터 하자 있는 인간이어서 좋은 사람이 있어도 체념하고 고개를 돌려야 했던 적은 없으시잖아요..'라고 말하는 듯한 표정이다.
아이들은 아이들만의 힘겨움이 있는 법, 우리들의 고생에 비해 가볍다고 할 수 없다.
남편이 또 과거의 일을 들썩이고 자기 연민에 빠질라치면 나는 재빨리 시아버님이야기를 꺼내든다.
"아버님에 비하면 당신은 고생도 아니지. 아버님은 학교 문턱에도 가보지 못하셨잖아. 친구들이 학교에 가자고 부르면 가고 싶어서 밭두렁만 발로 차셨다잖아. 학벌도 재산도 없이 자식을 여덟이나 대학에 보내고.. "
그 작전은 효과가 있었다. 남편은 자기 연민에서 벗어나고, 아버님 생각에 젖어든다.
시아버님은 일제강점기 때, 시할아버지가 왜놈글을 배우지 말라고 학교를 보내지 않으셨고, 12세에 역병이 도는 바람에 소년가장이 되었다고 하셨다.
" 집에서 명심보감을 배우라는데, 겨울에 잠깐 배우고, 여름에는 일해야 하고.. 그러니 그게 배워져? 그러다가 12세에 가장이 되어서 하루에 두 번 산에 나무하러 댕기고.."
요양원에 계신 92세의 시아버님도 과거의 일을 곧잘 꺼내시지만, 그때 시아버님의 표정 속에는 자기 연민보다는 뿌듯함이 묻어있다.
"그래서 내가 어떻게든 자식들은 가르쳐야겠다고, 가진 것 하나 없는 그때에도 교육보험을 들었다고.."
군대에서 제대하던 당일에도 날품을 팔고, 8남매를 다 키우도록 단 하루도 쉰 적이 없으셨다는 아버님.
과거를 떠올리는 표정에는 흐뭇함이, 고생을 했지만 잘 살아왔다는 자부심이 빛나고 있어서
"라테는 말이야.."하고 이어지는 말씀은 언제 들어도 반가웠다.
남편도 아버님의 낙천적인 성격을 닮았으면 좋았으련만, 아무래도 남편은 늘 걱정이 많으셨던 어머님을 닮은 것 같다. 닮으려면 어머님의 따듯하고 넓은 마음도 같이 닮지 어째 여리고 잔생각에 시달리는 그 성정만 닮았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