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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견 좀 하지 마

아무리 부부 사이라도

by 이사라

남편은 매사에 나를 참견하려고 든다. 그것은 남편의 취미이자 특기이다.

나도 이제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는데, 이렇게 시시콜콜 간섭을 받아야 한다면 그건 정말 못 살 일이다. 한때는 졸혼을 생각해 보기도 하고, 갑자기 화가 치밀기도 하고, 그럴 때는 나도 반항이라는 것을 해본다.

도대체 왜 날 그냥 내버려 두지 못하냐고!!


어제도 저녁을 먹은 후 잠시 쉬려고 소파에 앉아 TV 리모컨을 만지작 거리고 있었다.

"TV 틀지 마. 틀지 마."

옆에서 남편이 나에게 잔소리한다.

"도대체 왜? 잠깐 앉아서 쉬겠다는데?"

나는 어이가 없어서 남편에게 눈을 흘기고 TV를 켜고 볼륨을 높였다. 남편은 이런 나의 반응에 움찔하는 눈치다. 아마 자신의 습관적인 태도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순간 깨달은 모양이다. 조금 있다가 지나가듯이 슬쩍 나를 떠본다.

"당신, 화난 거 아니지? "


아마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다면

"아이스크림을 또 먹어? 도대체 몇 개를 먹는 거야? 두 개까지는 봐주겠지만 세 개를 먹으면 안 돼. 솔직히 고백해. 몇 개를 먹은 거야? "

하고 잔소리한다. (물론 몰래 먹고 있기는 하다.)

과자를 먹고 있다가 과자 봉지를 빼앗긴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나는 한사코 과자 봉지를 움켜쥐며 반항했지만 아직은 힘이 밀린다. 더 나이가 들면 언젠가는 내가 밀리지 않을 때가 올 것이다.

"당신은 절제할 줄 모르는 사람이니까 내가 이렇게 해줘야 해~~ 당신 과자 먹는 것 보면 아귀 같다니까.."

악담을 퍼부으며 봉지를 뺏앗은 남편은 의기양양하다. 그러고 보니 남편의 잔소리엔 투철한 사명감이 깔려있는 거 같기도 하다. 아내를 그냥 두면 안 돼. 돼지가 돼 버려. 돼지가 되지...

이런 허황되지만 말이 되는 망상? 하긴 뭐 그 덕에 과자와 아이스크림을 자제하고 있기는 하다.


놀랍게도, 최근에 남편은 집에서 술을 안 마시겠다고 선언을 했다. 그렇게 오랫동안 마셔대더니, 그래서 나도 같이 열심히 마셔주었는데. (그래도 다행인 것은 외식할 때는 예외라고 했고, 그 덕에 외식이 늘어났다.)

그동안 하루를 마감하며 같이 마시던 맥주는 내 삶의 활력소였는데, 남편에 의해 나도 비자발적 반강제적 금주를 당했다. 난 마시고 싶을 때 마실 거야, 하고 반항하고 싶지만, 그러다가 남편이 알코올 중독에서 못 벗어날까 봐 나도 참고 있다.


아침에 달리기를 나갔다가 조금이라도 늦을라치면 웬 운동을 그렇게 심하게 하느냐고, 너무 무리해서 뭐 하겠느냐는 잔소리를 오분쯤 들어야 한다. 같이 등산을 할 때도 마찬가지다. 조금이라도 남편을 앞서 나가면 그렇게 잘난 뽕을 하다가 넘어지면 어쩔 거냐는 잔소리가 날아온다.

하나부터 열까지 잔소리다.

같이 길을 걷고 있으면, 혹시 사고라도 당할까 봐, 아니면 개똥이라도 밟을까 봐 내 팔을 이리저리 당긴다.

나도 보는 눈이 있고, 혼자 길을 갈 수 있다고... 항변해 보지만 남편의 참견은 이미 체질화되어 있어 자신도 모르게 나오는 습관이다.


몇 년 전 마라톤대회에 나갔을 때는 또 어떤가?

평소엔 달리기도 하지 않던 사람이 내가 풀코스에 나간다니까 옆에서 같이 뛰며 내내 잔소리하지 않았는가?

아내를 참견하고 싶어 같이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한 사람은 아마 남편밖에 없을 것이다.

그 후론 내가 마라톤 대회에 나간다고만 하면 기겁을 하고 말린다.


아무래도 남편의 참견 습관은 아버님을 닮은 거 같다.

예전에, 1년에 서너 달 우리 집에 머물러 계셨던 아버님은 어머님과 같이 식사하실 때면 꼭 참견을 하셨다.

이것 먹어봐. 이것 맛있다니까. 어허 그걸 왜 물 말아먹어? 이건 이렇게 먹어야 맛있지.. 등등

그럴 때마다 어머니는 냅둬유. 내가 알아서 먹을래유. 하시면서도 싫지 않은 표정을 지으셨는데.

어느 해부턴가 아버님은 세상일에 무심해지시면서 모든 참견을 멈추셨다. 그때부터 어머니도 시무룩해지신 것 같다.


나도 어느 날 남편이 참견을 딱 멈추면,

이 양반이 어디가 아픈가? 나에게 관심이 없어졌나?

하는 생각이 들 거 같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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