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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관 바꾸기

진작 바꿀 걸

by 이사라

요즘에는 아침 시간이 즐겁다. 아침을 아주 간단하게 계란찜과 요구르트와 견과류, 몇 가지의 과일로 먹기 때문이다. 식사준비가 얼마나 간편한지, 10분 남짓 걸릴 뿐이다. 왜 진작 이렇게 하지 못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오랫동안 아침식사 준비는 나에게 큰 과제였다. 결혼초 시동생 도시락까지 챙겨야 했을 때는 물론이고, 불과 몇 년 전에도 아침식사 준비를 하려면 최소한 1시간, 길게는 1시간 30분이 걸렸다.

형님네와 합가 하신 후 근 십 년 동안, 시부모님이 여름과 겨울, 한두 달 우리 집에 머물러 계셨었는데, 그때는 아침에 6인분의 세끼 식사, 그러니까 18인분의 식사를 준비해 놓아야 했다. 도시락을 싸서 약국에 출근하고 저녁때 퇴근하고 집에 오면 밤 9시가 되었으니까 모든 식사 준비를 아침에 몰아서 했다. 어찌 된 영문인지 집에서 모든 가사를 도맡아 하면서도 남편은 한사코 음식 만들기는 하지 못했다.

아침에 먹을 국과 점심엔 찌개를, 저녁의 고기를 재어놓는 일을, 그러면서도 밑반찬 두세 가지를 정신없이 후다닥 해치우곤 했다.


남편은 오랫동안 아침에 국과 밥과 나물을 먹어온 사람이었다. 한 끼라도 굶으면 큰일이라도 나는 듯이 생각하고 그것은 나도 마찬가지다. 나는 한 끼라도 굶으면 저혈당이 오고 손이 부들부들 떨려서 꼭 식사를 해야 한다. 아무리 심하게 부부 싸움을 해도, 다음날 아침이면 꽁하게 토라진 채, 말없이 부엌에서 밥을 했다. 그럴 때는 남편이 슬쩍 말을 걸어오기도 하고, 밥을 먹으면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그러다가 풀어지기도 했다.


한때 빵으로 대체하려고 시도를 해보긴 했다. 그때는 남편이 출근하고 내가 가사를 돌보고 있을 때였다.

어느 날인가 남편이 단팥빵을 먹다가 무심히,

"난 단팥빵을 너무 좋아해. 날마다 먹어도 질리지 않을 것 같아."

라고 말을 꺼내자마자 내가 그 말꼬리를 잽싸게 잡아챈 것이다.

"정말? 그럼 아침마다 밥대신 단팥빵 먹을래? 내가 매일 빵을 사다 줄게."

남편은 순간 흠칫하더니 대단한 결심이라도 한 듯

"어... 그래 볼까?"

하고 떨떠름하게 대답했다. 이 기회를 놓치지 말자고, 아침밥에서 탈출하자고 속으로 얼마나 흐뭇해했는지.

그래서 아침마다 단팥빵과 우유를 준비했고, 남편은 간단히 빵을 먹고 출근했다.

그런데 4일째 되던 날 나는 그만 깜빡 잊고 빵을 준비하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할 수 없이 국을 끓이고 밥을 해서 준비해 놓았다.

"여보, 미안해. 빵을 준비를 못했네. 오늘은 그냥 밥을 먹어." 하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러자 남편이 무척 감격한 표정으로, 마치 눈물이라도 흘릴 듯이 나를 쳐다보더니

"여보, 정말 고마워."

하고 말하더니 밥을 아주 맛있게 먹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내가 조금 편하자고 밥대신 빵을 주는 것은 다신 못할 짓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아침밥에서의 탈출은 3일 만에 끝났고 다시는 시도해 보지 못했다.


그런데 요즘, 꽤 오랫동안 아침에 밥대신 과일을 먹는 나를 보고, 자꾸 배가 나오는 자신의 배를 보더니, 남편은 나를 따라서 아침을 간단히 먹겠다고 자발적으로 선언한 것이다.

야채 (당근, 방울토마토)와 과일 (사과, 참외), 두유, 요구르트와 견과류, 계란찜이나 고등어 구이등, 탄수화물을 줄인 아침식사를 몇 달째 먹어오고 있는데, 남편은 빵을 먹을 때와는 달리 질리지 않는 모양이다.

먹을 때마다 만족해 한다.

"진작에 이렇게 먹을걸. 괜히 밥을 고집했네. 몸도 가벼워지고, 변비도 없어지고...."

그러니 아침에 꽤 여유가 생기고, 아침 운동을 거르지 않고 하게 된다.

나이들었다고 모두가 고집이 느는 것만은 아닌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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