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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귀한 아들 12화

함께해야 재미있지

아들과 노는 법

by 이사라

귀가 잘 들리지 않는 사람과 친구가 된다는 것은 조금 힘든 일이다. 내가 무엇을 물어보았는데, 잘 듣지 못해서 뭐라고요? 를 반복해서 묻는다면 더 이상 질문하기가 미안해지고, 말을 거는 것이 괴롭히는 것처럼 여겨질 것이다.

아들이 늘 부딪히는 일상이 사실 그렇다. 회식자리에서 옆에 앉은 동료교사가 처음에 어느 학교 출신인지를 물었는데 아들이 뭐라고요?라고 몇 번 되물으니 그다음부터는 침묵만 오갔다고 했다. 아들도 뭔가 말을 꺼내기가 두렵다고, 자기가 질문을 던져놓고 상대방이 한 대답을 알아듣지 못할까 봐.. 사람을 사귀는 것을 어려워한다.


아들에겐 돌 무렵부터 같이 교육을 받고, 같이 놀러 다니던 6명의 친구들이 있다. 모두 인공와우 수술을 했고, 지금은 모두 직장인이 되었다. 동병상련을 겪는 친구로서 할 이야기도 많을 텐데, 막상 그들이 만나면 그렇게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는 못한다. 그리고 그들은 자발적으로 모임을 갖지도 않는데, 아마도 청각장애 때문에 겪는 대화의 어려움 때문이 아닐까 싶다.


아들은 조용한 환경에서 대화를 나누는 것은 문제가 없고, 전화상으로도 대화하는 것에 문제가 없다. 예전에는 전화음을 알아듣기 힘들어했지만 요즘 인공와우기계는 혁명적으로 좋아졌다. 핸드폰과 와우기계가 블루투스로 연결되므로 소음 없이 선명하게 통화음을 들을 수 있는 것이다.


요즘 세상에 친구가 없다고 마냥 심심한 것은 아니니 그나마 다행이라고나 할까? 무엇보다 요즘 젊은이들은 온라인상에서 서로 안부를 묻고, 선물을 보내기도 하고, 게임도 하면서 즐기기도 하니까. 최소한 온라인 세상은 둘째에게 장애가 없는 세상이다.


아들은 온라인 게임을 통해 학교 동창들과 게임을 즐기기도 하고, 그렇지 않을 때는 가족들이 친구가 된다. 특히 쌍둥이 큰아들은 둘째의 가장 가까운 친구이다. 큰아들은 둘째가 말을 배우기 시작하여 발음이 부정확했을 때도, 누구보다도 둘째의 말을 잘 알아들었고 우리들에게 통역사 역할을 해 주었다.

가끔 만나는, 이제 아들과의 소통에 익숙한 몇몇의 친구들이 있지만 지금은 모두 군대에 가 있다.


둘째 아들이 시간이 많을 때, 아들과 둘이서 한동안 볼링을 치러 다니기도 했다.

더 어렸을 때는 배드민턴을 쳤고, 중학생일 때는 가족 4명이 아파트 뒷마당에서 농구를 하기도 했다.

집 근처 무인 탁구장에서 탁구도 치고, 당구장에서 포켓볼도 쳤다. 잘 치는 수준은 아니고, 탁구도 겨우 공을 넘기는 수준이지만, 그래도 아직 아들들 보다는 내가 한수 위다.


겨울에는 가끔 스키장을 찾는데, 아들들이 스키를 탈 동안 남편과 나는 멀찍이 서서 윌리를 찾아라, 놀이를 한다. 그 많은 사람들 중에 우리 아들들이 어디에 있는지 찾기 놀이를 하는 거다. 그러면서 늘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아들이 무사히 내려오는 것을 바라본다.

둘째아들은 한사코 우리도 스키를 배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나이에 뼈라도 부러지면 어떻게 하나? 걱정이지만, 올 겨울에는 스키 강습을 한번 받아볼까 생각 중이다. 아들은 뭐든지 우리들과 같이 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다.


아들은 나에게 게임을 배우라고도 하고, 몇 달 전에는 닌텐도 게임기를 사서 해보라고 강요했다.

아들의 강요에 남편과 나는 꼼짝없이 거실 소파에 앉아 게임기를 이리저리 굴렸다.

나는 그럭저럭 적응해서 재미를 붙이는 중이었는데 남편은 이겨도 왜 이겼는지 알지 못했으며, 버튼의 움직임과 화면상의 게임을 연결시키지 못해 혼란을 겪다가 결국 포기했다.


그리고 어느 날인가는 아들이 노래방에 가자고 해서 나는 깜짝 놀랐다.

인공와우 기계 속에는 음의 높낮이가 감지되지 않아서 노래를 부를 수 없다고 했는데, 아들이 노래를 부르고 싶어 한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아들은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부를 수 없는 노래를 내 앞에서는 마음껏 불렀다.

마치 단조로운 불경소리처럼 들렸지만, 노래에는 음의 높낮이를 빼고도 즐기며 느낄 수 있는 뭔가가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나는 굉장한 음치인데, 아들이 잘 알아채지 못하니까 마음껏 노래를 불렀다.

생전 처음으로 노래를 잘한다고 감탄하는 소리를 들었다. 윈-윈이었다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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