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이라도 갈 거야
수능이 끝나자 둘째 아들은 다른 친구들처럼 자기도 아르바이트를 하고 싶어 했다. 남편과 나는 청각장애를 가진 아들이 사회에 나가 상처를 받게 될까 봐 우려스러웠다.
"귀에다 이상한 장치를 하고 있는 청각장애인을 누가 일을 시키고 싶어 해. 기왕이면 멀쩡한 사람을 쓰지."
하고 아들에게 일부러 쓴소리까지 했지만 아들의 간절함을 꺾지는 못했다. 아들에게 아르바이트는 자기도 남들처럼 일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고자 하는 욕구였을 것이다.
아들은 온라인의 알바 구인란을 살펴보더니, 가장 손쉽고 누구나 할 수 있는 아르바이트의 첫 단계, 전단지 붙이는 일에 지원을 하였다. 오전 몇 시간이면 끝나는 간단한 것이었고, 노동단가도 아주 낮은 것이었다.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뭐라도 경험해 보는 것도 괜찮겠지 싶었다.
아침 7시까지 **역 앞 공원으로 나가야 한다는 말에 나는 그 공원까지 차로 데려다주었다.
집에서 차로 15분 정도 걸리는 거리였다.
생애 첫 아르바이트라 아들은 무척 설렌 마음으로 일찍 일어나 아침도 먹지 않은 채 그 공원으로 갔다.
아들이 세상에 나가 사람들 틈에 섞여서 하는 첫 아르바이트. 아들만큼이나 나도 설레었고, 무사히 그 일을 마치길 바랐다. 차에서 내려 모임장소로 가는 아들의 뒷모습은 신나 있었다.
그런데 아들을 공원에 데려다주고 집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아들의 전화를 받았다.
아들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직감했다.
"버스를 타고 집에 가는 중이에요."
"왜? 어떻게 된 거야?"
"사람이 많다고 그냥 집에 가래요."
"그럼 미리 알려주었어야지. 아침에 일찍 오라고 해놓고 그냥 돌아가라고 하는 게 말이 돼?"
"몰라요. 짜증 나요. 확 뒤집어엎어 버리고 싶었어요"
역시 안되는구나. 실망감이 밀려왔는데, 아들의 심정은 오죽할까 싶었다.
아들의 첫 아르바이트는 그렇게 퇴짜를 맞았다. 아마도 아들이 장애인이어서 겪어야 했을 경험이었을 것이다.
일을 해보기도 전에 그렇게 퇴짜를 맞는 일이 아들이 앞으로 수없이 겪어야 할 암울한 일의 전조처럼 여겨졌다. 우리는 아들이 더 이상 그런 쓴 경험을 겪지 않았으면 했지만 아들은 다음 아르바이트를 알아보았다.
아들이 두 번째 지원한 아르바이트는 더욱 수상했다. 어느 사무실에 가서 앉아 있으면 시간당 만원을 준다는 거였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자리만 채우면 돼? 그런 알바가 어디 있어? 하고 미심쩍어 아들을 말렸지만 아들은 한사코 가고 싶어 했다.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다면 지옥이라도 가겠다는 표정이었다.
옷을 잘 차려입고 오라는 말에, 아들은 평소 입는 점퍼 위에 재킷을 걸쳐 입은 이상한 옷차림을 하고, 이번에도 설레는 마음으로 낯선 곳을 향해 집을 나섰다.
아들은 그곳에서 연락처와 이름을 적어 놓고 삼십여 분동 안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채 앉아있다가 왔다고 했다.
뭔가 수상했다. 도대체 왜 사람들을 모아놓고 돈을 줘? 이상하잖아. 혹시 사람들을 유인해 어딘가에 팔아넘기려는 것인가? 온갖 우려를 하고 있었는데, 아들이 무사히 돌아와서 나는 안심이 되었다.
"돈은 받은 거야?"
그렇게 할 일없이 앉아 있는데 돈을 줄리 없으리라는 것을 예상하면서도 물었다.
"돈은 나중에 준대요. 통장으로요."
"그깟 일만 원을?"
조금 있으니 단톡방에 돈을 받으려면 아들의 통장 번호와 신분증 사본을 보내라는 연락이 왔다.
아무래도 이건... 개인정보를 빼내려는 신종 사기수법인 것 같았다.
"아들. 그냥 잊어버려. 이건 사기 치려고 하는 거야."
아들도 수상하다고 생각했는지 돈을 포기한 채 연락처를 차단했다. 몇 시간의 설렘, 기대가 다 헛수고로 돌아가자 아들은 분노와 실망감, 그리고 짜증이 뒤섞인 복잡한 표정으로 침울해했다.
"그것도 다 경험이지. 사기당하지 않은 것만도 얼마나 다행이야. 엄마가 대신 너에게 아르바이트비 보낼게. "
나는 아들의 등을 토닥이며, 그것이 나쁜 기억으로 남아있지 않기를 바랐다.
아들이 세 번째 아르바이트 이야기를 꺼내자, 먹고 있던 밥이 목에 걸리는 느낌을 받았다.
"또? 안 하면 안 돼? 용돈을 충분히 주잖아?"
남편도 나도 이젠 제발 아들이 아르바이트를 포기하기를 바랐다. 아들이 당해야 하는 수모를 생각만 해도 머리가 아팠다.
하지만 이번에는 롯데월드에서 행사가 끝난 후 뒷정리를 하는 일이라고 했다. 사기도 아니며 단가도 높다고 했다.
"언제 끝나는데?"
"새벽 1시 30분쯤이요."
그 알바가 아들에게까지 기회가 온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 시간이면 모든 교통수단이 끊어졌을 것이다.
"집에 어떻게 올 건데?"
"뛰어 올 거예요."
"새벽에 그 길을? 적어도 3시간 넘게 걸릴걸? 그러다가 사고라도 나면 어쩌고?"
남편은 먹던 숟가락을 식탁 위에 올려놓고 체한 듯 인상을 썼다. 말도 안 되는 주장을 아들이 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어떻게 해도 아들의 고집을 꺽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았다.
택시를 타고 오자니 아르바이트비보다 더 나올 것이고, 결국 우리가 그 시간에 아들을 데리러 롯데월드로 가기로 타협을 보았다.
첫 아르바이트를 끝낸 아들은 무척 뿌듯한 표정으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성공적이었고, 아들은 앞으로도 계속 그런 아르바이트를 찾아 하고 싶어 했다. 사람들 틈에 섞여 같이 부대끼며 일하는 것이 즐거운 모양이었다.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도 아들은 여러 군데 아르바이트에 지원한 모양이다. 대부분 퇴짜를 맞았다.
학생 신분이니 면접까지는 수월했지만 면접을 본 후에는 거절을 당했다. 기계를 착용하고 있다는 것 때문에.
하지만 한 번 편의점 알바를 뚫고 나니, 그것이 경험이 되었고, 그 경험은 다른 알바를 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아들은 대학을 졸업하고 임용고시를 치른 후에는 다양한 알바를 경험했다.
편의점 야간알바를 여러 달 했고, 세차장에서 차를 세차하기도 했고, 식당에서 접시 닦기도 했다.
그중 아들이 가장 선호했던 알바는 호텔에서의 아르바이트였다. 주로 접시를 닦았고, 가끔 서빙도 했다.
시간당 보수가 높았고, 아들을 신뢰해서 고정적 일자리를 주었다. 게다가 호텔에서 주는 식사가 맛있고, 직원 휴게실이 고급스럽다고 만족해했다. 하지만 물속에 손을 담가야 하는 아들의 손가락은 진물과 습진으로 벌겋게 벗겨져 있고는 했다.
아들이 교사로 발령이 나서 그 알바를 그만두어야 했을 때는 무척 서운해했다.
"방학 때 와서 아르바이트해도 돼요?" 하고 물어보았다는데, 물론 교사은 겸직 불가라 그건 불가능했다.
어쨌든 뭐를 해도 아들이 굶지는 않겠구나, 난관을 뚫고 이런저런 알바를 한 아들이 한편으로는 믿음직스럽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