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죽고 싶은 만큼 살고 싶었다.
오랜만에 강아지와 함께 방문한 동물병원 수의사님이 나를 보자마자 놀라며 물었다.
"살이 왜 이렇게 많이 빠졌어요? 정말 여리여리해졌어~"
나는 멋쩍게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살 빠졌다.'는 요즘 내가 가장 많이 듣는 말이다. 평소 같았으면 살 빠졌다는 소리에 기분이 좋았겠지만, 요즘은 이 말을 들을 때마다 멋쩍게 웃으며 고개를 숙이게 된다. 또 아니면 장난스럽게 '마음고생을 많이 해서요~'라고 답하곤 한다.
한국에 돌아와 체중계에 올라섰을 때 나는 내 눈을 의심치 않을 수 없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빠지지 않던 체중이 어느새 5kg이나 빠져있었다. 혹시 체중계가 고장 난 것이 아닌가 해서 엄마에게 여러 번 물었다.
마음 고생의 무게가 마치 눈으로 확인되는 것 같았다.
우울감인지 우울증인지가 참 많은 것을 뺏어갔다. 식욕을 잃었고, 일을 잃었고, 희망도 잃었고, 그리고 좋아하던 모든 것을 잃었다.
지난 몇 달간 울지 않고 잠든 날을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로 매일 밤 울면서 잠에 들었다. 스트레스가 너무 심해 깊게 잠을 잘 수 없었고, 잠에 들 때마다 악몽에 시달리다가 깨곤 했다. 어느 날엔 울다 깨고, 또 어느 날엔 소리를 지르며 잠에서 깼다.
매일 어떻게 죽을지도 생각했다. 출근길에 차가 지나갈 때마다 '저 차에 뛰어들까?'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또 어느 날에는 템즈강에 몸을 던지고 싶었다.
'이런 생각 하지 말아야지, 스스로 삶을 버리는 짓은 하지 말아야지' 하다가도 또 삶을 포기해버리고 싶었다. 하루하루가 너무 우울해서 우울감이 마치 나를 집어삼킬 것만 같았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나는 죽고 싶은 만큼 또 살고 싶었다.
살고 싶어서,
살려면 이 우울감에서부터 벗어나야 할 것 같아서
혼자 나름의 노력을 하기 시작했다.
1. 있는 그대로의 감정을 받아들이고 표현하기
슬프면 슬프다고 말했고, 눈물이 나면 그냥 울었다.
나는 원래 주변 사람들에게 힘들다고 말을 하지 않는 편이었지만, 이번에는 내가 겪은 일, 그로 인해 생긴 내 감정에 대해서 얘기하기 시작했다. 물론 주변 사람들을 감정의 쓰레기통으로 생각하지 않기 위해 조심하려고 노력했다.
2. 그냥 걷기
어느 역술학자가 말하기를 많이 걸으면 액운이 빠져나간다고 했다. 우스울 수도 있지만 지금 나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이 혹시 액운이 껴서 그런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걸을 수 있는 날에는 미친 듯이 걸었다. 걷다 보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는 느낌을 받았다.
3. 단순하게 생각하기
나는 생각이 많은 타입이다. A를 생각하면 딱 B까지만 생각하면 되는데 쓸데없이 C D E..... Z까지 생각하는 피곤한 스타일..
한번 생각하기 시작하면 꼬리에 꼬리를 물기 때문에 되도록이면 깊게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생각이 많아지면 또 쉽게 우울해지기 때문이었다. 걸을 때도 생각을 하는 대신 주변 풍경에만 집중했다. 혹시 어떤 생각이 나려고 하면, '저 건물 특이하다.' '저 가게는 뭐하는 가게지?' 딱 여기까지만 생각하려고 노력했다.
4. 뭐든 읽어보기
영자신문부터 우울증, 심리, 정신수양 등에 관련한 책들을 추천받아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집중이 잘 되지 않아 이 방법은 실패였다. 대신 나중에는 종교적인 글을 많이 봤다. 성경이나 불교 말씀 같은. 종교는 없었지만 마음에 와 닿는 글귀는 메모장에 저장해 두고 시간 날 때마다 읽었다.
5. 전문가와 얘기하기
상담까지는 아니었지만, 아는 언니가 심리상담가로 일을 하고 있어 겸사겸사해서 언니를 찾아갔다. 이틀 동안 언니 집에 묵으면서 정말 많은 얘기를 나눴다. 난생처음 내 밑바닥 깊숙이까지 숨겨 놓았던 감정을 꺼내 놓았다. 그렇게 모든 걸 털어놓고 나니 몇 달 만에 정말 편안한 잠을 잘 수 있었다.
나름의 노력으로 우울감이 좀 줄어들긴 했지만, 우울증이 심했을 때, 결심했던 대로 난 해외 생활을 접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해외 생활이 주는 외로움, 공허함 등이 우울증을 더 증폭시키는 것만 같았다.
한국으로 돌아온 나는 여전히 우울하다. 죽고 싶다는 생각은 많이 줄어들기는 했지만, 아주 가끔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여전히 무기력하고 행복하지 않다. 아마 우울감은 평생 나를 따라다닐 것 같다. 하지만 다시 우울감이 나를 집어삼키지 못하도록 꾸준히 노력할 예정이다. 다시 사람들을 만나고, 브런치를 쓰고, 그리고 정 힘들면 병원도 찾아가 볼 생각이다. 하지만 되도록이면 혼자서 극복해내고 싶다. 무너진 나의 모든 걸 내 손으로 다시 세워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