컵쿤 치앙마이 10 - 빠이 2박 3일 여행
여행의 중간 지점에서 우리는 계획해두었던 빠이로 향했다. 빠이는 치앙마이에 가기 전부터 추천을 많이 받았던 도시다. 빠이 가는 길은 도이수텝 가는 길보다 더 험하기로 악명 높은데 마찬가지로 멀미를 하지 않는 나는 별 걱정이 없었다. 다만 빠이까지 가는 시간이 세 시간 가까이라 지루한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가 걱정이었다. 웹툰을 마구마구 다운 받아 놓고 책도 다운 받아두었다. 잠은 오지 않을 것 같다. 빠이에 가기 직전까지 빠이가 이렇게 먼 곳인지 몰랐다. 구글 지도 저 멀리에 있는 빠이를 확인하니 서울에서 부산 정도의 거리구나 하고 실감이 났다.
우선 빠이에 가기 위해서는 미니벤을 예약해야 한다. 그 방법이 가장 싸고 편리하다. 벤을 예약하려고 블로그 검색을 하다 보면 거의 아야서비스를 통해 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빠이로 가기 이틀 전쯤 나와 친구는 그 사실을 알았고 예약 하려는데, 아야서비스는 올트시티에 위치해 있다. 우리가 있는 곳은 님만해민인데 예약을 위해 올드시티까지 갈 수는 없었다. 방법은 두 가지다. 홈페이지에 문의 남기기와 전화로 예약하기. 마야몰에서 유심을 산 우리의 스마트폰은 전화를 받을 수는 있었지만, 걸 수는 없었다. 조금 덜 떨어진 스마트폰을 가진 한국인들은 홈페이지에 문의를 남기고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에어비앤비로 아파트에 묵고 있어서 호텔에 부탁을 할 수도 없었다.
무작정 연락을 기다리는데 오지 않는다. 홈페이지에 문의를 남기면 답변이 늦다는 후기가 있었는데 참말이다. 어쩌지 싶다가 마사지를 받고 마사지숍에 부탁해보기로 했다. 친구가 몇 번 갔던 곳으로 나름 단골이라고 할 수 있는 곳이니까. 다행히 직원은 전화 연결을 해주었고 몇 번의 통화 실패 후 예약을 할 수 있었다. 컵쿤카컵쿤카.
빠이로 가는 길은 칠백 몇 번의 구불거림이 있다고 했는데 그것 역시 참말이었다. 멀미가 심한 친구는 힘들어하고, 그저 지루한 나도 힘들고. 빠이로 가는 길은 멀다. 일찍 출발하고 중간에 휴게소를 한 번 들리지만 정신 못 차리는 내 장을 믿지 못해 밥도 먹지 않은 상태로 빠이에 도착했다. 허기져서 알아 둔 까이양 식당에서 까이양을 시켰다. 까이양은 한국의 전기 통닭구이 그런 느낌의 음식이다. 한국의 김치 비슷한 쏨땀이랑 먹으면 느끼하지도 않아 잘 들어간다. 허겁지겁 먹고 나니 이 식당에서 키우는 고양이가 밥 달라고 무릎 위로 올라온다. 식탁까지 넘보기에 훠이훠이. 고양이랑 놀다 보니 호텔까지 가는 길이 막막하다. 15분 정도 걸어야 하는데 우리에게는 묵직한 백팩과 캐리어가 있다. 어쩌지 싶은데 식당 사장님이 어디로 가냐고 먼저 물어봐주신다.
요마 호텔. 대답하고 전화를 부탁하니 흔쾌히 핸드폰을 꺼내 주신 사장님, 컵쿤카! 전화번호를 보여드렸더니 직접 통화까지 해주신다. 여기는 아야서비스 바로 앞 식당이라 여행객이 많이 오는 듯했고 그래서인지 우리의 사정을 잘 이해해주신 것 같았다. 빠이까지 오는 길은 힘들었지만, 시작이 좋다.
빠이에서는 특별한 일정이 없었다. 야시장 구경하고 일출 투어를 신청해서 일출 보고 오는 정도? 2박 3일 동안만큼은 여유롭게 지내보자. 그러고 야시장 먹방이 시작되었다. 다시 오지 못할 것처럼 먹었는데, 그중에서 가장 맛있었던 음식은 무삥이다. 사실 무삥을 먹을 때만 해도 그 음식이 무삥인지 몰랐다. 그냥 한국 돼지갈비 맛 나는 양념 돼지 꼬치 정도로 알고 먹었는데 고국의 맛이 나서 다음날에는 양손에 하나씩 들고 먹었다. 무삥을 시작으로 미니 팟타이, 딸기, 로띠, 떡갈비 꼬치, 감자 회오리, 오렌지주스... 야무지게 먹고 좋아하는 창 맥주도 하나 사서 목을 축인다. 세 시간 넘게 달리고 먹기도 잘 먹었더니 잠이 잘 온다.
이주 동안 아파트에서 묵다가 호텔에 묵으니 좋은 점은 조식이 나온 다는 것이다. 여기 호텔 조식이 잘 나온다던데, 조식보다는 잠을 자는 타입이지만 이번만큼은 조식을 먹어보기로 했다. 맛있다. 엄마 나 조식 좋아해. 끼니만큼은 ‘간단하게’를 모른다.두 접시 째 먹다가 깨달았다. 볶음밥과 홍콩누들, 소시지의 조합이 맛있다는 걸. 내일은 이 조합으로 집중 공략해 먹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다음 날 조식을 먹을 수 있을지 없을지가 불명확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반자보 일출 투어를 예약했는데, 10시 전에 돌아오지 못하면 조식은 날아간다. 일출을 보러 가는 길 역시 빠이에 가는 길, 도이수텝에 가는 길처럼 구불구불 왔다 갔다 했다. 반자보에 가는 차 안에서 한국 노래가 흘러나왔는데 거의 다 처음 듣는 케이팝이었다. ‘설탕 같은 그녀’ 그런 가사가 흘러 나왔다. 설탕이라면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카페라테를 먹을 때 노슈가를 외치는 것 밖에 모르는 나는 설탕 같은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 추측하기 힘들었다. 마치 이달의 소녀의 Hi high 가사에 나오는 ‘김밥처럼 넌 만두처럼 달콤해.’ 같은 사랑인 걸까. 이곳에 있으면 평소에 잘 먹지도 않던 김밥이나 만두 같은 게 먹고 싶어 진다. 아마도 우리가 한국인 인걸 알아서 한국 노래를 틀어 주는 것 같은데 좋아하는 곡이 나오면 반갑지만, 그보다는 차라리 태국 노래가 더 좋다. 특히 품 비푸릿의 노래가 나오면 나올 때마다 좋아하는 노래가 나온다고 이야기하고 싶을 정도로 좋다.
그렇게 노래를 듣다가 반자보에 도착한 듯했다. 추측성인 이유는 아무 설명 없이 투어 기사가 나와 내 친구, 두 명의 말레이시아 관광객들, 도합 네 명의 관광객을 놓고 사라졌기 때문이다. 정말 사라졌다는 표현이 맞았다. 저 멀리 차를 끌고 그는 어딘가로 가버렸다. 해가 뜨지 않아서 도로는 깜깜했고 이른 시각이라 문을 연 가게도 없다. 다만 새벽부터 이유 모를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서 더 음산했다. 함께 있던 말레이시아 관광객 두 분은 저벅저벅 어디론가 가버리더라. 그들을 따라갈까도 싶었지만 지도에 뷰포인트가 반대 방향에 떠 있길래 친구와 그쪽으로 가보기로 했다. 깜깜한 밤, 드문드문 차만 쌩쌩 다니고 닭들이 엄청나게 우는 반자보. 어느 곳에서나 개가 자유롭게 다니는 치앙마이지만, 유독 따라올까 무섭다. 거의 공포체험 수준으로 돌아다니다가 아무래도 뷰포인트와는 거리가 멀어서 친구와 다시 기사가 우리를 내려 주었던 곳으로 가보았다. 거기서 아까 같이 왔던 관광객들이 간 방향으로 가보는데 웬걸, 거기에 사람들이 다 모여 있다.
같이 온 분들한테 기사가 어디로 갔는지 아냐고 묻는데 모른다면서, 그 사람 나쁜 사람이라고 한다. 케이팝 청년 우리한테 왜 그랬어?
어쨌든, 날이 점점 밝아지기는 했지만 해는 아직 뜨지 않았고 몬쨈에서 일몰을 놓친 것처럼 허탕을 치지는 않았으니 다행이다. 사람들을 따라 사진을 찍는데 무척 피곤하다. 빠이 좋다더니 나를 너무 힘들게 한다. 무삥은 선데이마켓에서도 팔 텐데, 빠이의 한적함은 좋지만 님만에 있었을 때랑 달리 정말 여행하는 기분으로 2박 3일을 있다 보니 피곤한 건 어쩔 수 없다. 해가 뜨는 걸 보는데 예쁘지만 으슬으슬 춥고 얼른 이곳을 떠나고 싶기만 하다.
오는 동안 이른 시간인데도 너무 배가 고파서 이곳의 명물인 절벽 국수를 빨리 먹고 싶었다. 속이 뜨끈하면 정신이 좀 돌아오지 않을까. 그런데 식당 근처에 모여 있던 사람들이 슬슬 자리를 뜬다. 대충 들어보니 오늘 식당 영업 안 한다는 말 같은데, 저 말을 다른 한국인들은 투어 기사한테 듣고 있다. 우리는 귀동냥으로 그 소식을 알았고 사진 찍기에 바쁜 말레이시아 일행에도 전해주었다. 저 쪽 한국인 일행은 그래서 카페에 가자고 기사가 그들을 데려가길래 우리도 따라갔다. 눈치껏 사는 거지 뭐. 어느새 말레이시아 일행들도 그 카페에 와 있다. 맨발로 카페에 들어가야 해서 발이 시리다. 먼저 빠이 투어를 하고 온 친구가 반자보는 춥다고 춥다고 여러 번 경고했는데 참말이다. 따듯한 국물이 필요해서 곧 죽어도 아이스이지만 따듯한 카페라떼를 시켰다. 주문과 음료 제조를 혼자 하는 사장님은 손님 한 팀의 주문을 받고 음료를 모두 만들어 낸 다음 주문을 받는다. 그동안 기다리는 시간이 지루하지 않은 것은 그곳의 경치가 코 앞에 있는 구름과 해이기 때문이다. 커피를 마시면서 멍을 때리다 보니 이제야 해가 뜨는 걸 눈으로 보고 이 높은 곳에 올라와 구름 옆에서 커피를 마시는 게 실감 난다. 매일매일 당연하게 떠오르는 해가 고맙게 느껴지는 지금이 소중하다.
식당에서 밥은 못 먹었지만, 그 덕에 빨리 출발을 해서 조식을 먹었다. 어제 그 조합으로 두 그릇을 조지고 빠이를 떠난다. 컵쿤 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