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방에서 빗소리를 들었다

20200822

by 진진

비가 온다. 길었던 장마가 끝난가 싶더니 책방을 여는 주말에 또 비가 온다.


한 주를 쉬고 책방을 여니 오래만이라 반가운데 비는 반갑지 않다. 오늘은 도서관에 납품하는 날이라 일찍 출발해 도서관에 들렸다가 책방으로 출근했다. 도서관이 있는 답십리역에서 책방이 있는 신금호역으로 갔다. 신금호역 출구 앞에서 쏟아지는 아니, 쏟아붓는 비를 보니 헛웃음이 나왔다.


지난 평일에는 비가 오지 않았다. 대신, 서울을 중심으로 코로나가 크게 확산되었다. 이번 주는 다른 책방에 신청한 모임을 두 탕 뛸 계획이었다. 하나는 무료로 진행해서 얼른 신청한 지구불시착의 시모임이고, 다른 하나는 좋아하는 출판사의 북토크를 좋아하는 책방에서 열길래 신청한 것이었다. 코로나 확산 때문에 출판사의 북토크는 온라인으로 변경되었다. 나에게 모임을 진행하는 게 맞는지 물어보는 책방 사장님께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게 맞다는 답을 드렸다. 맞다는 걸 알면서도 한편으로는 속상했다. 온라인으로나마 진행하게 되어 참 다행이다. 사실 방에서 안전하고 편하게, 즉 밥을 먹고 드러누어 강의를 듣고 소통할 수 있어서 집순이인 나에게는 최고의 시간이었다. 게다가 추첨으로 진행하는 무드등 뽑기에 어쩌자고 내가 당첨되었다. 그걸 계기로 좋아하는 출판사와 거래를 텄고 오늘 택배를 받아 무드등과 함께 진열해두었다. 이럴 때는 꼭 행복한 꿈을 꾸고 있는 것만 같다.


꿈에서 깨어 책방에서 빗소리와 천둥번개 소리를 듣고 있다.

먼저 간 시모임은 최근 이사를 간 지역 근처에 서점을 팔로우해두고 있다가 무료 행사 소식을 접해 신청한 일회성 모임이다. 직접 쓴 시를 들고 가면 시인과 함께 시를 읽고 감상을 나누는 시모임이다. 작년에 어떤 책방에서 시 쓰는 모임에 참여한 적이 있다. 그때 쓴 시 중 한 편을 들고 가기로 했다. 어떤 시를 가져갈까, 오랜만에 1년 전에 써두었던 시를 꺼냈다. 부끄러워서 도저히 어디 내밀 수 없으면 어떡하지, 읽기도 전에 겁먹었는데 생각보다 괜찮았다. 시간이 흐른 글은 읽고 얼굴을 붉히기 마련인데 그때 쓴 시들은 특별했다. 아마도 다른 글보다 시에 욕심이 없어서 그런 것 같다.


그중 책방을 소재로 한 시가 한 편 있다. 작년에 그 모임 갔더니 나 빼고 모두 불참이었다. 그런 모임이었다. 느지막이 와도 편한 모임이 있다. 너무 편해서 아무도 안 온 날이었다. 책방 사장님과 둘 뿐이라 가져온 시를 읽고 나누는 시간이 금방 지나갔다. 그러다 취미 얘기를 했는데, 대뜸 사장님이 그걸로 시를 써보자고 했다. 난 그때 내가 사장님께 했던 얘기는 꼬박 기억이 나는데 어떤 얘기를 들었는지는 잘 기억이 안 난다. 시만 남았다.


언뜻 사장님의 취미가 멍 때리기라 멍을 때리는 동안 책방에서 벌어지는 일을 주제로 써 내려간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이 시에는 책방이 등장한다.

들고 간 시를 읽고 나니 함께 모인 사람들의 반응이 너무 재밌어서 가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같은 시를 두고도 다르게, 어쩌면 더 풍부하게 읽어주어서 잊고 싶지 않은 시간이 되었다.


아직은 타인의 책방에서 모임을 참석하는 게 더 자연스럽다. 이 작은 책방에서 그런 일이 생기는 날이 올까? 요즘은 코로나 때문에 잠시 쉬어가긴 해도 모임을 안 여는 동네책방을 찾기 힘들다. 주말에만 연다는 핑계로, 코로나라는 핑계로 책만 파는 지금이 사실은 좋다. 책방에서 오래오래 빗소리를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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