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906
전에 한 번 간 서점들이 있다.
가장 최근 한 번 방문했던 안도북스, 가장 마지막 여행이었던 강릉에서 들린 한낮의바다, 춘천 북페어에 참여했을 때 갔던 춘천일기, 올초 갔던 속초에 동아서점과 문우당서림. 이것저것 많이 얻어먹었던 서울 강동구의 순정책방, 이사 간 집에서 나름 가까운 지구불시착. 친구가 다니는 대학과 가까워서 들려 본 부비프. 북토크를 들으러 갔던 가가77페이지, 워크숍을 듣는다고 자주 갔던 후암동에 고요서사와 별책부록. 날 잡고 부천에 가 브이로그까지 남겼던 오키로미터북스토어. 회사에서 집까지 가는 길 중 정자역으로 가는 코스를 발견해 겸사겸사 들렸던 좋은날의책방. 아주 예전에 아빠를 만나러 갔었던 수원 영통에 서른책방. 나에게 아주 친밀한 동네인 경기 화성에 이사를 온 모모책방, 부산 보수동 골목의 마이유니버스, 제주도에서 만났던 그 책방들, 또...
모두 한 번씩만 방문했던 책방들이다. 아름답고 무용한 아무책방도 그런 곳이다. 아무책방은 그곳에 가려던 것은 아니고 어떤 이유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근처에 아무책방이 있어서 가게 되었다. 기억나지 않는 그 우연에 감사한다. 어제는 책방에 아는 작가님이 오셔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우리는 오늘 꼭 까순이(고양이)를 봐야겠다는 의지로 근처 프루스트서재에 갔다. 왠지 프루스트에는 다른 손님이 사장님과 있을 거란 그림이 그려졌는데, 역시 먼저 온 손님이 계셨다. 잠깐 화장실을 들렸다 나왔는데 작가님은 산책 간 까순이를 찾으러 밖에 나갔고 책방에 나 아닌 두 사람은 내가 알듯 말듯한 이야기를 계속 나누고 있었다. 괜히 민망해서 밖에 나와 까순이를 찾다가 다시 들어와 그곳에 우두커니 앉아 있으니 포도를 권하셨다. 그래서 또 슬그머니 그 손님 옆에 앉았다. 프루스트 사장님은 그분이 아무책방을 운영하던 책방지기라고 소개했다. 아무책방에 한 번 가보았다는 말을 하면서 벽을 조금 허무려고 했는데, 나는 그제야 아무책방이 문을 닫았다는 걸 알았고, 이내 알 수 없는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아무책방이 문을 닫은 게 나의 탓은 아니다. 하지만 나에게 이제는 없는 책방에 대한 기억이 한 페이지밖에 없다는 사실은 조금 속상하고 괜히 미안한 일이다. 그때는 겨울이어서 추웠고 지금은 버린 보풀 일어난 코트를 입고 있었고 책방에 들어가니 따듯했다. 동네서점 에디션으로 나온 김수영의 시집을 샀다. 현대문학론인가, 필수로 들어야 하는 국문과의 수업을 듣고 있었기에 그런 시집을 샀다. 시집을 사면 주는 노트도 받았다. 그 노트는 아직 나의 집에 있다. 그 시집을 계산해 준 주인이 여성이라는 것만 기억나는데 그렇다면 오늘 만난 그 분과 같은 분일 수도 있겠다. 손님이 꽤 있었고 소파가 있던 곳이라 서점에 소파를 두는 것도 참 괜찮겠다고 생각한 게 어렴풋 기억난다. 이게 아무책방에 대한 기억의 끝이다. 그다음 페이지는 언제든 내가 원할 때 이어서 타이핑할 수 있을 거라 믿어 난 오랜 시간 동안 그 책방에 다시 가보지 않았다. 어떤 이유로든 정리되고 마감될 걸 전혀 예상하지 못한 사람처럼 말이다.
전에 한 번씩 가보았던 서점들을 떠올린다. 자주 쓰는 지도 어플에서 즐겨찾기 해놓은 그 공간을 눌렀을 때 정보가 뜨지 않는다고, 삭제 버튼이 떠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일이다. 그건 나의 서점도 마찬가지다.
삶의 어느 장면에서 우리는 같은 자세로, 같은 표정으로, 같은 생각을 하며 투명한 벽 앞에 서 있곤 했을 것이다. 얼굴의 일부가 아니라 생애의 접힌 모서리가 절박하게 닮은 사람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단순한 진심, 조해진>
하루뿐이지만 나에게 스며들었던 책방, 또 그런 내 얼굴을 닮은 나의 책방에 방문한 사람들. 언젠가 사라질지 모르는, 하루아침에 없어진다 해도 고개 갸웃거리지 않을 구체적인 모습을 갖춘 가게들. 그 모든 것들을 만나기 전과 지금은 분명 다르다고 진심으로 전하고 싶다.